취약계층·농가 '윈윈'인데..예타 문턱 못 넘은 농식품 지원사업

이명철 2021. 9. 15.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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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식품 바우처·임산부 농산물·초등생 과일간식 내년 미시행
본사업 전환 과정 예타 통과 못해, 시범사업도 편성 불발
농업계 "국산 농축산물 수요 지속 감소..사업 본격화해야"

[세종=이데일리 이명철 기자] 임산부나 초등학생, 저소득층 등 건강한 식습관이 중요한 취약계층 대상으로 국산 농산물을 지원하는 정부 사업들이 올해를 마지막으로 모두 끝날 처지에 놓였다. 시범사업을 본사업으로 편성하는 과정에서 시행하는 예비타당성조사(예타)의 문턱을 넘지 못한 탓이다. 사업 방식 개편이나 국회 협의 등을 통해 부활할 가능성도 있지만 당분간 취약계층 농산물 공급 중단은 불가피해졌다.

570억원대 지원사업, 내년 정부 예산안 반영 불발

15일 정부에 따르면 △농식품 바우처(바우처) △임산부 친환경 농산물 꾸러미(꾸러미) △초등학교 돌봄교실 과일 간식(과일 간식) 등 3개 사업은 내년 정부 예산안에 반영되지 않았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요청한 사업들의 예산은 바우처 157억원, 꾸러미 196억원, 과일 간식 217억원 등 총 570억원 수준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원하는 임산부 친환경농산물 꾸러미 견본. (사진=농식품부)

바우처는 저소득층의 식습관 개선을 위해 지난해부터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중위소득 50% 이하 가구에게 카드 충전 형태로 한 달에 4만원(1인가구 기준)을 지원하고 채소·과일·우유·달걀(계란) 등을 구매하는 방식이다. 올해는 9개 시·군·구 2만8000가구를 대상으로 89억원 규모의 예산을 편성·집행 중이다.

미래세대 건강을 위해 임산부에게 한 달에 한 번, 연간 48만원 규모의 친환경 농산물 꾸러미를 보내는 사업은 지난해 처음 시범적으로 시작했다. 올해 지원 대상은 서울·경기 등 11개 지역 8만명이다.

과일 간식은 2018년부터 초등학교 돌봄교실 이용 학생 대상으로 진행 중인 시범사업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친환경 또는 농산물우수관리(GAP) 인증을 받은 과일 150g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올해 24만명 대상으로 72억원의 예산을 편성한 바 있다.

이들 사업은 먹거리 취약계층의 건강한 식습관을 형성하고 국산 농산물의 소비 증진을 도모하는 공통점이 있다. 농업의 저탄소 전환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농약·화학비료 사용이 적은 친환경 농산물 재배를 활성화한다는 효과도 있다.

사업 만족도 역시 높은 편이다. 꾸러미사업의 경우 맘카페·블로그 등에서 높은 호응을 얻었으며,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가정에 머무르는 임산부를 더 지원하기 위해 사업대상을 지난해 4만5000명에서 올해 3만5000명을 추가로 늘리기도 했다. 과일 간식은 만족도 조사에서 학부모의 91%, 학생 85%가 만족했으며 학생들의 국산 과일 섭취 선호도가 5.8% 증가하는 등 식습관 개선 효과를 확인한 바 있다.

재정당국 “사업 규모 커져…타당성 검증해야”

농식품 지원사업이 내년 줄줄이 예산 편성에 실패한 이유는 본사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예타를 통과하지 못해서다. 내년 본사업이 무산되면서 시범사업 또한 편성이 불발돼 사업의 연속성도 차질을 받게 됐다.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바우처·꾸러미사업은 예타를 받기 위한 예타 대상 심사 과정 자체에서 탈락해 사업의 타당성 여부를 평가 받지도 못했다.

바우처사업은 복지사업으로 분류돼 복지제도 중복성 등을 평가하는 보건복지부의 사회보장심의를 먼저 받도록 하라는 재정당국 지침에 예타 제동이 걸렸다. 지난해 처음 시작한 꾸러미사업의 경우 1년 간의 성과만 갖고 예타를 진행하기 어렵단 이유로 심사 대상에 오르지도 못했다. 과일 간식사업은 조건부로 예타를 통과한 상태로, 조건을 충족할 경우 내년 예산 편성을 시도할 예정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과일 공급) 단가 인하나 학교·학생 등 수요자들의 의견 반영, 공급 방식 개선 등의 조건이 달렸는데 해결이 불가능한 사항은 아니다”라며 “교육부 등 관계부처와 협의해 재정당국, 국회와 다시 논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농업계에서는 국산 농산물 판로 확보 차원에서라도 관련 예산이 편성돼야 한다고 요청하고 있다. 최범진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정책조정실장은 “코로나19 확산과 기후 변화로 인해 농업 생산·유통·소비 전(全)과정에서의 불안정성이 높아지고 자유무역협정(FTA) 등으로 국산 농축산물 수요가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며 “취약계층 농식품 지원사업이 본격화하면 고정적인 수요 기반을 확보하고 잠재 소비자를 양성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예산 편성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 입장에서는 지출 부담이 큰 만큼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단 사업이 한번 편성되고 나면 고정 지출이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과일 간식의 내년 예산 217억원은 초등학교 돌봄교실과 6학년만 대상으로 한 것인데 추후 전 학년 확대 시 단순히 더해도 1000억원 이상 소요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기재부 관계자는 “(농식품 지원) 시범사업이 (본사업 전환 시) 규모가 커지기 때문에 사업 계획 등이 예타를 통과해야만 한다”며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한 만큼 심의 과정에서 (시범사업 편성 등) 국회 논의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명철 (twomc@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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