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고 '고인물'이 된 엄마와 함께하는 트레이너의 삶[플랫]

플랫팀 twitter.com/flatflat38 2021. 9. 15.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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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퇴근 후는 온전히 나를 위한 회복의 시간입니다. 일상에 지쳐 쉬는 방법을 잊은 당신에게, 경향신문 여성 기자들이 퇴근 후 시간과 주말의 일상을 공유하는 [퇴근후, 만나요]를 연재합니다. 누군가의 사소한 일상이 영감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퇴근 후, 만나요] 포켓몬고 ‘고인물’ 엄마와 함께하는 트레이너의 삶


나는 모바일 게임 ‘포켓몬 고’를 한다. 그것도 열심히, 매일 한다. ‘시작한 날 2017년 1월24일. 걸은 거리 3089.8km. 잡은 포켓몬 2만1959마리. 방문한 포켓스톱 1만3669개.’ 게임 속 프로필 아래엔 나의 포켓몬 고 역사가 모두 기록돼 있다. 유행하는 건 곧장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에 국내에서 게임이 출시되자마자 시작했다. 회사가 광화문 인근이란 건 포켓몬 고 유저에게 엄청난 행운이었다. 널리고 널린 게 포켓스톱과 체육관이었으니까.

출시 초기, 게임의 인기는 대단했다. 영하의 날씨를 기록하던 2017년 2월 어느 주말, 서울 보라매 공원에 피카츄가 대량으로 발생한다는 소식이 SNS에 퍼졌다. 한달음에 달려간 공원에서 잊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과장없이, 수백 명의 사람들이 한 데 모여 스마트폰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피카츄를 잡기 위해 사람들이 느리게 공원을 떠도는 모습은 <워킹데드>의 좀비 아포칼립스를 연상시켰다.

모바일 게임 ‘포켓몬 고’를 한다. 그것도 열심히, 매일 한다. ‘시작한 날 2017년 1월24일. 걸은 거리 3089.8km. 잡은 포켓몬 2만1959마리. 방문한 포켓스톱 1만3669개.’ 게임 속 프로필 아래엔 나의 포켓몬 고 역사가 모두 기록돼 있다.



5개월쯤 지났을까. 게임이 시들해졌다. 비슷비슷한 포켓몬을 잡는 일도, 밖을 돌아다니며 포켓스톱과 체육관에서 배틀해야 하는 시스템도 귀찮았다. 이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포켓몬 고를 그만뒀다. ‘너도 포고 해?’라는 질문이 ‘아직 해?’로 바뀌기 시작했다. 새 게임을 찾기 시작했고, PC게임 ‘심즈4’에 빠졌다. 그 뒤로 1년여 기간 동안 포켓몬 고를 하지 않았다.

우리집엔 나만큼 열정적인 포켓몬 사냥꾼이 있었다. 엄마다. 엄마는 나 때문에 포켓몬 고를 시작했다. ‘애니팡’류의 게임만 하던 엄마는 포켓몬 고를 무척이나 재밌어했다. 서울에 놀러올 때마다 대도시의 별천지를 구경하며 새 포켓몬 잡는 걸 낙으로 삼았다. 그런 엄마에게 나는 돌연 게임 중단을 선언했다. 아쉬워하던 엄마는 이내 포켓몬 고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모녀의 대화에서 포켓몬은 사라졌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엄마가 여전히 포켓몬 고를 한다는 걸 알았다. 적잖이 놀랐다. 엄마의 레벨은 어느새 나를 훌쩍 앞서 있었다. 관심을 보이자 그제서야 엄마는 궁금했던 점을 쏟아냈다. “이건 왜 이런거야?” “배틀은 어떻게 해?” 업데이트가 될 때마다 변하는 룰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포켓몬 고 앱을 재설치했다. 게임 룰을 설명하려면 변화한 게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여기에 함정이 있었다. 업데이트를 거듭한 포켓몬 고는 더 재밌어져 있었다!

포켓몬고 ‘만렙’인 엄마와 (위) 1년만에 게임을 다시 시작한 나(아래). 주말이면 목동 파리공원 일대를 서성이며 포켓몬을 잡는 트레이너의 삶은 다시 시작됐다. 정동 파이널 스트라이커 제공



그렇게 포켓몬 트레이너의 삶이 다시 시작됐다. 주말이면 목동 파리공원 일대를 서성이며 포켓몬을 잡는다. 코로나19 이후 오히려 포켓몬 고 유저가 늘었다고 한다. 실제로 게임을 하다보면 길에서 유저를 심심찮게 만난다. 어른들은 머쓱한 마음에 모른 척 함께 포켓몬을 잡지만, 아이들은 스스럼 없이 다가와 “누나, 렙 몇이에요?” 묻기도 한다. 애써 잡은 전설 포켓몬을 저 달라고 떼쓰는 아이도 있었다. 비대면 시대이니 뭐니 해도, 내가 포켓몬 고를 하며 얻는 유대감은 꽤 크다.

“그걸 왜 아직도 해?” 호기심은 좋지만, 지나치게 신기해하지는 말자. 유행이 지난 자리엔 남은 혹은 남겨진 사람이 있다. 그 속에서 추억은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성장은 거듭된다. 포켓몬 고 세계에서 엄마는 ‘최고 공격자’, 나는 ‘파이널 스트라이커’로 활약 중이다. 멋지지 않은가. 이번 주말엔 인기 포켓몬 이브이가 대량 발생했다. 하루가 끝날 무렵, 우린 서로의 수확을 확인한다. “색이 다른 이브이 몇 마리 잡았어?” 역시 엄마의 압승이다. 엄마를 따라잡으려면 내일은 더 부지런해야한다.


정동 파이널 스트라이커
산업부 기자. 복세편살을 지향하는 확신의 ENT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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