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고 '고인물'이 된 엄마와 함께하는 트레이너의 삶[플랫]
퇴근 후는 온전히 나를 위한 회복의 시간입니다. 일상에 지쳐 쉬는 방법을 잊은 당신에게, 경향신문 여성 기자들이 퇴근 후 시간과 주말의 일상을 공유하는 [퇴근후, 만나요]를 연재합니다. 누군가의 사소한 일상이 영감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퇴근 후, 만나요] 포켓몬고 ‘고인물’ 엄마와 함께하는 트레이너의 삶
나는 모바일 게임 ‘포켓몬 고’를 한다. 그것도 열심히, 매일 한다. ‘시작한 날 2017년 1월24일. 걸은 거리 3089.8km. 잡은 포켓몬 2만1959마리. 방문한 포켓스톱 1만3669개.’ 게임 속 프로필 아래엔 나의 포켓몬 고 역사가 모두 기록돼 있다. 유행하는 건 곧장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에 국내에서 게임이 출시되자마자 시작했다. 회사가 광화문 인근이란 건 포켓몬 고 유저에게 엄청난 행운이었다. 널리고 널린 게 포켓스톱과 체육관이었으니까.
출시 초기, 게임의 인기는 대단했다. 영하의 날씨를 기록하던 2017년 2월 어느 주말, 서울 보라매 공원에 피카츄가 대량으로 발생한다는 소식이 SNS에 퍼졌다. 한달음에 달려간 공원에서 잊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과장없이, 수백 명의 사람들이 한 데 모여 스마트폰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피카츄를 잡기 위해 사람들이 느리게 공원을 떠도는 모습은 <워킹데드>의 좀비 아포칼립스를 연상시켰다.
5개월쯤 지났을까. 게임이 시들해졌다. 비슷비슷한 포켓몬을 잡는 일도, 밖을 돌아다니며 포켓스톱과 체육관에서 배틀해야 하는 시스템도 귀찮았다. 이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포켓몬 고를 그만뒀다. ‘너도 포고 해?’라는 질문이 ‘아직 해?’로 바뀌기 시작했다. 새 게임을 찾기 시작했고, PC게임 ‘심즈4’에 빠졌다. 그 뒤로 1년여 기간 동안 포켓몬 고를 하지 않았다.
우리집엔 나만큼 열정적인 포켓몬 사냥꾼이 있었다. 엄마다. 엄마는 나 때문에 포켓몬 고를 시작했다. ‘애니팡’류의 게임만 하던 엄마는 포켓몬 고를 무척이나 재밌어했다. 서울에 놀러올 때마다 대도시의 별천지를 구경하며 새 포켓몬 잡는 걸 낙으로 삼았다. 그런 엄마에게 나는 돌연 게임 중단을 선언했다. 아쉬워하던 엄마는 이내 포켓몬 고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모녀의 대화에서 포켓몬은 사라졌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엄마가 여전히 포켓몬 고를 한다는 걸 알았다. 적잖이 놀랐다. 엄마의 레벨은 어느새 나를 훌쩍 앞서 있었다. 관심을 보이자 그제서야 엄마는 궁금했던 점을 쏟아냈다. “이건 왜 이런거야?” “배틀은 어떻게 해?” 업데이트가 될 때마다 변하는 룰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포켓몬 고 앱을 재설치했다. 게임 룰을 설명하려면 변화한 게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여기에 함정이 있었다. 업데이트를 거듭한 포켓몬 고는 더 재밌어져 있었다!
그렇게 포켓몬 트레이너의 삶이 다시 시작됐다. 주말이면 목동 파리공원 일대를 서성이며 포켓몬을 잡는다. 코로나19 이후 오히려 포켓몬 고 유저가 늘었다고 한다. 실제로 게임을 하다보면 길에서 유저를 심심찮게 만난다. 어른들은 머쓱한 마음에 모른 척 함께 포켓몬을 잡지만, 아이들은 스스럼 없이 다가와 “누나, 렙 몇이에요?” 묻기도 한다. 애써 잡은 전설 포켓몬을 저 달라고 떼쓰는 아이도 있었다. 비대면 시대이니 뭐니 해도, 내가 포켓몬 고를 하며 얻는 유대감은 꽤 크다.
“그걸 왜 아직도 해?” 호기심은 좋지만, 지나치게 신기해하지는 말자. 유행이 지난 자리엔 남은 혹은 남겨진 사람이 있다. 그 속에서 추억은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성장은 거듭된다. 포켓몬 고 세계에서 엄마는 ‘최고 공격자’, 나는 ‘파이널 스트라이커’로 활약 중이다. 멋지지 않은가. 이번 주말엔 인기 포켓몬 이브이가 대량 발생했다. 하루가 끝날 무렵, 우린 서로의 수확을 확인한다. “색이 다른 이브이 몇 마리 잡았어?” 역시 엄마의 압승이다. 엄마를 따라잡으려면 내일은 더 부지런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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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 파이널 스트라이커
산업부 기자. 복세편살을 지향하는 확신의 ENT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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