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학번의 빼앗긴 봄

한겨레 2021. 9. 15. 16:2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병호의 기억과 미래]

지난 3월2일 개강과 동시에 비대면 수업을 진행한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 캠퍼스의 모습.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며 지난해 대학에 입학한 학생은 제대로 캠퍼스에 와보지도 못한 채 2학년말을 맞았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기억과 미래] 정병호|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입학을 축하합니다.” 2020년 6월 말, 처음으로 신입생들을 만난 자리에서 내가 말하자, 한 학생이 울먹였다. “축하한다는 말 처음 들어봐요.” 다른 학생들도 고개를 떨궜다. 코로나 사태로 고등학교 졸업식이 취소되고 대학 입학식마저 취소되면서 가족한테도 제대로 축하를 받아보지 못했다고 했다.

내가 지도를 맡았던 신입생 일곱명에게 대학생활 안내라도 하려고 마련한 작은 간담회 자리였다. 만남에 주렸던 학생들은 처음 와본 캠퍼스와 직접 만난 교수가 무척 신기한 듯했다. 그 짧은 만남을 위해 광주, 화순, 창원에서 네다섯시간 걸려 왔다는 학생들이 다시 밤차를 타고 내려가야 한다고 했다. 안쓰러운 마음에 저녁이라도 먹여 보내려고 갔던 학교 앞 식당에서 있었던 일이다.

작년과 올해 대학에 들어온 신입생들을 ‘코로나 학번’이라고 부른다. 대학생활을 못 해본 자신들을 자조적으로 고등학교 4, 5학년이라고도 한다. 작년에 내가 만났던 신입생들은 제대로 캠퍼스에 와보지도 못하고 2학년 말을 맞이했다. 재난상황에 대학 시기를 보내는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고자 온라인으로 다시 만났다.

오랫동안 꿈꿔왔던 대학생활을 누리지 못한 채 바로 졸업과 취업을 염려하는 3, 4학년이 되어버린다고 생각하니 억울하다고 했다. 교수뿐만 아니라 동료, 선후배들과도 만나보지 못해서 정신적으론 여전히 새내기라 불안하다는 것이다. 전공 면에서도 현장실습이나 협동작업 경험 없이 학년만 올라가서 막막하다고 했다. 사회에서는 비대면 수업으로 인한 학력 손실과 등록금 문제를 거론하지만, 막상 그들이 상실감을 호소하는 것은 대학생으로서의 인간관계와 활동경험의 단절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생활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초중고 교육경쟁이 대입시험으로 수렴되어 부모와 교사들은 “대학에 간 뒤에”라는 말로 아이들을 달래고 눌러왔다. 실제로 대학에 입학하면 공식적으로 술을 마실 수 있고, 연애도 할 수 있고, 여행도 갈 수 있다. 아동기부터 청소년기까지 억압되었던 인간관계, 사회참여, 문화활동을 시작해볼 수 있는 특별한 시기인 것이다. 이때 그동안 유예되었던 사회관계를 집약적으로 경험하면서 독립적인 자아탐색의 기회를 갖게 된다.

대다수의 한국 청년에게 대학생활은 문화적 성인식 기능을 한다. 가족, 특히 부모의 울타리를 벗어나 다양한 사람, 다른 가치관을 접하면서 사회적 성인이 되는 과정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입학식뿐만 아니라, 오리엔테이션과 엠티, 축제와 동아리, 학과모임과 음주가무의 뒤풀이까지 대학공동체의 활동들은 단순한 행사나 여흥이 아니라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성장을 위한 통과의례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코로나 학번이 대학공동체 경험을 통한 사회적 성장의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인간관계의 축소로 답답함, 불안함, 외로움에 시달려온 그들의 정신건강도 염려되는 상황이다. 기업에서도 그들의 사회성 결핍을 심각하게 여긴다고 한다. 취업을 하더라도 사회적 업무 추진 역량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학생만의 문제가 아니다. 코로나 시대에 입학한 초중등 학생의 사회성 발달 결핍도 심각한 문제다. 어린이집 교사들은 마스크를 쓰고 상호작용을 해온 아이들의 언어발달 및 소통장애를 염려하고 있다.

코로나 세대의 빼앗긴 봄은 되찾을 수 있을까? 잃어버린 경험을 복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축제와 동아리활동, 학과 엠티와 현장학습 등 이들이 잃어버린 대학생활과 인간관계를 압축적으로라도 경험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그동안 대학생은 3학년이 되면 취직준비에 내몰렸다. 코로나 상황이 가라앉아도 취업문제로 이들을 겁박하면 더욱 강박적으로 시험준비와 스펙경쟁에 내몰릴 것이다. 그러나 지구적 재난시대를 살아야 할 코로나 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문제풀이 경쟁이 아니라 함께 사는 지혜다.

교육현장의 근본적 체질 변화부터 모색해야 한다. 우선 피해 당사자인 학생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이들의 주체적 요구와 참여를 바탕으로 새로운 학교공동체 문화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동안 규제와 금지로 재난상황을 관리했던 교육부와 학교 당국도 이제는 적극적으로 학교생활의 복원과 재창조를 위한 활동들을 지원해야 한다.

재난을 겪은 청년세대는 역사적으로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전위 역할을 했다. 내가 만난 학생 한명은 노란 테이프로 폐쇄된 대학시설 앞에서 눈물이 났다며, 누구나 함께할 수 있는 더 많은 자율공간을 만드는 사람이 되겠다고 했다. 지금 스무살 그 학생이 그 꿈을 이루어가는 것을 보고 싶다.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