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1면 "우라늄 농축 징후" 기사..'오역'일까 '과잉 해석'일까

길윤형 2021. 9. 15.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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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심분리기 가동에 필요한 '냉각장치' 제거를
"농축 공장을 다시 돌리려는 징후"라 해석
북한 의도 아직 정확히 확인 어려워
위협 과장해 '대북정책' 영향 주려는 의도인듯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

오역일까, 과잉 해석일까.

<조선일보>가 15일치 1면 머리기사에서 북한의 핵위협을 강조하기 위해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의 13일 이사회 발언을 ‘자의적’으로 과잉 해석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신문은 이날 그로시 사무총장이 “북한이 영변의 우라늄 농축시설에서 냉각장치를 제거한 것으로 보이는 동향을 목격했다”고 발언했음을 전하면서, 이에 대해 “최근까지 가동 중단 상태였던 우라늄 농축 공장을 다시 돌리려는 징후”라는 해석을 달았다. 이 해석이 맞다면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가 지난달 27일 북한 핵 활동에 대한 연례 보고서인 ‘북한에 대한 안전조치 적용에 관한 보고서’에서 공개한 것처럼 영변의 5㎿(메가와트)급 원자로와 플루토늄 추출을 위한 ‘방사화학 실험실’을 재가동한데 이어 ‘고농축 우라늄’(HEU) 생산에도 나섰다고 결론 낼 수 있다. 한-미 양국은 북한에게 “하루 빨리 대화에 복귀하라”고 호소하고 있지만, 북한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위협적인 핵 활동을 재개한 꼴이 된다.

북한이 정말 우라늄 농축활동을 재개했다면, 북-미 핵협상의 미래는 더 어두워질 수밖에 없다. 이 활동이 갖는 전략적 의미를 이해하려면, 핵무기 제조 과정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핵무기 원료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플루토늄이다. 이 물질은 원자력 발전소를 가동시킬 때 나오는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 해 얻는다. 국제원자력기구가 지난 보고서를 통해 현재 북한에서 이뤄지는 행동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 것도 이 활동을 통해 최종적으로 얻게 되는 물질이 플루토늄이기 때문이다.

이 방식의 가장 큰 특징은 감시가 쉽다는 점이다. 미국은 감시 위성 등을 통해 영변 핵 시설을 철저하게 감시한다. 영변 5㎿ 원자로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지, 냉각수가 배출되는지를 철저히 분석해 북한이 시설 재가동에 나섰는지 여부를 판단한다.

두번째 물질은 고농축 우라늄이다. 이 방식은 감시가 쉽지 않다. 지하 비밀시설에 원심 분리기를 설치해 놓고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하는 현장은 위성사진으로 판독할 수 없다. 북한이 상당한 수준의 우라늄 농축 시설을 가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은 북한 ‘스스로’ 2010년 10월 북핵 전문가인 지그프리트 해커 박사를 초대해 영변 농축 시설을 공개하면서였다. 현재 북한이 영변 말고도 평양 교외인 강선 등이 제2, 제3의 농축 시설을 보유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지만, 모두 추정일 뿐이다.

다시 그로시 사무총장의 발언으로 돌아가 보자. 그로시 사무총장은 북한의 핵 활동에 대해 그동안 밝혀 온 우려를 재차 강조한 뒤 문제가 된 농축 시설에 대해 “일정 기간(for a period of time) 동안 영변의 원심분리 농축 시설은 가동되지 않은 것으로 보고됐다. 내 보고서가 (지난달 27일) 공개된 뒤 우리는 북한이 영변 원심분리 시설에서 냉각 장치를 제거한 것으로 보이는 움직임을 (추가로) 관찰했다”고 말했다.

원심분리기는 물체를 회전할 때 발생하는 원심력을 이용해 ‘우라늄238’에서 핵분열 물질인 ‘우라늄235’을 추출해 내는 장치이다. 회전 과정에서 열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식히려면 냉각 장치가 필요하다. 국제원자력기구는 북한이 지난 며칠 사이에 냉각 장치를 제거했다고 밝혔다.

이 발언을 듣고 내릴 수 있는 가장 무난한 해석은 영변의 농축 시설은 일정 기간 동안 가동되지 않았고, 지난 며칠 사이에 냉각 장치까지 제거됐으니, 당분간 가동이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이를 거꾸로 받아들여 냉각 장치 제거를 “가동의 징후”라고 해석했다. 이 해석이 맞으려면, 북한이 제거한 냉각 장치를 보수한 뒤 재 설치하거나 새 장치로 교환하는 과정을 확인해야 한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조선일보>의 이런 해석에 “완전한 오역”이라는 평을 내렸다.

미 국무부가 운영하는 <미국의 소리>(VOA)는 “북한이 농축 시설에서 냉각장치들을 제거한 것으로 보인다”는 그로시 사무총장의 발언을 전하면서 “이 움직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하지 않았다”는 유보적인 입장을 밝혔다. 북한이 어떤 목적 아래 농축 시설의 냉각 장치를 제거했는지는 아직 특정하기 힘들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조선일보>가 북한의 핵위협을 강조하기 위해 ‘오역’을 했거나 ‘과잉 해석’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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