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핵전쟁 일으킬라' 동분서주한 미 합참의장

이본영 2021. 9. 15.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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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드워드 신간 '위기', 트럼프 임기 말 묘사
의사당 난동에 놀란 합참의장이 비밀회의 소집
'어떤 지시든 나 거치라'며 우발적 사고 대비
중국군 장성에도 '공격 의사 없다' 두번 알려
CIA 국장 등도 "매우 위험한 상황이다" 긴장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임기 말에 마크 밀리 미군 합참의장이 핵공격 명령이나 중국에 대한 공격 가능성을 우려해 군 수뇌부를 강하게 단속한 것으로 드러났다. 밀리 합참의장은 정보기관 수장이나 민주당 소속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도 트럼프의 ‘정신적 문제’에 따른 도발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주고받으며 안간힘을 썼다고 밝혔다.

이런 내용은 <분노> 등 트럼프의 통치에 대해 2권의 책을 쓴 언론인 밥 우드워드가 <워싱턴 포스트>의 로버트 코스타와 함께 쓴 신작 <위기>(PERIL)를 통해 공개됐다.

‘핵무기 사용과 중국 공격 막아라’ 15일 <시엔엔>(CNN)에 소개된 책 내용을 보면, 밀리 합참의장은 올해 1월6일 워싱턴 의사당 난동 사태에 충격을 받았고, 대선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트럼프가 정신적 문제를 갖고 있으며 무슨 일이든 벌일 수 있다고 걱정하게 됐다. 밀리 합참의장은 이틀 뒤인 1월8일 워룸이라고 불리는 국방부의 군 지휘소 장성들을 집무실로 불러 비밀회의를 했다. 그는 “무슨 말을 듣든 정해진 절차에 따르라. 절차대로 해야 한다. 나도 그 절차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방 안을 돌며 참석자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고는 “알았나”라고 물어 “알겠습니다”라는 확답을 받았다고 한다.

비밀 회의는 의회의 대선 선거인단 투표 인증을 중단시키려는 폭동을 사주한 트럼프가 대외적으로는 핵무기 사용이나 중국을 상대로 한 공격을 지시할 수 있다는 걱정 탓에 소집된 것이다. 밀리 합참의장은 전부터 트럼프가 사고를 칠 가능성에 신경을 쓰고 있었으나, 의사당 난동을 보며 대통령이 제정신이 아니라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고 한다. 혹시 트럼프가 핵무기 사용 등 대외 도발을 지시하더라도 합참의장인 자신을 거치지 않고 지시를 실행하는 것은 절대로 안 된다고 회의에서 다짐을 받은 것이다.

마크 밀리 합참의장. AFP 연합뉴스

또 밀리 합참의장은 대선 직전, 또 의사당 난동 사건 직후 중국 쪽에 두 차례 전화해 공격은 없을 것이라며 안심시키려고 노력했다. 지난해 11월 대선을 며칠 앞두고 미국 정보기관에서는 트럼프가 막판 역전을 위해 대외 군사행동에 나설 것이라는 게 중국 정부의 예상이라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에 밀러 합참의장은 리쭤청 중국 중앙군사위원회 연합참모부 참모장에게 전화를 걸어 중국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고 말했다. 밀러 합참의장은 올해 1월8일 펜타곤 비밀회의 소집 직전에도 리 참모장에게 연락해 “미국 상황이 불안정해 보일 것이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원래 그렇다. 우리는 100% 안정적이고, 모든 게 괜찮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리 참모장은 독일의 히틀러가 1933년 제국의회 의사당 방화 사건을 빌미로 ‘비상 권력’을 거머쥔 일을 거론하며 우려를 거두지 않았다고 이 책은 전했다. 밀러 합참의장은 트럼프가 중국과의 본격적인 전쟁은 아닐지라도 작은 충돌을 유발할 수 있고, 그러면 연쇄반응으로 싸움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CIA 국장 “우익 쿠데타로 가고 있다” 의사당 습격이라는 친위쿠데타적 상황에 다른 안보 분야 인사들도 대경실색했다. 밀리 합참의장은 참모들에 모든 상황을 주시하라고 당부한 뒤 국방부의 정보 수집 기관인 국가안보국(NSA) 국장 폴 나카소네에게도 전반적인 상황 감시 강화를 주문했다.

지나 해스펠 중앙정보국(CIA) 국장에게도 “360도 방향의 모든 것을 적극 감시하라”고 당부했다. 앞서 해스펠 국장은 2020년 11월 대선 결과를 트럼프가 인정하지 않은 것에 대해 “매우 위험한 상황”이라며 “우익 쿠데타로 가고 있다. 모든 게 미쳐 돌아간다. 트럼프는 짜증을 부리는 6살 아이처럼 행동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해스펠 국장은 트럼프가 이란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트럼프의 최측근인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국무장관도 선거 직후 트럼프가 “현재 아주 어두운 공간에 있다”고 했다. 올해 1월20일 평화적 정권 이양이 자신의 유일한 목표라고 생각한 밀러 합참의장은 폼페이오 장관에게 “비행기 엔진 4개 중 3개가 고장났다. 하지만 우리는 비행기를 안전하게 착륙시켜야 한다”고 말했다고 이 책은 전했다.

밀러 합참의장은 의사당 난동 직후 펠로시 하원의장에게도 전화를 받았다. 통화 녹취록에는 밀러 합참의장이 펠로시 의장에게 핵무기는 안전하게 보관하고 있다며 안심을 시키는 내용도 나온다. 펠로시 의장은 “트럼프가 의사당을 공격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면, 그가 또 무슨 짓을 할 지 알 수 있나”라며 탄식했다. 또 “당신도 알다시피 트럼프는 미친 지 오래됐다”고 했다. 펠로시 의장의 트럼프에 대한 평가에 밀러 합참의장은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책을 쓴 우드워드와 코스타는 중국이나 야당 지도자와 안보 문제를 따로 의논한 밀러 합참의장이 월권을 했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면서도, 우발적 전쟁이나 핵무기 사용을 예방하려는 선의에서 한 행동이었다며 밀러 합참의장을 옹호했다. 저자들은 밀러 합참의장이 트럼프가 군사 문제에서 불가측한 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은 그의 경험 때문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대선 패배 직후, 임기 만료를 닷새 앞둔 올해 1월15일까지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을 전원 철수시키라는 즉흥적 지시를 했다고 한다.

“바이든을 묻어버리자” 책에는 트럼프의 책사로 불렸던 스티브 배넌의 충동질로 의사당 난동 사태가 커졌음을 시사하는 내용도 나온다. 배넌은 지난해 12월30일 휴양지인 플로리다주 마러라고에 있는 트럼프에게 “오늘 워싱턴으로 돌아와 극적 복귀를 보여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1월6일 의회의 대선 결과 인증과 반대 집회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배넌은 또 “펜스(마이크 펜스 부통령)에게 전화해 빌어먹을 스키장에서 당장 돌아오라고 하라”고 주문했다. 배넌은 1월6일은 “심판의 날”이라며 “바이든을 묻어버리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올해 1월6일 워싱턴 의사당에 난입한 트럼프 지지자들이 담장을 기어오르고 있다. AP 연합뉴스

트럼프가 대선 결과 인증을 두고 정권의 2인자이자 상원의장이기도 한 펜스 부통령을 압박한 적나라한 상황도 소개됐다. 의사당 난동 하루 전인 1월5일, 백악관 밖에 몰려든 지지자들의 함성이 들리는 가운데 펜스 부통령을 만난 트럼프는 “이 사람들은 당신한테 (선거인단 투표 결과 인증을 거부할) 권력이 있다는데, 그렇게 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펜스 부통령이 그럴 권한이 없다고 거듭 말하자 트럼프는 “이해를 못하네. 당신은 할 수 있어. 그걸 하지 않으면 내 친구가 아냐”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난동 사건 당일인 6일 아침에도 다른 측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당신이 그걸 하지 않는다면 난 4년 전에 사람을 잘못 고른 거네”라며 화를 냈다고 한다.

트럼프는 이날 대선 결과 무효화를 요구하는 집회에서 연설했고, 참석자 수백명이 의사당을 습격하는 과정에서 5명이 숨졌다. 트럼프가 공개적으로 배신감을 토로한 펜스 부통령은 의사당 건물에서 몸을 숨겼고, 그 곁을 지나간 난입자들은 “펜스를 목매달자”고 외쳤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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