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을 향한 믿음의 도약

한겨레 입력 2021. 9. 15. 12:16 수정 2021. 9. 15.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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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아들 귀농서신]아내도 저도, 함께하는 삶에 대한 불편함이 있습니다. 신혼이라는 '버프'를 등에 업고도 붙어 사는 게 불편한데, 시골살이를 시작하게 되면 어찌 될까요. 귀농이란 불편함과 어색함을 찾아가는 일이리라 생각하는데 아내는 까탈스럽게 굴고, 저는 잔소리를 계속 하게 되면 어쩌나 싶어요.

[엄마아들 귀농서신] 선무영|시골로 가려는 아들·로스쿨 졸업

어머니는 항상 용감하셨죠. 그리고 그런 어머니의 곁에는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자식들은 부모님을 바라볼 때 ‘영혼의 단짝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어느 정도 있다 해요. 제가 본 어머니 아버지는 단짝보다 동지라는 말이 더 어울립니다. 넓은 바다에 떠 있는 조각배에 함께 탄 동지. 모진 시절에 교회 선후배로 만나셨다 했죠. 어머니는 아버지가 ‘운명’ 교향곡을 들으며 눈물 흘리는 모습에 반하셨다 했습니다. 이렇게 감동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으리라 믿으셨다 했죠. 그 눈물에 속았다며.

오랜 세월 아버지 편을 들다가 어머니께 들었던 아버지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사실 귀여운 할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이해 못 할 게으름. 누구에게든 어려운 말을 잘 못 하시는 부끄럼. 같이 사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듯한 묘한 집중력과 특유의 씩씩거림.

초등학생 시절에 한번은 아버지가 어머니 몰래 캠코더를 홈쇼핑에서 사셨어요. 그런데 이게 가족여행 때 쓰려고 사신 건데 ‘몰래’가 될 수 있습니까. 어머니가 보시고는 큰돈 쓰는데 같이 사는 사람한테 한마디 묻지도 않았다며 화를 내셨죠. 아버지께 여쭤봤어요. “어차피 어머니가 알게 될 텐데 왜 묻지 않고 지르시나요.” 아버지는 물어보면 절대 못 사게 되니, 일단 사서 얼마나 좋은지 보면 이해해줄 거라 생각하셨다 했죠. 카펫도 색소폰도 그리고 괴산으로 귀농 가신 것도 어쩌면 같은 맥락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아버지 혼자 곰곰이 생각해보시고 꼭 ‘하고야 만다’는 마음이 일면, 어머니가 무르실 수 없게 준비 다 해놓으시고. 짜잔!

어느 해인지 12월31일, 아버지와 함께 술을 잔뜩 마시고 이야기를 나눈 적 있습니다. 아버지께 건방지게 했던 말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저는 아버지가 제게 그런 것처럼 제 아이에게도 꼭 그런 훌륭한 아버지가 되고 싶습니다만, 제 아내에게는 훨씬 자상한 남편이 되어야겠다 생각합니다!” 아버지는 깔깔 웃으시며 “야! 너가 한번 해봐라” 하셨죠.

얼마 전부터 아내가 장기휴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두달 가까이 24시간 하루 종일 딱 붙어 있어요. 주변에선 좋겠다며 부럽다 합니다만, 마냥 좋지만은 않습니다. 귀농하면서 아내와 온종일 함께 일하는 것을 꿈꿨는데, 붙어 있다 보니 이것저것 불편합니다. 1픽셀 단위로 틀어진 것을 골라내던 아내는 이제 그 눈으로 유리잔의 얼룩을 잡아냅니다. 나눠 하던 설거지도 도맡아 하겠다 합니다. 제가 하면 두번씩 해야 한다며 애초에 자기가 하겠대요. 저는 아내가 해준 요리라면 늘 맛있게 먹어주는데. 아내는 제가 땀 뻘뻘 흘리며 볶음밥을 해 와도 ‘짜네’. 가령 맛이 없더라도 맛있게 먹어주면 좋겠다는 말에는 그러면 요리가 늘지 않을 거라며 개선점을 찾아 조목조목 이야기해주는 아내입니다. 이렇게 쓰는 중에도 옆에서 사전검열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제는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합니다.

7년이나 연애하면서도 못 보던 모습들을 봅니다. 걱정이 쌓여요. ‘귀농해서 시골에 살 때는 어쩌려고 저리 까탈스러울까!’ 아내도 불편해하는 점이 있습니다. 제가 그렇게 잔소리를 하더라고요. ‘운동해라. 책 읽어라’, 할 때까지 계속 잔소리를 한다며 질색을 해요. 귀농할 생각에 마음이 바빠 하는 말인데, 아내한테는 그게 다 잔소리인가 봅니다. 마음 상하는 일이 있으면 하루 종일 꿍해 있는 제가 속이 좁다고도 하고, 해야겠다는 게 있으면 혼내고 어르고 조르기까지 하다가 그래도 못 하게 하면 토라지니까 결국 ‘지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살겠다’고 속 터져 합니다.

이렇게 아내도 저도, 함께하는 삶에 대한 불편함이 있습니다. 혹시 더 바빠지고 더 힘들어져서 서로에게 더 소홀해지면 어쩌나요. 신혼이라는 ‘버프’를 등에 업고도 붙어 사는 게 불편한데, 시골살이를 시작하게 되면 어찌 될까요. 귀농이란 불편함과 어색함을 찾아가는 일이리라 생각하는데 아내는 까탈스럽게 굴고, 저는 잔소리를 계속 하게 되면 어쩌나 싶어요.

결혼에 대해 어머니께서 해준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람은 몸도 마음도 생김새가 제각각인지라 다른 사람 둘이 모여 살면 불편한 일투성이일 거라고요. 편하게 살고 싶으면 그냥 혼자 사는 것이 평화롭고 좋을 거라며 ‘그럼에도’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때에 결혼하는 거라고요.

요새 생각해보니 둘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어머니의 ‘용기’ 역시 아버지가 곁에 있다는 든든함이 한몫하지 않을까요. 사실 제가 귀농하려는 결심에도 아내에 대한 믿음이 바탕이 되어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 함께 잘 헤쳐나갈 자신이 있는데! 아내를 가만 지켜보고 있자면 아내도 과연 귀농해서 행복해할 수 있을까 싶어요. 어머니는 하루 종일 아버지와 붙어 계시면서 불편하지 않으신 건지요. 무얼 믿고 과감히 귀농을 결심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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