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말해야 할 때 침묵하는 文

민병기 기자 2021. 9. 15.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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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언론중재법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힌 것은 지난달 31일이다.

7월 국회 상임위 논의가 시작되면서 한 달 넘게 공방을 벌이던 여야가 협의체 구성이라는 '휴전안'을 채택하자마자 문 대통령은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숙성의 시간을 갖기로 한 것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 전까지 더불어민주당이 법안 강행 처리 입장을 굽히지 않을 때도, 야당에서 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일 때도 문 대통령은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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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기 정치부 차장

문재인 대통령이 언론중재법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힌 것은 지난달 31일이다. 7월 국회 상임위 논의가 시작되면서 한 달 넘게 공방을 벌이던 여야가 협의체 구성이라는 ‘휴전안’을 채택하자마자 문 대통령은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숙성의 시간을 갖기로 한 것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 전까지 더불어민주당이 법안 강행 처리 입장을 굽히지 않을 때도, 야당에서 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일 때도 문 대통령은 침묵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국회의 시간”이라고만 되뇌었다. 대통령의 침묵이 계속되며 대통령의 뜻이 어디 있는지 여권 내에서도 의견이 갈렸고, 만만치 않은 사회적 비용이 소모됐다. 그나마 문 대통령이 내놓은 입장은 “언론의 자유와 피해자 보호가 모두 중요하다”는 이견의 여지가 없는 ‘좋은 말씀’이었다. ‘너도 옳고 또 너도 옳다’는 황희 정승식 화법이기도 하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가족 비리 의혹이 계속 불거지고, 검찰개혁의 방향을 두고 나라가 두 동강 났을 때도 문 대통령은 한동안 침묵했다. 서초동에서는 ‘검찰을 때려잡자’고 하고, 광화문에서는 ‘조국을 구속시키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이 벌어지고 나서도 문 대통령은 “정치적 사안에 대해 국민의 의견이 나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옳으신 말씀’을 했다. 긴급재난지원금을 두고 당·정 갈등이 공개됐을 때도 문 대통령은 침묵했다.

모두 대통령의 입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대통령의 발언으로 사태를 수습할 수 있을 최적의 시기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적절한 때를 찾는 동안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그로 인해 우리 사회의 유·무형적 손실 또한 크게 늘었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모든 입법 사안에 대해 ‘국회의 시간’이라며 기다려준 것도 아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민주당과 문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이 전면에 나설 때 혹은 그들과 대통령의 뜻이 엇갈릴 때, 대통령의 침묵이 길어졌다”는 분석을 내놨다. 검찰개혁·언론개혁을 외치는 핵심 지지층을 편들 수도, 그렇다고 ‘당신들이 틀렸다’고 일갈할 수도 없을 때 입을 닫고 모습을 감춘다는 주장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석방을 반대하는 지지층의 반발을 우려해 오로지 대통령이 책임져야 하는 사면보다는 법무부 장관의 ‘몫’인 가석방을 택했고, 가석방이 이뤄지고 난 후에도 이와 관련한 문 대통령의 언급을 최소화한 것 아니냐고 분석했다.

대통령이 핵심 지지층의 눈치를 본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단 대통령이 핵심 지지층의 요구에 맞서는 결단, 싫은 소리를 당당히 하는 용기를 쉽게 찾아보지는 못한 것 같다. 대통령 네 명의 리더십을 분석한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 책을 쓴 도리스 컨스 굿윈은 “링컨은 최고 사령관이란 권한에 근거한 행정 명령으로 노예 해방 선언을 공포했고,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헌법이나 법률로 명확히 규정되지 않은 경우 ‘국민의 청지기’로 무엇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고 생각했다”고 썼다. 대통령이 나서야 할 때 주저하지 않고 어떻게든 리더의 면모를 보여줬단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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