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경의 시:선(詩:選)>원경

기자 2021. 9. 15. 11:20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내 친구 M도 서점을 운영한다.

실은 서점을 운영하는 친구가 둘이나 더 있다.

등 뒤에는 불 밝힌 서점이 있고 앞에는 한없는 세계가 있으니 나는 작디작아서, 이런 내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는 이상한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단 한 번, 고작 반나절 바닷가 서점은 내게 그렇게 남았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썰물 지는 파도에 발을 씻으며 먼 곳을 버리기로 했다. 사람은 빛에 물들고 색에 멍들지. 너는 닿을 수 없는 섬을 바라보는 사람처럼 미간을 좁히는구나.// 수평선은 누군가 쓰다 펼쳐둔 일기장 같아. (…) 환한 꿈을 꺼내 밤을 비추면 숨겨두었던 약속들이 흘러나와 낯선 생이 문득 겹쳐온다고.’ - 이혜미, ‘원경’(시집 ‘빛의 자격을 얻어’)

내 친구 M도 서점을 운영한다. 실은 서점을 운영하는 친구가 둘이나 더 있다. 그들 모두 먼저 친구였고 각각의 이유로 훗날 서점을 열었다. 나는 가끔 그런 사실이 우습다. 이게 무슨 짓인가 싶고 크크, 소리 내어 웃기도 한다. 아무튼, 그중 하나인 M의 서점은 바닷가에 있다. 바다 근처도 아니고 정말 바닷가 말이다.

나는 그 서점에 딱 한 번 가봤다. 재작년 늦은 겨울. M의 서점은 수평선을 가지고 있었다. 갯내를 가지고 있었다. 거세지만 못되지는 않은 바닷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서점 앞 아주 작은 정원에 앉아서 낮 바다가 저녁 바다가 되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집어등을 켠 배들이 검게 변한 밤하늘과 밤바다를 갈라놓았다. 감기 걸릴라. 친구의 걱정에도 나는 추운 줄 모르고 바다를 보았다. 안심을 했던 것이다. 등 뒤에는 불 밝힌 서점이 있고 앞에는 한없는 세계가 있으니 나는 작디작아서, 이런 내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는 이상한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단 한 번, 고작 반나절 바닷가 서점은 내게 그렇게 남았다.

나는 궁지에 몰린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그 바닷가 서점을 떠올린다. “먼 곳을 버리”는 마음으로 당장의 위안을 얻기 위해서. 조금만 더 힘들어지면 나는 그곳으로 도망갈 거야. 마치 각오처럼. 그러곤 주위를 둘러보면, 위태로워 보이기만 했던 것들이 제법 넉넉한 듯 여겨지고 한숨 돌릴 수 있게 된다. 아주 멀리서 내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시인·서점지기

[ 문화닷컴 | 네이버 뉴스 채널 구독 | 모바일 웹 | 슬기로운 문화생활 ]

[Copyrightⓒmunhwa.com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구독신청:02)3701-5555 / 모바일 웹:m.munhwa.com)]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