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박훌륭 약사의 훌륭한 딴짓

정영현 기자 2021. 9. 15.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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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거절당하는 데 익숙해지면서 한 가지를 잊고 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나 자신을 거절하고 있다는 거다.

그가 좋은 약을 추천하거나 처방해도, 사람들은 광고가 붙은 유명한 약만 가져갔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에게 건넨 인사도, 좋은 약을 권하는 말들도 거절당했을지언정, 자신의 꿈을 스스로 거절하지는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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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모두들 거절당하는 데 익숙해지면서 한 가지를 잊고 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나 자신을 거절하고 있다는 거다. 특히 내 욕구,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거절한다. 난 다른 이에게도 거절당하는데 내 자신까지 거절해야 할까? 우리 삶의 목표는 무엇일까? 가족의 행복, 중요하다. 인류의 평화, 역시 중요하다. 하지만 내 자신의 행복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그러면 나를 거절하지 않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방법은, 또다른 나의 캐릭터를 만드는 거다. 요즘엔 이걸 N잡러라고도 한다. 부캐라는 건 다른 이들이 봤을 때 ‘오, 이 사람은 저게 부캐구나!’라고 이야기할 순 있지만 내 스스로 미리 정하지 않고 꾸준히 하면 된다. 시간에 스며들다보면 나는 여러 캐릭터를 가지고 있을 테니까. (박훌륭, ‘약국 안 책방’, 2021년 인디고 펴냄)

박훌륭 약사는 슬펐다. 그가 좋은 약을 추천하거나 처방해도, 사람들은 광고가 붙은 유명한 약만 가져갔다. 그가 생업의 최우선 조건으로 꼽았던 것은 사람끼리 ‘감사합니다’와 ‘수고하셨습니다’를 주고받을 수 있는 환경이었으나, 약국에서 그는 약을 꺼내주고 돈을 받는 사람일 뿐, 다정한 인사말은 허공으로 날아갔다. 본업이 쓸쓸해질 때마다 그는 책을 읽었다.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책방을 열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나, 꿈을 실현하기도 그 꿈으로 먹고살기도 막연해 보였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에게 건넨 인사도, 좋은 약을 권하는 말들도 거절당했을지언정, 자신의 꿈을 스스로 거절하지는 않기로 했다.

어느 날 약장 한쪽을 치우고 책장을 넣었다. 약국 안에 미니서점이 생겼다. 이름하여 ‘아직 독립 못 한 책방’. 약국에 깃들인 이 별난 책방은 이제 동네 명물이 되어 사람들은 이곳에서 몸과 마음의 약을 같이 산다. 세상이 나를 수없이 거절해도 나만은 나를 거절하지 않겠다는 다짐, 새로운 나를 만나는 길은 그리 어렵고 멀지 않다. /이연실 문학동네 편집팀장

정영현 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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