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 난 친구들과 놀고 싶단 말이야"

칼럼니스트 최은경 입력 2021. 9. 15. 09:16 수정 2021. 9. 15.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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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육아] 괜찮은 척, 쿨한 적 하지 않는 아이

"엄마 나 1시 반에 친구들이랑 만나서 놀아도 돼?"

"그럼, 밖에서 노는 건 되지."

코로나 시대라 해도 사람들을 전혀 만나지 않을 수 없다. 나 역시 일 때문에, 혹은 오랜만에 친구랑 이야기 하려고 등등의 이유로 사람들을 만난다. 하지만 아이들이 친구랑 만나거나, 친구 집에 가서 논다고 하면 겁부터 난다. 아이가 "우리 집에서 친구들이랑 놀아도 되나?"라고 물으면 '그래도 되나?' 신경이 쓰인다. 우리 아이가 친구 집에 놀러 간다고 해도 걱정이다. '지역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 가족 간 감염도 높다고 하는데 괜찮을까?' 걱정이 앞선다.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이전, 친구와 노는 아이. 집에서 친구랑 노는 것도 힘든 시절이 안타깝다. ⓒ최은경

그렇다고 한창 친구들이랑 놀 나이에 집에만 두는 것도 문제. 친구들이랑 좀 놀아야 인터넷도 좀 덜하면서 운동도 될 것이라는 생각에 밖에서 노는 것은 가급적 허락하는 편이다. 개학을 하면서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과 조금이라도 놀고 집에 오지만, 온라인 수업을 할 때는 아이들끼리 미리 약속을 잡는 것 같다. 학교에서는 왕따 등 학교폭력을 이유로 단톡방을 만들지 말라고 하지만, 코로나 시대에 단톡방마저 없다면 아이들은 정말 더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날도 친구들과 놀기로 약속했다고 한 아이. 그런데 약속 시간이 되도록 나간다는 말이 없다. 너무 조용하다. 말도 없이 나갔나 싶어 거실로 나와 보니, 아이 코 끝이 빨갛다.

"왜, 왜 울고 있어?"

"…"

"1시 반에 만난다고 하지 않았어?"

"응 그런데… 1시 17분에 보낸 톡에 애들이 아무 대답이 없어. 내가 왜 씹냐고 해도, 아무도 확인만 하고 답변을 안 해줘."

"그래서 친구들 답변 기다리고 있는 거야?"

"응."

조금 지나서 친구들이 보낸 톡을 확인한 아이는 더 울상이다.

"내가 어디냐고 물어보니까, 어딘지 모르겠대. 그리고 (자꾸 어딘지 물어보니까) 그만 좀 하래."

아… 나도 모르게 밀려오는 깊은 한숨. 아이만큼이나 내 속도 이미 상했다.

"이 동네에 사는 애들이 어딘지 모르겠다는 게 좀 이상하지 않아? 그 아이들 오늘은 너랑 놀고 싶지 않은가 봐. 너도 오늘은 그냥 집에 있어. 지금 친구들이 너에게 한 행동은 그렇게 좋은 매너는 아닌 것 같다."

"어딘지 모를 수도 있지. 엄마는 왜 그렇게 생각해?"

나는 무척이나 화나고 속상한 마음을 애써 누르면서 이 상황에서 최대한 아이가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게 말했다. 그러나 서운하게도 아이 마음의 추는 이미 친구들에게 기울어져 있었다. 친구가 제일 좋을 때라고 하지 않나. 그런 아이가 답답하고, 친구들이 야속했다. 아이는 자꾸 미련이 남는지 전화기를 만지작거렸다. 내가 계속 말했다.

"톡은 오해가 생길 수도 있어. 엄마도 일하다가, 친구들이랑 톡으로 그럴 때 있어. 그럴 때는 전화를 해서 오해를 푸는 게 낫더라. 전화를 해서 지금 어딘지 물어봐."

"전화는 하고 싶지 않아. 그리고 나 전화도 못 걸어."

"왜?"

"충전된 거 다 썼단 말이야(아이 전화는 선불충전식이다)."

"그럼 엄마 전화를 써."

"싫어."

"그렇게 계속 카톡 보내고, 답변 올 때까지 울면서 기다리는 거보다 통화해서 목소리 듣고 서로 어떤 상황인지 이해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 그보다 지금 보면 그 애들은 너랑 놀고 싶지 않은 것 같아. 그럼 너도 매달리지 말고, 그냥 쿨해져. 좀 안 놀면 어때."

"싫어, 난 애들과 놀고 싶단 말이야."

아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이 마음을 나는 미처 읽지 못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친구들의 행동으로 속상한 내 아이만 보였지, 아니 그 이야기를 듣는 내내 불편해진 내 마음 때문에 모처럼 친구랑 놀고 싶은 아이 마음까진 들여다보지 못했다. 아이 친구들을 탓한 내가 부끄러웠다. 우선 아이가 전화를 사용할 수 있게 충전을 끝내고 물었다.

"그래서 넌 어떻게 하고 싶은데?"

"일단 나가서 마음을 좀 진정시키고 친구들을 찾아볼게. 못 찾겠으면 (친구에게) 전화를 할게."

"그래. 그럼 그렇게 해 봐."

어딘지도 모르는 아이들을 찾아 나서겠다니. 하늘은 곧 비가 올 것 같은 기세인데. 놀고 싶은 아이 마음을 알고 나니 말리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래, 친구들 찾아서 오해도 풀고 실컷 놀아라. 그로부터 2시간 후 아이는 신나는 표정으로 집에 들어왔다.

"엄마한테 이야기해줘야지. 어떻게 된 일이래?"

"응? 뭐?"

"아까 그 상황에 대해 친구들이 말 안 해? "

"안 했는데? 횡단보도 앞에서 나를 발견한 아이들이 막 환호해줬어."

"그게 다야?"

"응. 정말 재밌었어."

이 천진한 아이들의 세계에서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는다. 아이의 세계에는 '~ 하는 척'이 없다는 것. 순간의 감정에 대단히 충실하다는 거다. 보낸 톡에 답변이 오지 않아 속상해서 울긴 했지만, 그걸 알아달라는 마음도 없고, 친구들을 보는 순간 속상한 마음이 사라진 아이. 속상한 마음이 들지 않으니 풀어야 할 오해 따위도 없어진 상황. 뒤끝 없는 아이들의 모습. 이 얼마나 담백한가.

나라면 어땠을까. 나를 끼워주지 않는 분위기에서 아이처럼 친구들을 찾아 나섰을까. 아니었을 거다. "칫, 치사해서 나도 안 놀아"라며 말았을 거다. 안 끼워줘도 괜찮다는 듯, 쿨한 척했을 거다. 나중에라도 상대에게 속상한 마음을 표현했더라면 이런 말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일을 마음에 담고 있었어? 말을 하지 그랬어. 왜 그랬어, 쪼잖하게." 쪼잔한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서 쪼잔하지 않은 척 하며 산다. 버틴다.

아이처럼 순수하게 "나 너랑 놀고 싶다"고, "나 너 보고 싶다"고, "나 너랑 이야기 하고 싶다"라고 말한 적이 언제였나 싶다. '놀고 싶다'고 말하려다 해야 할 일이 생각나고, '보고 싶다'고 말하려다가 갈 수 없는 상황 때문에 포기한 적이 한두 번인가 말이다. 그래서였나. SNS에 "(내가) 보고 싶다"라고 댓글을 남긴 선배의 한 마디에 크게 고민하지 않고 대구 가는 기차를 예약했던 것은. 순수한 그 마음에 나도 순도 100%로 응답하고 싶었나 보다.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성에 대해 아는 것부터 솔직하게 말하고 싶어서 성교육 전문가에게 질문한 성교육 책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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