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집'이란 얼마인가 [오늘을 생각한다]

입력 2021. 9. 15.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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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노무현 정권 첫해 10·29 대책 발표 후 제정된 종부세법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비싼 집이 정의되기 시작했다. 9억원 이상 부동산을 기준으로 종부세가 부과되고 취득세, 재산세, 양도소득세, 부동산 중개 수수료 등도 9억원을 중심으로 비례했다.

지금은 아니다. 비싼 집을 정의하기 어려워졌다. 특히 올 4·7 재보궐선거에서 오세훈·박형준에 참패한 여당이 떠나간 ‘서민 민심’ 돌아오라며, 5월 재산세 감면 기준을 6억원에서 9억원으로 후퇴시키고, 6월 종부세 상위 2%에만 적용 및 양도세 비과세 기준 12억원 후퇴를 당론으로 채택했다. 이후 여야합작으로 8월 종부세 기준을 11억원으로 후퇴시켰고, 양도세 공제 기준을 곧 12억원으로 후퇴시킬 것이라 말한다.

1년 전 발표된 7·10 대책에서 정부와 여당은 각종 부동산 세제 혜택 철폐를 발표했건만, 시행조차 못 해보고 1년 만에 정반대 ‘감세·혜택 퍼주기 노선’으로 역주행하고 있다. 현재 들쭉날쭉 비싼 집 기준 정책에는 신뢰도, 엄밀함도, 거침도 없다. 정책 불신뿐인 부동산 정책 앞에 믿을 게 ‘영끌’뿐인, 허우적거리는 국민 처지만큼이나 세금도 허둥대는 형국이다.

상황이 이 지경인데 책임자도 찾을 수 없다. 8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에서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기획재정부 이억원 차관에게 도망간 9억원에 관해 물었다. 양도소득세 비과세 기준이 9억에서 12억으로 후퇴한 개정안이 ‘증세’인지 ‘감세’인지 묻자 이 차관은 20초간 침묵했다. 같은 달 같은 위원회에서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에게 도망간 9억원에 관해 물었다. 종부세가 9억원에서 11억원으로 후퇴하는 것이 부동산 시장에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물었다. 총재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이 차관도, 이 총재도 대답하지 않았고, 위원회에 착석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도 침묵했다.

침묵 속 역주행하는 부동산 정책 앞에 이들 모두가 원팀인 형국이다. 종부세는 야당이 맡고, 양도세는 여당이 맡고, 고가주택 중개 수수료 인하는 국토부가 맡고, 기재부는 협력한다. ‘감세 어벤져스’가 모여 폭등한 부동산 가격 사수에 나섰다. 한편 경제부총리는 재난지원금 퍼주기로 ‘나라 곳간 비어가고 있다’며 팬데믹 속 몰려든 가난한 서민 악당 물리치는 데 한창이다.

오락가락 비싼 집 기준 정책을 보며 부양의무제 낙인의 피해자인 중증 뇌병변장애인 김씨가 떠오른다. 종부세도, 양도세도 9억원 기준에서 도망갔건만, 부양의무제는 도망가지 못해 벌어진 피해 사례다. 김씨는 38년 만에 탈시설했으나 해체된 가족이 9억원 이상의 부동산을 보유했다며 국가가 가족에게 수급비를 전액 청구했던 사연이다. 부양의무제는 9억원 기준에 비싼 집이 정의돼 있다. 기준조차 알 수 없는 ‘비싼 집’이 가진 자에게는 감세의 계기로, 없는 자에게는 속박의 근거로 작용하는 엉터리 정책 한복판에 살고 있음을 매일 체감할 뿐이다.

변재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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