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의 오마이갓] 최강 미국 쫓아낸 탈레반, 여성들도 이길까
지난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대학 강의실 중간에 남녀를 구분하는 커튼이 쳐진 사진이 공개돼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슬람 원리주의 집단인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한 후 여성들에게 눈조차 망사로 가리는 부르카 착용을 강제한 데 이어 대학 강의실까지 남녀 학생이 서로를 볼 수 없도록 갈라 놓은 것이지요. 외신에 따르면 출입문도 남녀가 다르게 사용하도록 했다지요.
이 사진을 보면서 100년 전 우리 교회 풍경이 떠올랐습니다. 지금도 지방의 문화재급 예배당 가운데는 ‘기역자 예배당’ 혹은 가운데 커튼이나 나무 판자로 남녀를 구분했던 예배당이 여럿 남아 있지요. 직육면체 건물에 출입문은 남녀 따로 구분한 예배당도 있지요. 이처럼 우리로서는 역사 속의 ‘문화재’로 여기는 풍경이 21세기 대명천지에 현실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기역자 예배당’과 아프간 대학 강의실 원리는 똑같습니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소리만 들을 수 있을 뿐, 남녀는 서로를 볼 수 없습니다. 다만 설교자나 교수만 남녀 양쪽을 볼 수 있는 구조입니다. 2021년 기준으로 보면 코미디 같은 일이지요.
사진으로 보면 똑 같은 구조이지만 2021년 아프간 대학 강의실과 100년 전 한국의 예배당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100년 전 한국의 기역자 예배당은 그 이전엔 집안에 갇혀서 공개적·공식적 외부 행사에 참여할 수 없었던 여성들을 교회 공간으로 초대하는 기능이었습니다. 여성 외부 활동의 시작이었던 셈입니다. 19세기말 한국을 찾았던 외국인 선교사들의 여성 전도는 무척 힘들었습니다. 여염집 여성들은 바깥 출입 자체가 어려웠기 때문에 만나서 전도할 기회가 적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선교사들이 먼저 만나 전도한 대상은 고아 소녀, 기생, 과부 등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렵게 시작한 전도였습니다. 그리고 목사, 전도사, 장로가 되는 데에는 오랜 기간이 걸렸지요. 그렇지만 여성들이 교회의 실질적인 중심이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뒤엔 ‘종교교회’는 한국 개신교 역사에서 여성의 비중을 보여주는 대표 케이스 중 하나입니다. 이 교회는 19세기말 배화학당을 설립해 여성 교육에 앞장선 미국 출신 여성 캠벨 선교사에 의해 시작됐습니다. 원래 배화학당 학생들을 교인으로 한 자골교회에서 출발했지만 점차 남성 신자들이 늘면서 종교교회와 자교교회 등 2개 교회로 독립하게 됐던 것이지요. 출발 자체가 여성으로 시작해서인지 종교교회는 설립된 지 121년이 지난 지금도 여성 장로의 비율이 3분의 1 정도 된답니다.
반면, 2021년 아프간 대학 강의실은 정반대이지요. 탈레반이 축출된 이후 20년간 자유롭게 사회생활을 했던 여성에게 다시 차별의 굴레를 씌우는 첫 걸음이니까요. 아래 사진은 1980년대 남녀 대학생이 편안하게 어울렸던 아프간 강의실 모습입니다.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한 후 화제가 된 사진이 있습니다. 1970년대 아프간 여대생들이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환하게 웃으며 거니는 모습이었지요. 마찬가지로 이 사진에서도 히잡을 쓰지 않은 여학생들이 남학생들과 자유롭게 어울려 담소하는 모습입니다.
2021년 현시점에서 아프간 여성들에게 중요한 점은 또 있습니다. 조선 여성들은 수백년 동안 억눌려 있다가 교회를 통해 비로소 숨 쉴 공간을 얻었다면, 아프간 여성들은 1970~80년대엔 자유롭게 지내다가 탈레반 집권 이후 자유를 억압당했던 것이지요. 게다가 2001년 탈레반이 미군에 의해 축출된 이후에 태어난 세대는 태어나서 처음 겪는 여성 억압입니다. 중장년 아프간 여성들은 탈레반 집권 이전에 맛본 자유를 빼앗기는 것이지만, 젊은 세대는 생전 처음 여성 차별을 겪게 된 것이지요.
아니나다를까 외신을 통해 놀라운 소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탈레반이 총을 들고 있는 가운데 아프간 여성들이 ‘자유’를 외치며 시위를 하고 있다는 뉴스가 속속 전해지고 있습니다. 취재 기자를 채찍으로 때리고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을 거리에서 총살하는 극도의 공포 속에서 공개적으로 시위를 하는 여성들의 모습은 놀랍습니다. 아마도 자유를 겪어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몰라도 한번 자유의 맛을 느껴본 사람은 도저히 억압받는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는 모양입니다.
흔히 아프간을 ‘제국의 무덤’이라고 말합니다. 영국, 소련(러시아)에 이어 미국까지도 제풀에 지쳐 떠나게 만든 나라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탈레반이 외부의 강력한 세력엔 강할지 모르지만 자국 내 여성들의 자유를 향한 열망까지도 꺾을 수 있을까요. 아프간의 미래, 특히 여성들이 보여줄 미래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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