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K-방역 집착이 불러온 K-불평등

최훈길 2021. 9. 15.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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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우 한국자영업연구원장
권순우 한국자영업연구원장. (사진=방인권 기자)
[권순우 한국자영업연구원장] K-불평등이 심각한 양상이다. K-불평등이란 급격한 경기침체 후에 회복의 과정이 양극화되면서 불평등이 확대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한쪽에서는 빠른 회복세를 보이며 정상화의 길을 걷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상황이 계속 악화한다. 침체 이후 부문 간 회복의 모습이 달라 마치 K자와 흡사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런 양극화 현상이 코로나 팬데믹 이후 한국경제에서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충격에서 빠르게 회복되고 있는 부문은 수출·대기업·온라인경제 부문 등이다. 이들 부문은 이미 지난해 4분기부터 코로나 팬데믹 이전 수준을 회복했고 올해 들어서는 더욱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에 중소기업 부문, 오프라인 생활서비스 부문 등은 침체의 늪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K-불평등이 심각한 양상을 띠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K-방역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코로나 팬데믹에 대응하는 방식 면에서 한국은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체계를 엄격히 시행하는 대표적인 나라다. 그 덕분에 코로나 확진자 수가 적게 발생하기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나라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다른 나라들에서 시행된 전면 경제봉쇄 등과 같은 극단적 통제를 피할 수 있었고 그만큼 경제 전체의 충격도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K-방역 성과는 대면서비스가 필수적인 생활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자영업자들의 희생을 대가로 한 것이다. 그 결과 자영업 사업소득은 크게 줄어든 데 비해 기업활동 회복으로 임금근로자의 임금 소득은 오히려 증가하는 K-불평등이 나타난 것이다.

K-방역이 불러온 K-불평등이 이렇게 심각한데도 정부나 정치권은 오히려 불평등을 더욱 부추기는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K-방역에 집착한 나머지 백신 방역이 지체돼 자영업 고통은 더 길어졌으며 피해 부문에 집중지원돼야 할 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선심성으로 나눠 주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책 변화가 시급하다. 우선 코로나 팬데믹 대응을 K-방역 체제에서 ‘위드 코로나’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K-불평등의 심각성과 백신접종 추이를 감안할 때 자영업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K-방역은 더이상 올바른 해법이 아니다. 코로나 재난지원금도 철저하게 K-방역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를 보상하는데 사용되도록 해야 한다. K-방역을 통해 한국경제가 얻은 이득은 K-방역이 낳은 K-불평등을 치유하는데 사용되는 것이 마땅하다.

여기에 더해 자영업과 비자영업 간 구조적 불평등을 낳는 근본 원인인 ‘경직된 노동시장’을 개혁하는 일 또한 더이상 미룰 수 없다. 자영업과 비자영업 부문 간 소득 불균형은 코로나 팬데믹 이전부터 있어왔던 한국경제의 고질적인 문제다. 임금근로자 가구의 임금 소득 대비 비임금근로자 가구의 사업소득 비율은 지난 20여 년 동안 장기간에 걸쳐 하락해 지금은 절반도 채 되지 않는 40% 수준까지 떨어졌다. 노동시장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면 소득격차가 이렇게 장기간 확대될 수 없다. 자영업과 비자영업 부문이 이질적인 노동시장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소득 격차가 크게 벌어지게 되면 높은 소득을 제공하는 임금노동 시장으로 노동 이동이 활발히 일어나고 그 과정에서 부문 간 소득 불균형이 줄어드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노동시장은 이런 시장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 이유는 정규직 임금노동 시장에 둘러쳐진 높은 진입·퇴출장벽 때문이다. 장벽 안에는 높은 임금을 받는 정규직 임금근로자가 있고 장벽 밖에는 낮은 소득에 허덕이는 자영업자와 비정규직 임금근로자가 분리돼 존재한다. 정규직 임금노동 시장의 높은 장벽을 낮춰 노동시장 간 이동이 활발해지도록 하지 않고서는 소득불균형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노동시장 장벽을 낮추는 개혁 과제는 정치적 부담 때문에 지금까지 누구도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해왔다. 하지만 임계점을 넘어선 불평등 앞에서 이제 노동시장 개혁이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K-방역이 낳은 K-불평등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노동시장 개혁에 나서야 한다. 그래야 K-방역 피해의 억울함도 조금이나마 덜어질 수 있을 것이다.

최훈길 (choigiga@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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