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129] 모비 딕을 쫓는 이유
모든 것을 파괴할 뿐, 정복하지 않는 고래여, 나는 너를 향해 돌진하고 네놈과 끝까지 맞붙어 싸우리라. 지옥의 한복판에서라도 나는 너에게 작살을 던지고, 오직 증오를 담아 내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너를 쫓으리라. 저주받을 고래여, 갈가리 찢길지언정 네 몸에 묶여서라도 너를 추격하리라! 자, 이 창을 받아라! - 허먼 멜빌 ‘모비 딕’ 중에서
세상은 늘 편을 갈라 싸운다. 가진 것을 지켜야 하는 쪽과 갖고 싶은 것을 빼앗아야 하는 쪽이 서로 모략하고 창을 던지고 칼을 찌른다. 정치권은 말할 것도 없다. 이쪽은 했다, 저쪽은 안 했다, 이 사람은 진짜다, 저 사람은 가짜다, 공격하고 방어한다. 손에 쥔 권력을 놓고 싶지 않아서, 새로운 권력자가 되고 싶어서, 또는 권력 주변에서 살아가기 위해.
주머니에 돈 한 푼 없던 청년 이스마엘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을 품고 포경선 피쿼드호에 오른다. 그러나 외다리 선장 에이허브는 이스마엘처럼 저마다 꿈을 안고 승선한 선원들의 바람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는 오직 자신의 한쪽 다리를 앗아간 흰고래 모비 딕을 찾아 복수할 날만을 고대한다. 마침내 모비 딕과 마주한 선장은 모두의 목숨을 걸고 결전을 펼친다.
“모비 딕이 당신을 찾는 게 아닙니다. 미친 사람처럼 쫓아가는 것은 당신이오.” 이제라도 그만두라고 1등 항해사 스타벅이 지혜로운 충언을 하지만 선장은 파국을 향해 돌진한다. 그는 모비 딕을 끝장낼 작살을 명중시키지만 선원들과 피쿼드호는 침몰한다. 그 자신도 인생을 건 복수심과 함께 바다 깊이 수장되고 만다.
1851년에 출간된 허먼 멜빌의 소설 속 바다와 흰고래는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그래서 에이허브의 복수심을 광기라 읽는 사람도 있고 불굴의 의지라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권력도 마찬가지다. 국민은 이스마엘처럼 더 나은 내일을 위해 포경선에 오른 선원들이다. 그런데 우리가 탄 배의 선장은 무엇을 위해 누구와 싸우고 있는가? 싸움의 대상과 싸움의 목표가 그 사람이 누구인가를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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