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中 미워도 중국어 배워야

이벌찬 기자 2021. 9. 15.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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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2일 한산한 서울 명동 거리에 중국어 관광 안내원이 서 있다. /장련성 기자

0명. 2022학년도 공립 중등교원(중·고교 교사) 선발 예정 공고에 명시된 중국어 임용 선발 인원이다. 1997년 중국어 교과 교사 선발을 시작한 이후 한 명도 뽑지 않는 건 처음이다. 2020년도엔 43명, 2021년도에는 33명을 뽑았다. 중국어 교사를 새로 뽑지 않는 이유는 학교에서 중국어 인기가 식었기 때문이다. 선택 과목인 데다 난도 높은 중국어를 학생들이 부담스러워하던 와중에 반중(反中) 정서가 겹친 탓이다.

지난 몇 년간 중국어 인기는 급격히 사그라들었다. 2016년 사드 사태 이후 중국인 유커(遊客·관광객) 발길이 끊기면서 관광 가이드 준비생이나 서비스 업계 종사자들이 가장 먼저 중국어 공부 행렬에서 이탈했다. 이후 중국발 미세 먼지·김치 종주국 논란 등으로 반중 정서가 퍼지면서 중국어 학습 수요가 크게 줄었다. 서울의 대형 학원에서 초급 중국어 강사로 활동했던 지인은 “매년 학생 수가 크게 줄어 코로나 확산 전에도 월급이 80만원에 불과했다”고 했다. 중국어 통·번역사도 비인기 직종이 되어간다. 서울 명문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한 한 중국어 통역사는 “염가로 통·번역 아르바이트를 뛰는 조선족과 유학생들, 장기화된 코로나 사태로 일감 잡기 힘들다”며 “중국어 실력을 갈고 닦는 데 10년 걸렸는데 기업 계약직 채용에 목매는 처지가 됐다”고 했다.

이러한 현상은 우려스럽다. 중국은 좋든 싫든 우리의 중요한 정치·경제 파트너다. 2013년 이후 중국은 줄곧 우리의 최대 교역국이었다. 우리 전체 수출액에서 대중(對中)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5.8%로 미국(14.5%)과 일본(4.9%)을 합친 것보다 많다. 중국 입장에서도 한국은 1999년 이후 계속 ‘수출 4위국’의 위상을 차지한다. 중국인들은 유독 ‘언어 유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비즈니스 미팅은 물론이고 정상 간 만남에서도 툭하면 고사성어나 한시를 인용하며 속뜻을 내비친다. 필자는 2017년 중국에서 한 사업가를 조선일보 주최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 연사로 섭외하기 위해 만났다가 ‘자치통감(資治通鑑)’을 읽고 해석해 보라는 테스트를 받기도 했다.

중국어 인재 양성은 우리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더 장려돼야 한다. 고려 때 통문관, 조선 건국 후 사역원을 설치하고 중국어를 교육했던 까닭은 국가 생존에 필수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7세기 명나라를 멸망시킨 청나라를 오랑캐라고 멸시하는 풍조 속에서 ‘새로운 중국어’인 만주어 인재를 찾기 어려워졌다. 중국어도 만주어도 모르는 조선 사신이 청 황제를 만나는 상황이 오래 이어졌다. 그러니 우리 국익을 관철하는 일이 제대로 이뤄졌을 리 없다. 중국이 밉다고 중국어를 배우지 않으면 우리의 경쟁력만 약화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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