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웃음의 테두리 안으로
[경향신문]
학생 시절 우리 동네 성당에는 성악가처럼 노래하는 분이 계셨다. 문제는 발성법이 성악가였으나 음성은 그릇 깨지는 소리였다는 사실이다. 하루는 그분이 예술혼을 평소보다 더 발휘하셔서 미사 시간 내내 오르간 반주를 우렁차게 목소리로 제압했다. 뒷줄에 앉아 계시던 아저씨가 “우리도 노래 좀 부르자고!” 분통을 터뜨리자 다른 아저씨들이 옆구리를 찌르며 “야, 바오로, 알고 보면 네 목소리가 더 돼지 멱따는 소리야” “너나 잘 불러” 핀잔을 주셨다. 한편 그 성악가와 쌍벽을 이루던 분도 계셨으니 성우 발성의 양복 신사셨다. “생각과 말과 행위로 많은 죄를 지었으며”라는 기도 문구를 그분은 마치 사극 대사처럼 외곤 했다. 특히 시편을 낭송할 때의 비장미는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에 비견할 만했다. 항상 중학생 또래의 아들과 함께 오셨는데 아들 얼굴엔 ‘제일 싫은 게 아빠랑 성당 가는 거’라 쓰여 있었다. 나는 자꾸 웃음이 났다. 그 우스운 순간들이 따스웠다.
성당 앞줄엔 하얀 옷을 입은 복사단 꼬마들이 나란히 앉아 졸지도 않고 까불거렸다. 수녀님이 주의를 주셔도 어느새 자그만 머리들이 퉁탕거렸다. 사각사각 장난치는 꼬마들의 뒤통수가 평소보다 자주 눈에 띄던 그날, 신부님은 미사를 마치고서 파랗게 날 선 얼굴로 아이들에게 앞뜰로 좀 모이라고 하셨다. 마침 신부님께 상의드릴 일이 있어 거기 서서 기다리는데, 한참 지나 아이들이 ‘꾸지람 들었어요’라고 적힌 표정으로 어깨를 축 내려뜨리고 들어왔다. 반장처럼 보이는 소년이 출석을 부르자 풀 죽은 목소리들이 “네…”하고 답했다. 지켜보던 신부님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애써 참으며 됐다고, 그만 집에 가라 하셨다. 정겨운 기억들만 모아둔 마음의 곳간을 열면 먼저 눈에 들어올 장면 중 하나다.
서울 출장 가서 이따금 시간이 빌 때 시내의 큰 성당에 들르곤 한다. 코로나19 직전 마지막으로 다녀왔으니 작년 초였지 싶다. 미사 도중 뒷좌석에서 소프라노 발성이 들려왔다. 스스로 화음을 넣은, 비음 섞인 독특한 목소리. 오래전 동네 성당의 기억이 떠올라 쿡쿡 웃던 중 등 뒤에서 아주머니들의 수군거림이 들렸다. 왜 내버려 두니, 누가 아니래, 오래전부터 저랬어, 그럼 우린 계속 시달려야 하는 거니, 이런 불만들. 헌금 내러 나올 때 돌격대처럼 돌진하던 어떤 분을 가리키며 “저렇게 둘이 붙여놓으면 콤비겠네, 세트겠어” 하셨다. 미사 끝나자마자 아주머니 한 분이 다가가 다른 신자에게 방해가 되니 노랫소리를 줄여 달라 청했고 둘 사이에 예의 바른, 그러나 한마디도 양보하지 않는 설전이 오갔다. 지켜보며 슬픈 마음이 들었다. 비슷한 장면인데 왜 이토록 공기가 다를까. 어째서 이번엔 정겹지 못할까.
맥락이 달라서라고 처음엔 생각했다. 빈틈이 허용되는 맥락과 그러하기 어려운 맥락, 혹은 소규모 공동체와 더 큰 공동체의 차이일 거라고. 한데 돌이켜보면 꼭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이는 받아들이는 마음의 차이기도 했다. 내가 어떤 장면은 웃음의 경계선 내부로 들였던 반면 다른 장면은 그러지 못했으니까. 짐작건대 신의 눈엔 그릇 깨지는 음성으로 노래하는 자나 이를 두고 투덜거리는 자나 여일하게 어여쁠 테다. 오래전 그 신부님의 시선에 담긴 장난꾸러기들의 조그만 뒤통수처럼 말이다. 돌진하는 사내의 머리 위로도 “콤비겠네, 세트겠어” 뒷담화하는 아주머니의 머리 위로도,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애써 참으며 똑같은 햇볕과 똑같은 단비를 내려주지 않을까?
그렇다면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의 명제가 항상 진리는 아닐 수 있다. 멀찍이 거리 두는 대신 웃음의 경계선을 넓힐 때 그간 이해할 수 없던 많은 것들이 조금은 이해될지 모른다. 살면서 마주하는 갖가지 장면들을 웃음의 울타리 안으로 들여올 수 있었으면 한다. 아울러 나도 더 웃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소영 제주대 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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