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에너지 전환과 자연과의 교감

김연민 | 울산경제진흥원 원장 2021. 9. 15.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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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코끼리를 만지는데 손이 콧구멍으로 쑥 들어가 버렸어요. 끈적거리고 무진장 컸고 그 속에서 바람이 불었어요.” 코끼리를 직접 만져 본 시각장애인 아동의 소감이다. ‘시각장애인 코끼리 만지기’ 속담은 사람들이 현상을 제각각 부분적으로 파악한다는 것이다. 다르게 보는 것이 때로는 필요하지만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전체를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터널 속에서 외부의 전체 경관을 볼 수는 없다. 혁신을 위해서는 한 분야에만 전문적이지 않고, 해법보다는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글로벌한 시야와 가치관으로 무장해야 한다.

김연민 | 울산경제진흥원 원장

기후위기라는 지구적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전 세계적으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에 공들이고 있다. 이를 부정하고 싶은 전문가도 있을 것이다. 원전 경쟁력을 활용하자는 해법을 가진 분들은 에너지 전환을 꺼린다. 우리나라 원전기술이 세계 최고라고 일부 언론은 주장하지만, 월성원전에서 이용되는 중수로는 원천기술조차 없고, 10만년 이상을 관리해야 하는 사용후핵연료 문제는 해결할 일이 산적해 있다.

2020년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원전 비중이 줄고 재생에너지가 확산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고 한다. 석탄(38.1%)·원자력(10.1%) 발전 비중은 계속 감소했지만 재생에너지 발전(25.2%) 비중은 증가하고 있다. 2020년 발전 부문 신규투자액 중 재생에너지 비중이 60% 이상으로, 향후 에너지원 전환 추세는 재생에너지로 가속화될 것이다. 이는 석탄이나 원자력 등의 화석연료에너지로는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다.

풍력, 태양광 등의 에너지를 재생에너지라고 한다. 많은 이들이 ‘낡거나 못 쓰게 된 물건을 가공하여 다시 쓰게 하는 것’을 재생이라고 생각한다. 재생과 부활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남’을 뜻하지만 재생에너지라고 할 때 재생은 ‘무한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바람과 태양은 우주에 지구가 존재하는 한 무한하다. 시원한 바람과 따뜻한 햇볕은 늘 충만하다. 어느 곳에서도 손사래를 치는 원전의 골칫덩어리인 사용후핵연료와 같은 치명적으로 심각한 폐기물을 만들지 않고,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도, 비싼 수입 연료가 필요하지도 않다.

에콰도르는 2008년 ‘자연의 생물이 영구적으로 생존하고 번식하고 진화할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개정안을 국민투표로 통과시켰다. 이 새 헌법 조항은 국가에 생태계 파괴나 생물 멸종을 일으킬 수 있는 행위들을 예방, 제한해야 한다는 의무를 부여했을 뿐 아니라, 국가가 이런 일을 하지 않으면 시민이 자연을 대신해 법적인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했다. 볼리비아는 2011년 자연을 법적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는 ‘어머니 지구법’을 새롭게 제정했다. 이 법은 자연의 권리를 규정한다. 존재하고 생존할 권리, 인간의 변형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진화하고 생명 순환을 지속할 권리, 평형을 유지할 권리, 오염되지 않을 권리, 유전자나 세포가 조작되지 않을 권리, 지역 공동체와 생태계 균형을 해치는 개발 계획이나 거대 사회기반시설 건설에 영향받지 않을 권리 등이다.

인간 세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과거의 화석연료, 즉 석탄, 원전과 같은 화석 에너지원은 ‘어머니 지구’를 병들게 한다. 우크라이나 체르노빌과 일본 후쿠시마의 핵발전소 폭발은 인간과 땅과 바다를 불행하게 했다. 후쿠시마에서 원전 방사선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게 하는 최악의 결정을 하게 하기도 한다. 경제성, 안전성, 지속성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화석연료에 의존한 에너지원은 이제 무한하고 청정한 재생에너지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를 가로막는 것은 기후위기라는 자연의 절규에 귀를 막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행동과 다를 바 없다.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위해 우리나라는 원전의 단계적 감축을 통해 재생에너지 확대 여건을 조성하고 있다.

인간의 지혜는 마침내 ‘어머니 자연’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바로 저탄소 친환경 너머의 세계사적 관점의 전환이다. 인간은 이제 자연을 관통하는 무한하고 강력한 기후위기라는 비명에 귀 기울여야 한다.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바람이 춤추고 햇살이 노래하는 고향 마을 같은 푸근한 지구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도리로 보인다.

김연민 | 울산경제진흥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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