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다이어리]유럽의 국경을 넘으며
[경향신문]
폴란드에 다녀왔다. 폴란드 남자 ‘킬루’와 독일 여자 ‘칼라’의 결혼식이 신랑의 고향인 라돔에서 있었다. 바르샤바에서 남쪽으로 100㎞ 정도 떨어진 라돔은 들어본 사람이 거의 없는, 작고 이름 없는 도시였다. 9인승 밴을 타고 친구들이 함께 베를린에서 폴란드로 국경을 넘었다. 외국인인 나는 여권을 챙겨갔고, 독일 친구들은 신분증 하나만 들고 가면 되었다. 국경을 넘을 때 검문소가 있겠지 했는데, 오데르강이 흐르는 작은 다리 하나를 건너니 바로 폴란드였다. 검문소도, 신분증 검사도 없었다. 폴란드어를 모르니 “여기서부터 강원도입니다”라고 쓰인 국내 표지판을 볼 때보다도 감흥이 덜했다.
오래전 바르셀로나에서 프랑스 남부로 자동차 여행을 가면서 국경을 넘었던 때도 어렴풋이 기억났다. 당시 친구 셋과 시트로앵을 타고 바르셀로나 북쪽의 작은 도시에서 국경을 넘었다. 여권 검사를 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많은 차들이 한참 동안 차례를 기다렸던 것만큼은 기억이 났다. 이번에도 국경을 통과하려면 시간이 걸릴 줄 알았으나 도로에는 차도 거의 없었다.
“우리 지금 막 폴란드로 들어왔어.”
친구 말에 나는 어리둥절한 채 물었다.
“검문소가 아예 없네?!”
“EU 나라끼리는 더 이상 검문을 하지 않아. 검문소가 없어진 지도 오래됐어.”
말로만 듣던 솅겐 협정(국경 시스템을 최소화해 조약 가입국 간 인적·물적 이동을 자유롭게 하는 것)을 몸소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폴란드 국경을 넘었다.
삼면이 바다이고 북으로는 갈 수가 없는 한국에서 평생을 살아온 우리에게 국경은 늘 낯선 존재다. 기차로 유럽 나라들의 국경을 넘는 것도 신기한데, 차는 더 비밀스럽고 묘한 긴장감을 준다. 그런데 동네의 강 다리를 건너듯 유럽의 국경을 넘고 보니 더 놀랍고 더 싱거운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이 이렇게 쉽게 나라를 이동할 수 있다니. 다른 나라에 대한 구분이, 경계가 새삼 별것 아니게 다가왔다. 이런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할수록 사람들은 남의 나라를 이웃 나라로 느끼고, 사회적·문화적 장벽들도 쉽게 넘을 것임은 분명해 보였다. 물론 코로나19가 창궐했을 땐 유럽도 나라마다 국경을 폐쇄하기 바빴다. 1년 반이 지난 지금 유럽의 국경은 다시 열렸고, 난민과 이주민 등의 문제가 있지만 하나의 유럽을 위한 전진은 계속되고 있다.
우리에게는 아직 넘을 수 없는 국경이 있다. 75년이나 지났는데도 언제 열릴지 알 수 없으며, 긴장과 불안이 여전한 국경이다. 이런 특수한 상황 때문에 우리는 어쩌면 삶에도 더 많은 선들을 그으며 살아왔는지 모른다. 그런 우리가 오랫동안 한국을 도운 아프가니스탄 난민 390명을 따뜻하게 받아들였다. 그들은 모두 생사의 국경을 넘어 새로운 나라, 한국에 도착했다. 난민 수용에 반대의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이 인도적 결정이 훗날 굳게 닫힌 우리의 국경도 열 수 있는 소중한 한 걸음이 되리라 생각한다. 마음의 경계를 허물고, 우리와 다른 인종, 종교, 이념, 선을 넘어 기꺼이 소통할 수 있을 때 세상의 모든 국경은 문을 열 것이다.
이동미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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