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 파편, 비누, 머리카락..탈인습 '문화적 번역'의 매체가 된다 [김홍희의 페미니즘 미술 읽기 (10)]

김홍희 2021. 9. 14.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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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복식조' - 이수경 vs 신미경 vs 이세경

[경향신문]

1. 재료 발굴과 조형 실험

환상의 복식조 9라운드의 초대작가는 이수경(1963), 신미경(1967), 이세경(1973)이다. 이들은 3인 3색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재료 발굴, 매체 확장, 방식적 실험을 통해 시각 언어와 조형 코드의 진폭을 넓히고 있는 점에서 한데 만난다. 매체적, 조형적 실험으로 기존의 재현 체계를 변화시키고 주류 미술 경향과 차별화되는 여성적이며 여성주의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이들에 의해 여성미술의 다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깨진 도자기 조각, 비누라는 뜻밖의 재료를 사용함으로써 미술사 전통과 재현적 관례에 도전하는 이수경과 신미경, 이들에 이어 이세경은 머리카락으로 두 선배의 탈인습 이데올로기에 합류한다. 이들은 버려진 것, 비예술적이고 일상적인 것을 재료로 새로운 예술품을 탄생시킨다. 우리가 이들의 작업을 혁신적이라고 평가한다면, 그것은 이들의 조형 실험이 낯설고 새로운 미학적 경험을 안겨줄 뿐 아니라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비정통적이고 비관례적 발상으로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기 때문이다.

이수경, 번역된 도자기, 2018, 도자 파편, 에폭시, 24K 금박, 137x91x96㎝ 사진 양이언 ⓒ이수경

2. 이수경의 ‘번역된 도자기’ ‘달빛 왕관’

사회를 향한 저항과 분노를
자기성찰로 내면화하며 성숙

이수경은 199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끊임없는 매체 실험과 수법의 개발로 조형적 스펙트럼을 무한대로 확장하며 독창적 작품세계를 일구고 있다. 그는 이미 경력 초기부터 갖가지 재료들을 그러모은 아상블라주(assemblage) 조립 기법으로 기이한 주물적 오브제들을 제작했다. 1997년 개인전 출품작, 오줌을 채운 와인잔 위에 인조 손톱으로 만든 연꽃 한 송이를 올려놓은 ‘손톱 꽃’, 보석으로 장식한 공주 왕관 안쪽을 질 같은 분홍색 풍선껌으로 펴바른 ‘백설공주 뒤집기’가 대표적 사례들이다.

이 당시 이수경은 사회를 향한 저항과 분노를 저돌적이고 유희적인 방식으로 드러내는 청년 페미니스트였다. 2000년대 이후 그는 분노를 자기성찰로 내면화시키며 작품세계의 변화를 끌어냈다. 자기수련적인 태도로 여아, 소녀, 노파 등 눈물과 상처로 얼룩진 다양한 여성 형상들을 재현한 ‘매일 드로잉’(2004~)이 그 시발점이 되었다. 그것을 집대성한 ‘불꽃’ 연작(2006~2011)에서는 치유적, 주술적 암시를 강조하듯 부적 재료인 붉은 경면주사로 성모, 마녀, 광대, 해골 같은 여성 타자들을 그렸다. 그들의 피눈물이 화염이 되어 자기번식적 울림으로 퍼져나가며 회화적 카오스를 창출한다. 이후 ‘불꽃변주’ ‘전생역행그림’으로 이어지는 불꽃 계열의 평면화들은 화면에 자신을 함몰시키며 분열적이고 편집증적 태도로 여성적 글쓰기를 수행하는 자기치유적인 해방의 출구가 되었다.

그의 작품세계의 다른 한 축을 이루는 ‘번역된 도자기’(2002~)에서는 분열적이고 편집증적인 태도가 제작 방법론으로 양식화된다. 도공들이 실패작이라고 깨버린 도자기 파편들 하나하나를 접착제로 이어 붙이고 “금”간 곳을 “금”으로 도금하는 수공집약적 방식으로 온전한 조형물을 탄생시키는 것이다. 작가는 이 탄생의 과정을 번역으로 개념화했다. 도자기 전통을 현대화, 현재화시키는 과정 자체가 번역일 뿐 아니라, 이론적 차원에서 보더라도 해체된 도자 파편들이 아상블라주로 총체화되면서 부분의 범례가 전체를 해독시키는 환유적 맥락이 번역 개념을 뒷받침한다.

작가의 번역이라는 아이디어는 2001년 이탈리아 알비솔라에서 현지 도공에게 한국 백자를 제작하게 하고 그 결과물을 발표한 ‘번역된 도자기 - 알비솔라’에서 비롯되었다. 한국 도자기에 문외한인 그 도공이 만든 변형된 백자에서 문화적 번역의 의미를 포착한 것이다. 본인이 의도했든 아니든 작가는 이 커미션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 문화를 예술적 방식으로 수출하게 된 것인데, 외래 문화를 수입하며 번역의 과정을 거치는 대상이 우리가 아니라 서구 유럽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역전의 사건이었다.

어쨌건, 작가는 파편들로 재창조한 도자기 작품 역시 번역이라고 생각하고 현재까지 다채로운 ‘번역된 도자기’ 연작을 발표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을 개념적 기조로 삼아 번역된 도자기의 번역적 버전이랄 수 있는 진화된 조각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멋진 조각상’(2006~2012)은 작가가 종교적 소재로 시선을 돌려 번역의 환유적 의미를 강조한 조각품이다. 이질적, 혼성적 감성으로 부처, 예수 등 각종 종교의 성상들을 부위별로 나눈 후 설문조사를 기초로 가장 멋진 부분들을 채택하여 재조합한 잡종적 성상을 가장 멋진 조각상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최근작 ‘달빛 왕관’(2018~)은 매체, 소재, 기법, 양식, 주제 면에서 이수경의 모든 것이 용해되고 응축된 역작이다. 온갖 보석과 금속 장식물들이 후광처럼 왕관을 치장하고 있지만, 이 화려한 왕관은 너무 거대하여 머리에 쓸 수 없다. 왕관의 권력과 권위의 무게에 짓눌린, 달빛 그림자로 얼룩진 비운의 왕관인 것이다. 도자기 쪼가리들을 이어 붙이듯 다채로운 장식용 소품들을 한데 엉겨 붙인, 과대하고 과장된 왕관의 몸체는 아름다우면서도 그로테스크하다. 너무 화려하여 처량하고 너무 공들여 허망하다. 억압된 여성 리비도를 반영하듯, 욕망과 절망, 매혹과 공포의 경계에서 이중 감흥을 표출하는 이 ‘달빛 왕관’에서 그의 초기 작업에 깃든 저돌적인 페미니즘이 다시 살아나는 듯하다.

신미경, 번역- 아프로디테, 2002·2013, 비누, 스테인리스 스틸, 바니쉬. 165x 76x 82㎝ 작가 제공

3. 신미경의 ‘번역 시리즈’

영국서 캐스팅 가능한 비누 발견
작업 대전환의 변곡점 맞아

비누로 제작되는 신미경의 ‘번역 시리즈’는 비누라는 재료적 발견의 측면에서 특기할 만하다. 그뿐 아니라 자신 고유의 창작 대신 서양의 고전 조각이나 동양의 전통 도자기와 같은 원본을 복제함으로써 번역의 화두를 등장시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예술적 “미메시스”를 번역으로 풀이한 신미경, 그의 의도된 번역 행위는 수립된 문화 전통과 권위에 도전하는 단호한 예술적 결단이다. 그것은 과거와 현재, 서구와 비서구, 역사적 남성 대가와 현역 여성작가의 차이를 충돌시키며 뿌리 깊은 이항적 위계를 허무는 저항의 제스처이기도 하다.

‘번역 시리즈’의 물꼬를 튼 첫 작업은 영국 유학 당시 교내 건물에 비치된 신고전주의 양식의 대리석 비너스상을 비누로 모각한 ‘번역’(1996~1997)이었다. 6개월에 걸쳐 비누를 갈고 반죽하여 손으로 모델링하는 소조 방식으로 원본을 완벽하게 복제했으나 그것은, 제목이 말하듯, 원본으로부터 탈맥락화한 번역일 뿐이었다. 이후 작가는 그리스 여신상을 본뜬 자소상 연작을 통해 원작과 복제의 차이를 의도적으로 가시화했다. 비너스상의 몸체에 자신의 얼굴을 붙인 ‘번역-아프로디테’, 책의 참고 도판을 보고 똑같은 포즈를 취한 자신의 몸을 석고 캐스팅한 후 그것을 모델로 모사한 ‘번역-웅크린 비너스’(2002) 등, 다중번역적 복제 행위로 누적된 오역의 역사를 패러디하는 것이다.

작가는 2003년 영국에서 캐스팅이 가능한 엠피(MP·melt and pour) 비누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를 계기로 그의 작업은 방법론적으로, 개념적으로 대전환의 변곡점을 맞게 된다. 그간의 소조 기법과 달리 동일 조상을 복수로 주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캐스팅 비누로 다수 제작된 불상이나 고전 조상을 미술관, 박물관 화장실에 비치하여 방문객이 비누로 쓰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전시장에 들여놓아 예술 작품이 되게 한 ‘번역-화장실 프로젝트’는 성상이 세제로 사용되다가 소중한 유물처럼 전시되는, 그야말로 이동과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번역 과정의 징표이자 관객 참여의 현장이었다.

2006년 이후 작가는 도자기를 복제하는 본격 ‘번역 시리즈’에 돌입한다. 조선 백자나 중국 도자를 원형 그대로 실리콘 캐스팅하여 몰드에 비누를 끓여 붓고 굳고 나면 내부를 파내는 몇 단계의 공정을 거친 후, 비누 도자의 표면을 상감 처리하거나 동양화 안료로 도기 문양을 시문한다. 수공예를 환기시키는 섬세한 붓질로 원본과 똑같은 복제물을 만들어내지만, 그 역시 맥락이 전도되고 의미가 변화된 번역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원본으로 사용한 중국 도자기는 이미 유럽으로 수입되는 과정에서 서구식으로 번안된, 중국에는 없는 “중국풍” 도자기들인바, 결국 작가는 번역된 원본을 재번역하는 메타번역의 수행자가 되는 것이다.

2009년에 시작된 ‘풍화 프로젝트’는 비누로 제작된 옥외 조형물이다. 그리스 고풍 시대의 쿠로스와 비너스 조상을 석고 캐스팅하여 비누로 제작한 복제조상을 국내외 미술관 야외에 설치하여 비누의 풍화작용에 따라 마모되는 유물화의 과정을 단축적으로 보여준 작업이다. 자소상, 화장실 프로젝트에 이어 도자기, 공공 조형물에 이르기까지 그의 번역 프로젝트는 비누라는 일상적 재료의 미학적 차용, 모사적 복제술에 대한 집요한 탐구, 막대한 수공적 노고의 결실이다.

신미경의 비누 작업 가운데 특히 도자기 시리즈는 수공예적 측면에서 젠더적 해석과 페미니즘 독해를 가능케 한다. 현대미술이 방기한 공예 요소와 정밀묘사 기법을 등용함으로써 남성미학과 차별화되는 여성적 영역을 확보한다. 재료적으로도 비누는 몸뿐 아니라 환경오염을 정화시킨다는 생태학적 상징성과 함께, 향내를 풍기며 살갗에 직접 감촉되는 내밀한 속성으로 젠더특정적 함의를 내포한다. 이것이 그의 비누조각이 여성조각가이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질문의 배경이기도 하다.

이세경, 도자세트 위의 머리카락, 2005, 작가 머리카락을 흰색 도자세트 위에 접착, 코팅. 작가 제공

4. 이세경의 머리카락 도자와 카펫

자전적 동기로 머리카락에 천착
그것의 문화적, 인종적 함의 성찰

이세경은 접시, 도기, 타일, 카펫 위에 머리카락으로 특정 문양이나 이미지를 그린다. 일상용품의 표면이 캔버스이고 인모가 펜이자 안료인 셈이다. 도예를 전공한 그가 도기를 만드는 대신에 왜 기성품 식기 위에 인모로 그림을 그리게 되었을까? 레디메이드, 차용과 같은 현대미술의 키워드에 경도된 것일까? 그보다는 자전적 동기가 더 직접적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그는 소녀 시절부터 긴 머리가 떨어져 바닥을 어지럽히는 것이 싫었고 특히 요리 연구가인 어머니의 꾸지람을 듣게 되는 것도 성가신 일이었다고 한다. 주워 모은 머리카락으로 작품도 하고 골칫거리를 해소한다는 동종요법적 발상이 그를 머리카락 작가로 키운 셈이다. 아마도 접시와 머리카락의 불결하고 불쾌한 조합도 어머니의 우려에 대한 예술적 반응이 아니었을까.

작가는 인조머리가 아닌 인모로 작업하면서 머리카락의 문화적, 인종적 함의를 성찰하게 되었다. 머리카락 색상이나 굵기, 머리 스타일, 직모냐 곱슬머리냐에 따라 인종, 종교, 계급, 지위, 연령, 젠더를 분간하게 된다. 작가는 무엇보다 동일한 머리카락이 몸에 살아 있을 때는 육감적 매력과 건강미의 표상이 되지만 몸에서 탈각되어 죽은 물질이 되었을 때 섬뜩한 기피의 대상이 된다는 이율배반적 속성이 흥미로웠다. 생과 사, 자연과 문명, 미와 추, 청결과 불결, 매혹과 혐오의 양극을 왕래하는 인모의 양면성이 그에게 매체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이세경, Transfer-Portraits, 2012, C-Print, 각 75x60㎝ 작가 제공

1998년 독일 유학길에 오른 작가는 2001년 초반부터 종이 위에 머리카락 드로잉을 시작했고, 지도 교수의 격려로 흰 접시에 한땀 한땀 수놓듯 머리카락을 붙여가며 섬세한 문양을 만드는 ‘머리카락 접시’를 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초벌구이 접시에 자신의 디자인을 시문(施文)하는 것이 아니라 유명 식기 문양이나 친숙한 패턴을 복사하는 방식을 택했는데, 그것이 자신 작업에 번역미학적 층위를 부여하게 되었다. 다채롭게 염색한 머리카락으로 마이센 도자기의 양파문양, 동아시아 청화백자, 네덜란드 타일화, 러시아 구성주의 디자인 등, 기존 자료를 본떠 진짜 같은 ‘짝퉁’ 도자를 만든 것이다. ‘도자세트 위의 머리카락’(2005)을 보더라도 그의 머리카락 도기들은 보통 그릇과 똑같아 보인다. 그러나 부착된 머리카락 때문에 사용이 불가능하다. 단지 전시 작품으로만 쓸모 있는, 용도 없는 식기라는 아이러니를 부각시키기 위해 그는 벨벳을 덮은 좌대 위나 조명이 장착된 전시용 진열장에 넣어 역사적 유물처럼 전시한다.

작가는 독일 체류 당시 머리카락을 카펫 제작에 이용하기도 했다. 뮌스터 베베르카 파빌리옹 야외에 장기간 전시된 ‘머리카락 카펫’(2004) 제작을 위해 작가는 노란색 무지 카펫을 구입하여 그 위에 서구인의 금발머리를 검게 염색한 검은색 머리카락을 뿌려가며 전형적 카펫 문양을 재현했다.

이방인 유학생의 실존적 경험을 반추하듯, 그는 노랑과 검정 색상으로 금발과 흑발을 대비시켰다. 머리색으로 인종 차이, 이주, 환치를 소환함으로써 번역의 예술로서 정당성을 확보받게 되었다.

귀국 후 작가는 머리색으로 표상되는 인종의 문제를 다시 화두로 삼아 ‘트랜스퍼’(2012)라는 개인전을 열었다. ‘전환’이라는 뜻의 이 영어 제목은 ‘번역’으로도 의역될 수 있다. 작가는 인모를 인터넷으로 구입하는 과정에서 인도 여성들이 힌두교 사원에 봉헌한 머리카락을 유럽인들이 수입하여 뷰티산업에 활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제의적 용도의 인모가 상업적으로 ‘전환’된 번역의 오류를 풍자하듯이, 그는 서양 모델에게 금색의 가발을 씌우고 그 가발이 점점 검은색으로 변하는 과정을 기록한 연출사진 ‘트랜스퍼 포트레이트’를 제작, 출품했다. 이 사진 작품과 대구를 이루며 전시장 바닥에 설치된 ‘트랜스퍼 카펫’은 검은색 바탕에 금색 인모로 힌두교 여성들이 매일 아침 모래 바닥에 그린다는 주술적 문양을 패턴화한 작품이다. 작가는 금발과 흑발을 교차시키는 초상사진과 카펫을 통해 특정 지역의 고유문화가 지구를 횡단하며 변형되는 번역의 과정을 추적하고 있다.

5. “매체는 메시지”

이수경, 신미경, 이세경은 특정 매체나 예술품이 한 문화권에서 다른 문화권으로 이동할 때 발생하는 번역의 과정에 주목하고, 그에 수반되는 복제, 인용, 차용의 전략으로 역사 다시 쓰기를 시도한다. “매체가 메시지”라는 마셜 매클루언의 경구를 환기시키듯, 이들은 도자기 파편, 비누, 머리카락을 재료 이상의 매체, 매체 이상의 메시지로 전환시킨다. 다시 말해 자신들이 구사하는 재료를 문화적 번역의 기재로 매체화하며 새로운 개념의 “번역 예술”을 탄생시킨 것이다.

문화적 번역은 지역적 차이뿐 아니라 성별 정체성과도 관련되는 복합적인 개념이다. 이들은 번역 작업을 통해 절대적 가치, 전통의 의미와 권위를 의심할 뿐 아니라 남성중심적으로 획일화되고 정형화된 부계 미학의 기저를 흔든다. 그러나 이들은 저항적 대립보다는 조형적 대안으로, 직설보다는 번역의 기술로 기존 가치를 무효화시키며, 사적인 언어와 은밀한 태도로 페미니즘을 우회한다. 이것이 이들의 번역 작업에 깃든 의역된 젠더 정치학의 표명이 아닐까?

■김홍희



김홍희는 미술사학자이자 평론가·큐레이터다. 서울시립미술관과 경기도미술관, 대안공간 쌈지스페이스 관장 등을 거쳐 현재 백남준문화재단 이사장이다. 카셀도큐멘타14 감독선정위원·광주비엔날레 총감독·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 등을 지냈다. 다수의 페미니즘 미술전과 백남준·미디어아트 전시를 기획했다. 저서로 <여성과 미술> <굿모닝 미스터 백> <큐레이터는 작가를 먹고산다> 등이 있다. 김세중상(저작출판), 석주미술상(평론), 월간미술대상(큐레이터) 등을 수상했다.

김홍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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