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공동체 위한 '자원봉사의 씨앗' 거목으로 커갈 겁니다"

한겨레 2021. 9. 14. 21:3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가신 이의 발자취] 고 김옥라 각당복지재단 명예이사장 영전에
지난 4월 삶과죽음을생각하는회 창립 30돌 기념으로, 김옥라(오른쪽) 창립 회장에게 아들 라제건(왼쪽) 이사장이 감사패를 드리고 있다. 각당복지재단 제공

“사랑의 공동체 건설-자원봉사로 세상을 아름답게.” 지난 8월 30일 103살 생신을 바로 앞두고 홀연 소천한 어머니, 김옥라 각당복지재단 명예이사장께서 생전에 늘 강조하던 자원봉사의 비전이다. 고인께서는 우리 사회에 자원봉사의 씨앗을 뿌리고 키워온, 자원봉사의 대모이다.

자원봉사가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조차 뚜렷하지 않던 1986년, 자원봉사가 무엇이고 어느 부처에서 담당해야 하는지 정부에서도 난감해 하던 그 시절 ‘한국자원봉사능력개발연구회’라는 긴 이름으로 재단법인이 설립되었다. 아프리카 나이로비에서 감리교여선교회 셰계회장의 5년 임기를 마무리하는 이·취임식을 끝내고 귀국길에 오른 그는 비행기 속에서 자원봉사를 통한 사랑의 공동체 건설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의 얘기를 들은 남편 라익진 박사(전 한국산업은행 총재)는 “평생 힘들게 모금해가며 봉사 활동을 해왔는데 이제부터는 내가 후원할 터이니 원하는 일들을 맘껏 펼쳐보시오”라며 재단 설립에 필요한 자금을 선뜻 내주었다. 이렇게 하여 자원봉사에 관심이 있는 지원자들을 모집하여 교육하고 이들을 필요로 하는 곳에 배치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전문 자원봉사 양성기관이 출범하였다. 1991 남편의 1주기 때 아호를 따서 각당복지재단으로 명칭을 바꿨고 올해로 설립 35돌을 맞았다. 전문적이고 지속적인 자원봉사 활동이 사회운동으로 시민정신으로 확산되면 사랑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는 꿈을 품고 지금껏 달려왔다.

1987년 어느날 김 명예이사장은 서울가정법원 윤재윤 판사의 ‘가정법원 실태 보고서’를 보고 찾아갔다. 돌려보낼 가정이 없는 가벼운 범죄의 비행 청소년들을 소년원에 보내는 대신 자신의 가정에 받아들여 돌보게 하자는 제안이었다. 그는 이듬해 즉시 부모의 마음으로 그들을 이끌어줄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을 준비하여 자원봉사자들을 길러내었다. 세월이 흘러 보호관찰제도가 시행되면서 각 지역에 보호관찰소가 마련됐고, 그 뒤 준법지원센터로 자리를 잡았다. 지금도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이들 청소년들이 우리 사회의 귀한 구성원으로 성장해 갈 수 있도록 봉사를 계속하고 있다. 또한 그는 호스피스라는 단어도 생소하던 1987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의 마리온 킹슬리 교수와 함께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호스피스 교육을 시작하였고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전문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 중에는 수백명에 이르는 환자들의 임종을 지켰을 만큼 전문가가 되어 호스피스 강사로, 책의 저자로 활동하는 분도 있다. 그는 자원봉사자들의 감동적인 사연을 인터뷰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들> 제목으로 세차례 출간하기도 했다.

지난 2016년 12월 각당복지재단 창립 30돌 기념식에서 김옥라(왼쪽) 명예이사장에게 라제건(오른쪽) 이사장이 감사패를 증정하고 있다. 각당복지재단 제공

‘죽음을 탁상에 올려놓고 공론에 붙여라.’ 김 명예이사장은 1990년 8월 일본에서 남편의 돌연한 죽음과, 귀국길에 남편의 주검이 화물칸에 실려오는 충격을 겪었다. 죽음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인간에게 이리도 큰 고통을 주는가에 대해 계속 질문을 하던 그는 마음 속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곧바로 그해 7월 윤보선 전 대통령을 떠나보낸 공덕귀 여사에게 전화로 ‘죽음에 대해 말씀을 나눠보자’는 제안을 했다. 공 여사의 적극적인 공감에 힘을 얻은 그는 이태영 박사, 박대선 전 연세대 총장 등 사별한 지인들과 모임을 만들었다. 이렇게 ‘삶과죽음을생각하는회’가 시작되었다. 1991년 4월 연세대 김동길 교수, 서강대 김인자 교수를 연사로 모신 창립 강연회에 천여명의 인파가 모여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이후 10년간 죽음에 대한 공개강좌를 지속적으로 열었다. 서울대 종교학과 정진홍 교수 등 여러 석학들에게 강의를 부탁하였다. 일본에서 죽음준비교육을 전파하던 독일인 신부 알폰스 디킨 박사 등 외국 석학들을 모셔 특별 세미나를 열기도 하였다.

삶과죽음을생각하는회 10돌 기념식에서 강원용 목사는 “김옥라 회장이 남편을 잃은 슬픔을 달래려고 애쓰는데 2~3년 그러다 말겠지, 라고 생각했었는데 지난 십년 간에 걸쳐 죽음에 대한 주제를 사회적 담론으로 훌륭하게 키워내었다”라며 축사를 해주었다. 그뒤 죽음준비교육을 위한 강사를 길려내기 시작해 올해로 30돌이 되었다. 무의미한 생명 연장을 반대하며 연세대 손명세 교수, 골든에이지포럼과 함께 시작한 사전연명의향서 쓰기 운동은 2016년 1월 연명의료결정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이 범국민 운동으로 확대되는데 한 축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이제는 웰다잉으로 더 익숙해진 죽음준비교육은 한 세대를 거쳐 성숙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일제시대 강원도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세계적인 지도자로 성장해온 김 명예이사장은 한 세기를 넘기는 삶 속에서 우리에게 수많은 유산을 남겼다. 그는 만 68살 때 재단을 설립했다. 그는 왜 하필 자원봉사라는 주제를 붙들고 모든 정열을 쏟아붓게 되었을까. 아마도 그 출발은 1952년 부산 피난시절 걸스카우트 운동을 시작하면서부터 아닌가 싶다. 미래에 어머니가 될 소녀들을 잘 키워내는 것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 본인이 해야할 일이라고 믿었던 그는 온 힘을 쏟아 걸스카우트를 키워냈다. 1957년 미국, 유럽을 돌아보는 5개월간의 여행에서 그는 수많은 걸스카우트 회원들의 도움을 받으며 그들의 가정에서 묵을 수 있었다.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도 않은 나라에서 온 젊은 여인을 걸스카우트 회원들은 자원봉사 정신으로 보살펴 주었다. 1976년 아시아 지역 회장을 거쳐 1981년 세계회장으로 피선된 감리교여선교회 활동도 70여개 나라 600만명에 이르는 회원들의 자원봉사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온 몸으로 익혔다. 우리나라에서도 그 엄청난 자원봉사의 힘으로 사랑의 공동체 건설에 기여하는 것을 삶의 마지막 소명으로 여기게 된 것은 그로서는 자연스러운 결론이었을 게다.

김 명예이사장의 걸스카우트, 교회여성운동, 그리고 자원봉사와 죽음교육까지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항상 풀뿌리로부터의 출발이었다. 그리고 그는 세계를 품고 바라보았다. 젊은 시절부터 그의 책상에는 늘 지구본이 있었다. 6·25의 참화 속 부산 피난지에서 미국 걸스카우트 본부에 트레이너를 보내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감동을 받은 미국 본부는 그의 편지를 영국의 세계연맹에 알렸고 트레이너와 함께 모금한 돈을 보내주었다. 1957년 한국 걸스카우트는 미국 세계대회에서 세계연맹의 준회원 자격을 얻었다. 그때 전세계 대표들이 도열한 가운데 태극기가 게양되는 것을 보고 그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1981년 감리교 여선교회의 세계회장이 되었을 때는 5년간 50여 나라를 순방하며 이 단체의 오랜 숙원사업이던 유엔의 엔지오(NGO)로 가입을 성사시켰다. 아시아인이 세계회장이 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던 시절이었다. 각당복지재단 설립 훨씬 이전인 1972년 필리핀에서 열린 첫 자원봉사 국제컨퍼런스에 참석한 것을 시작으로 그는 세계자원봉사협의회의 임원이 되었고 2016년 멕시코 세계대회에서 평생회원으로 추대되었다.

김 명예이사장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현역이었다. 지난 6월에는 총장도 참석한 가운데 연세대 경영대학 내 ‘각당헌’의 재봉헌식에서 남편을 추모하는 연설을 하였고 4개월 전 출연했던 <기독교방송>(CBS) 프로그램 ‘새롭게 하소서’는 그가 세상을 떠나던 8월말 현재 조회수 160만을 넘기고 있다.

이웃사랑, 나라사랑, 하나님사랑을 위하여 하나님의 이끌림에 따라 한세기를 살아온 거인은 떠났지만 세상을 향한 그의 진정성과 헌신에 감동받은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그가 뿌린 하나의 씨앗은 큰 나무로 자라날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라제건/각당복지재단 이사장·넷째 아들·동아알루미늄 대표이사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