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라면 60년
[경향신문]
세계라면협회(WINA)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1인당 라면 소비량은 79.7개로 세계 1위다. 적어도 1주일에 한 번은 라면을 먹는다는 말이다. 가히 한국인들의 영혼의 음식, ‘솔 푸드’라 할 만하다. 누구에게나 라면에 얽힌 추억, 이야기 한 토막이 없을 수 없다.
라면의 강점은 쉽고 편하고 값싸게 한 끼를 해결한다는 것이다. 대표적 ‘서민 음식’인 이유다. 한국인이 특히 좋아하는 특유의 감칠맛도 있다. 통념과 달리 탄수화물과 단백질·지방 등 정부의 필수 영양소 섭취비율 기준을 지키고 있다. ‘마법의 재료’인 수프도 화학첨가물이 아니라 대부분 천연재료 추출물이다. 방부제도 없다. 라면 면발 길이는 1개당 50m 안팎으로 생각보다 길다. 꼬불꼬불한 이유도 물론 있다. 제조와 유통·조리 과정에서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과학적 원리들이 숨어 있는 것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레시피로 즐길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면과 수프 중 무엇을 먼저 넣고 끓일지, 말아먹는 밥은 찬밥이 좋은지 더운밥이 좋은지, 파 말고 다른 뭔가를 넣을지 말지….
한국에 라면이 처음 나온 것은 58년 전인 1963년 9월15일이다. 당시 삼양공업(현 삼양식품)이 창립 2년을 맞아 값 10원에 내놓은 ‘삼양라면’이다. 설립자 고 전중윤 회장이 남대문시장에서 미군들의 음식찌꺼기로 만든 ‘꿀꿀이죽’을 사먹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시민들을 보고 배고픔에서 탈출하게 하겠노라고 결심한 게 출시 계기다. 시설과 기술은 종주국 일본에서 들여왔다. 14일 김정수 삼양식품 총괄사장은 창립 60주년 기념식에서 “지난 60년은 배고픔을 해결하겠다는 사명감에서 시작된 도전의 역사”라며 “앞으로의 60년은 세계적인 식품기업으로 거듭나는 새 도전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김 사장의 말대로 라면에는 우리 현대사의 한 자락이 오롯이 녹아 있다. 가난하고 배고프던 시절 한 끼를 때우던 음식을 넘어 저마다의 취향에 따라 즐기는 먹거리가 됐다. 한류 영향으로 지난해 라면 수출액이 6억달러를 돌파했다. 가히 K푸드의 하나로 부를 만하다. 그럼에도 라면에는 아직도 서민들의 애틋함, 애잔함이 서려 있다. 작가 김훈의 산문 ‘라면을 끓이며’에서처럼 밥벌이의 고단함을 상징해서일까.
도재기 논설위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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