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곧 삶이고, 삶이 곧 죽음.. '거대담론' 벗어날 수 있기를"
매년 노벨문학상 수상 유력 후보 거론
4년 세월 걸쳐 1998년 완성한 대표작
특이한 유전병 앓는 산골 집성촌 배경
병의 기원·예방법 파헤치는 노력 통해
고난의 역사 속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
이야기의 역류·역전서사 방식 풀어내
“많은 사람들이 이상한 병을 얻어서 젊은 나이에 죽어간대.”
바로 그 순간, 서른다섯의 작가 옌롄커(閻連科)는 마음먹었다. 죽음에 저항하는 소설을 써야겠다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는 한편 약간의 자신감도 얻고 싶었다. 왜냐하면 그는 오랫동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껴온 데다 서른 살부터 시작된 요추 및 경추 질환으로 거의 반신불수처럼 살아왔기 때문이다.
펜을 들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세심하게 구상할 필요도 없었다. 스토리 전체와 디테일, 인물 등이 알아서 그의 펜 아래로 달려와 그의 지명과 선택, 호명을 기다렸다. 문제는 건강. 점점 심해지는 요추 부상과 경부 질환 때문에, 소설 전반부는 침대에 엎드려서 써야 했고, 후반부는 베이징의 한 공장에 특별히 주문한 글쓰기용 선반에서 써야 했다.
“매일 글쓰기용 선반에 엎드려 글을 쓰다 보면 팔이 거의 제 얼굴과 평행을 이룬 채 안정적으로 글쓰기용 판자와 함께 허공에 걸려 있었습니다.”
주민들은 탕약 처방이나 병원 수술 등 노력을 기울였고, 촌장을 중심으로 사업도 벌이기도 한다. 유채심기 사업을 벌이는 쓰마샤오샤오, 토양을 바꾸려 했던 란바이수이, 병의 원인을 식수로 지목하고 수로 공사를 통해 맑은 물을 마셔 극복하려는 쓰마란.
어렵게 수로 공사를 끝낸 쓰마란은 부인 두주추이가 아닌, 자신이 사랑했던 란쓰스 옆에서 누워 죽는다. 천신만고 끝에 완성된 새 수로를 타고 온 것은 맑은 물이 아니라 쓰레기가 가득한 오염물이었으니.
이야기는 수로공사를 마치고 죽는 쓰마란이 촌장이 되고, 란쓰스를 사랑하다가 두주추이와 결혼하게 되며, 다시 아버지 쓰마샤오샤오가 촌장이 되는 것을 거쳐, 자궁에서 나오려는 순간까지 시간을 거슬러 흐른다.
“쓰마란은 이렇게 미지근한 차 같은 자궁 안에서 은 바늘이 땅에 떨어지는 것처럼 아주 맑고 미세한 웃음을 지으면서 자궁 밖의 세상과 대문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시험 삼아 머리를 세상으로 내밀어보았다.”(955쪽)
“산싱촌은 완전한 상상의 공간인데, 산싱촌이 생겨나게 된 것은 제가 유년시절부터 죽음에 대해 극도의 두려움을 갖고 살아온 사람이기 때문이죠. 저는 항상 인생 허무주의에 빠지곤 했어요. 장기간에 걸친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서른 살부터 시작된 요추 및 경추 질환이 더해졌고요.”
-목구멍병을 극복하기 위해 촌장들은 유채 심기(쓰마샤오샤오), 토양 바꾸기(란바이수이), 수로공사(쓰마란) 등 다양한 사업을 벌이는데요.
“‘일광유년’을 쓴 기간은 1995년부터 1998년까지인데, 그 기간은 중국의 개혁개방과 경제발전의 열기가 가장 뜨거웠던 시기였어요. 수로공사가 실패하는 것은 사회의 광적인 발전과 미래에 대한 개인적 우려를 어느 정도 반영한다고 할 수 있지요. 예컨대 환경보호 같은 문제에 관해선 제가 뭔가 예견할 수 있는 것이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 시대부터 현실에 어떤 불안과 우울이 존재하기 시작했어요.”
-쓰마샤오샤오와 쓰마란, 두옌과 두주추이, 란수이바이와 란쓰스 등 주요 인물들이 생동감 있고 풍성합니다.
“소설에서 죽음이 곧 삶이고, 삶이 곧 죽음입니다. 시간을 역류시킨 건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특별한 구조와 서술을 희망했기 때문이지요. 문학과 예술의 창의성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제 소설이 새로운 시간관과 서사방식을 갖출 수 있기를 희망했고, 그래서 ‘이야기의 역류’, ‘역전서사’의 방식을 시도한 것이죠.”
-사회적 배경으로 토지개혁,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개혁개방 등이 조금씩 비칩니다.
“소설에서 배경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죠. 하지만 이야기 전개에서 그다지 중요한 역할을 하진 않아요. 인물들의 시간이 완전히 역류하는데, 40세에서 39세, 38세, 37세를 거쳐 25세, 24세, 23세로 가다가 마지막에는 3세, 2세, 1세, 0으로 귀착되지요. 역사적 사건들의 출현은 단지 시간과 역사가 소설에서 ‘역류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한 것일 뿐입니다.”
“제 글쓰기의 발단은 소년 시절 배 불리 먹고, 시골을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었어요. 글쓰기 때문에 신분상승을 할 수 있었고, 도시로 들어올 수 있었지요. 글쓰기의 처음 목적은 이름을 날리고 일가를 이루는 것이었죠. 그래서 ‘일광유년’이 제 글쓰기의 전환점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이 소설을 쓸 때를 전후해 제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죠. 이제는 완전히 제 내면세계에 호응하기 위해 정신과 육체가 함께 동원되는 노동을 진행하고 있지요.”
등단 이후 그는 장편소설 ‘그해 여름의 끝(夏日落)’(1992), ‘일광유년’(1998), ‘레닌의 키스(受活)’(2003),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努力人民服務)’(2005), ‘딩씨 마을의 꿈(丁庄梦)’(2006), ‘풍아송(风雅颂)’(2008), ‘해가 꺼지다(日熄)’(2015), ‘캄캄한 낮, 환한 밤(速求共眠)’(2018) 등 많은 작품을 펴냈다. 제1회, 제2회 루쉰문학상과 제3회 라오서문학상, 2014년 카프카상 등 각종 문학상을 수상했다.
병은 완치되지 않았지만 과거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는 그는 왕성한 창작의 비결을 묻자 “딱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게 있다면, 글을 쓰지 않고는 참을 수 없는 그런 마음”이라고 답했다. ‘그 마음’은 매일 이른 아침 노인을 흔들어 깨운 뒤, 청년의 심장으로 문학의 숲으로 끌고 가는데.
샤워와 아침 식사를 한 뒤, 눈에 안약을 한 방울 떨구고, 어깨와 허리에 시원한 파스를 붙인 다음, 허리에 든든한 요대를 하고, 약간 경사지게 나무판을 하나 세워놓은 책상 앞에서, 커피와 차를 쉼 없이 마셔가며, 2만자 정도의 글을 쓰고, 점심 먹고 오후에는 책을 읽거나 사람들을 만나고… 그리하여, 매 순간 그를 숨 쉬게 한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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