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힘들고 무서웠을까"..원룸 빼 직원 월급주고 떠난 호프집 사장 가게 가보니 [르포]

이상현 2021. 9. 14.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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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서울 마포구 소재 한 맥줏집 문 앞에 시민들이 놓고 간 국화꽃과 추모 편지, 카드값 고지서 등이 놓여 있다. 가게 점주 A씨(50대)는 이달 7일 숨진 채 발견됐다. [이상현 기자]
14일 오후 1시께 서울 마포구에 있는 한 맥줏집. 이 가게는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최근 세상을 등진 50대 자영업자 A씨가 운영하던 곳이다.

가게 앞에는 출입 통제선이 처졌고, 문에는 자물쇠가 굳게 걸렸다. 문 앞에는 시민들이 놓고 간 국화꽃 다발과 함께 급전·대출 안내 명함, 카드값 고지서가 놓여 있었다.

A씨는 지난 1999년 서울 마포구에 맥줏집을 열면서 자영업에 뛰어들었다. 맥줏집이 입소문을 타면서 A씨가 운영하는 가게는 한때 4곳으로 늘어나기도 했다. 뷔페를 할 때는 음식을 많이 해 복지재단에 보내는 등 베풀며 살았던 그에게도 코로나19는 모질었다. 매출은 절반 이하로, 다시 또 10만원 이하로 떨어졌다.

거리두기와 영업제한 조치가 강화된 뒤로는 손님의 발길이 끊겼다. 1000만원에 달하는 월세와 직원 월급을 A씨 혼자 감당하기엔 벅찼다. A씨는 지난달 31일 지인에게 한 연락을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달 7일 숨진 채 발견된 그는 직원에게 월급을 주고자 거주하던 원룸도 뺀 것으로 전해졌다.

숨진 A씨가 생전에 운영하던 서울 마포구 소재 맥줏집 문 앞. 14일 가게 계단에는 급전과 대출 안내 명함이 흩뿌려져 있었다. [이상현 기자]
14일 A씨의 가게 앞을 지나는 시민들은 쉽게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침울한 표정으로 가게 문을 바라보기도 했고, 잠시 멈춰 짧은 기도를 올리는 이도 있었다.

인근 직장에서 일하는 한 40대 시민은 "여기 자주 왔는데 장사 잘됐던 곳"이라며 "딱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30대 시민은 "뉴스에 나온 그 가게가 이곳이냐. 아휴, 세상에 참 어떡하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 70대 시민은 가게 문을 한참 바라보다 "자식도 있을 텐데 조금만 더 버티지. 이제 백신도 많이 맞았는데"라며 눈시울을 훔쳤다. 탄식하는 시민의 뒤에는 A씨가 체납한 85만원 상당 전기요금 청구 고지서가 벽에 붙어 있었다.

안타까워하는 건 근처 자영업자들도 매한가지였다. 주변 가게들은 곁에서 일어난 비극이라 더 남 일 같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음식점을 운영하는 한 자영업자는 "1000만원이 뭐냐. 지금 장사하는 사람 중에 억대 빚 없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며 "(A씨가) 얼마나 괴롭고 무서웠겠느냐"고 말했다.

14일 이 가게 문에는 시민들이 남기고 간 추모 편지와 국화꽃이 붙어있었다. 한 쪽지에는 "천국에서 돈 걱정 없이 사세요"라는 문구가 적혔다. [이상현 기자]
한편 A씨의 소식이 알려지자 자영업자 단체들은 소상공인 업종에 대한 영업제한 철폐 촉구에 나섰다. 소상공인연합회와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1년 6개월 동안 자영업자들은 66조원이 넘는 빚을 떠안았고 45만3000여개, 하루 평균 1000여개 매장이 폐업했다"고 밝혔다.

이들 단체는 영업시간·인원 제한 등 현 방역 지침 대신 개인과 업소의 자율에 맡기는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단체는 "죽음까지 내몰리는 극한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소상공인·자영업자의 희생 없는 '위드 코로나' 전환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올해 1~7월 누적 기준 음식점·주점업의 소매판매액지수(불변지수)는 77.0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5년 소매판매액지수를 100으로 기준 잡았을 때 수치다. 불변지수가 낮다는 건 물가를 고려한 자영업자들의 실질 매출액이 적다는 의미다. 77.0은 지난 2010년 이래 최저치다.

[이상현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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