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국립고등음악무용원의 무용교육을 엿보다

송찬미 2021. 9. 14.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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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고등음악무용원의 무용교육은 어떻게 이뤄질까?  

움직임을 기록·분석하고 예술적 시각이 추가되는 ‘씨네토그라피 라반’ 

재학생 이주영 무용가가 전하는 생생한 이야기

예술로 유명한 프랑스. 프랑스 음악, 성악, 패션, 회화에 대한 이야기는 여럿 들었지만 무용에 대한 것은 상대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다. 그리고 그중에서 국제적으로 명성 높은 파리 국립고등음악무용원(Conservatoire National Supérieur de Musique et de Danse de Paris, CNSMDP)의 무용과 이야기는 더더욱 적다. 

그래서일까? 프랑스 CNSMDP에서 배우고 있는 이주영 무용가가 아주 반가웠다. 한국과 프랑스에서 무용교육을 받아, 그 길을 확고히 하고 있는 이주영 무용가를 통해 프랑스 무용교육 환경을 가까이서 엿보려고 한다.

◆안시 그랑드 발라드 축제에서 공연 중인 이주영 무용가 ⓒ이주영

Q1.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현재 프랑스에서 프리랜서로 무용수, 연출, 안무가 또 무용교사로 활동하고 있고, 파리 국립고등음악무용원에서 씨네토그라피 라반(Cinétographie Laban) 전공생으로 마지막 해를 보내고 있는 무용가 이주영이라고 합니다. 

Q2. 프랑스에 오게 된 계기가 있나요?

대학교 졸업과 동시에 무용수로 활동하다가 2012년에 제 무용단을 창단해서 안무가로서 매년 작품을 올렸습니다. 신인 안무가로서 여러 가지를 시도하고 싶었기에 매년 신작을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러 움직임, 춤, 작품들을 찾아보고 배우러 다니고 그러던 중에 가까운 해외로 여행을 가볼까 하다가 몽골로 여행을 가게 됐습니다. 여행으로 갔는데 그 나라 춤을 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몽골 울란바토르 국립예술대학교 무용과에 찾아가서 제가 수업을 하는 한편, 다른 학생들 수업에도 참여가 가능할지 물어봤습니다.  

긍정적인 답변을 받은 저는 수업도 하고 다른 학생들 수업에도 참여해 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 춰보는 몽골 전통춤과 현대무용을 배우면서 ‘아직 보고 배워야 할 것이 많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제가 배우고 춤춰왔던 것들이 다가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선택한 것이 유럽 쪽 춤과 유럽의 무용 공연을 보러 직접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프랑스에 무용페스티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몽골에서 돌아오고 나서 얼마 후, 바로 프랑스 겨울 무용페스티벌을 보러 갔습니다. 두 달 동안 페스티벌 공연을 보러 다니고 워크숍을 다니면서 많은 무용수들과 안무가들을 만났습니다. 생각보다 두 달이 너무 빨리 흘러갔고, 프랑스에 매료돼 다시 오게 됐습니다.

Q3. 지금 다니는 예술원은 한국에서 지원해서 오신 건가요?

아니요. 프랑스에 다시 방문했을 때, 프랑스에 사는 무용수 친구와 대화하다가 학교를 알게 됐습니다. 전문 무용인들이 창작 안무 방식을 배워 볼 수 있는 곳이 있다며, 씨네토그라피 라반이 있다고 알려 주더라고요. 그 이름은 한국에서도 들어 알고 있었지만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친구의 설명에 관심이 생겨 학교에 직접 찾아갔고, 담당 교수님에게 연락하면 청강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연락을 했습니다. 청강을 하면서 ‘난 왜 이 방법을 제대로 배워 본 적이 없었지?’ 하는 의문이 계속 맴돌았습니다. 

Q4. 전공과정 이름이 ‘씨네토그라피 라반’인데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움직임'이라는 뜻을 가진 '키네토(kineto)'와 '기록'을 뜻하는 '그라피(graphy)'가 합해 '움직임을 기록한다'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루돌프 라반의 기록법을 따른 것이기에 뒤에 라반을 붙여줍니다. 

음악의 악보처럼 ‘움직임을 악보화’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움직임을 기록하는 것뿐만 아니라 움직임 분석과 예술적 시각이 추가되기에 이론과 창작이 접목된 시스템입니다.

한국에서는 영문명인 '라반 노테이션(Labanotation)' 혹은 '키네토그래피 라반(Kinetography Laban)'이라고 알려져 있죠. 무용을 전공하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론 교양수업에서나 짧게 배우고 어렵다는 이미지가 강해 인기가 많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프랑스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 무용수에게 듣기로는 이화여자대학교 학부생일 때 조금 배웠다고 들었습니다.

Q5. 학과 시스템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제가 등록한 학과는 무용 전문인 및 움직임 관련 분야 전문인을 대상으로 씨네토그라피 라반을 가르치는 과정입니다. 총 두 개의 과정(cycle)이 있고 한 과정이 2년입니다. 그래서 두 과정을 마치면 4년이 되죠. 

첫 번째 과정의 경우, 한 달에 4일 학교에 출석했습니다. 학교에 가는 날은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10시간을 학교에서 보내야 합니다. 4일 동안 집중 수업을 하다 보니 수업하는 날은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었습니다. 

과제로는 안무를 구상해 오거나, 라반 시스템을 갖고 상대의 움직임을 분석해서 악보화하는 것 등이 있었습니다. 첫 과정의 통과 심사는 리포트 제출, 작품을 보고 무보(무용보)로 기록, 기존의 무보를 보고 춤추기로 이뤄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도 하차하거나 유급하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두 번째 과정은 첫 과정에서 배운 시스템을 빠르게 복습하고, 개인적으로 관심 있는 분야를 연구하면서 관련된 움직임 악보를 만듭니다. 과제 분량이 커지고, 내용도 방대해집니다. 졸업논문을 위한 공부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교수나 안무가가 될 사람들을 위해 교수법과 안무법 교육도 받습니다. 때문에 본인의 계획에 따라 심화 방향을 정할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Q6. 파리 국립고등음악무용원을 다니면서 좋다고 느낀 프로그램이 있나요?

네,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 세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과 학생들은 실기과 수업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돼 있습니다. 물론 사전에 각 교수님들과 소통이 필요하고 혹은 과사에 연락을 취합니다. 실제로 참여할 수도 있고, 참관만 하면서 움직임을 분석하고 기록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때 저는 창작에 대한 영감을 많이 얻었습니다. 

두 번째는 캠프입니다. 유럽의 고등예술원들끼리 연맹해서 이뤄지는 행사로 매년 각 과에서 학생들을 보내 춤 워크숍을 엽니다. 다른 나라에서 오거나 프랑스 다른 지역에 있는 학생들이 와서 숙소가 마련되는데, 일주일 동안 숙박하기 때문에 캠핑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선발되거나 추천받아 오는 학생들을 만나게 되는데 패션, 무용, 퍼포먼스, 미술 등 다양한 과의 학생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이 수업을 준비해서 나누는 시간도 있어서 서로 영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올해는 제가 과 대표로 씨네토그라피 라반에 대해 다른 나라, 다른 학교에서 온 마스터 학생들 앞에서 짧은 수업을 진행해 봤습니다. 

마지막으로 졸업생과의 만남 프로그램이 기억에 남습니다. 매년 저희 학교 졸업생들과 재학생들이 만나는 자리가 주어집니다. 사실 재학생들을 위한 포럼이 아니라 현재 여러 방면에서 활동 중인 선배들이 모여 한 해의 일을 공유하고 또 시스템의 새로운 발견을 이야기하는 자리에 후배들이 참관하는 거지요. 

그래서 재학생들에게는 졸업 후 전문인으로서의 활동 경험, 사회생활, 어떻게 예술가로서의 삶을 이어가고 있는지, 실질적인 작업 현황은 어떤지 더 나아가 계약서는 어떻게 써야 하는지 등에 대해 들을 수 있는 시간입니다. 아주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Q7. 한국과 프랑스의 무용 접근방식의 차이를 느끼시나요? 

저를 지도한 시모네 노엘(Noëlle Simonet) 교수님은 수업하는 동안 학생들이 이해가 될 때까지 직접 예를 보여주거나 예를 들어 설명해 주는 편이었습니다. 때문에 저는 외운다는 생각보다 ‘배우고 깨닫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기술적 완벽성을 추구하는 한국과는 다른 접근 방식이라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또 한국에서는 답이 다 정해져 있고 무용수들이 그 답에 스스로를 끼워 맞춰야 하는 느낌을 받았는데, 프랑스에서는 수업 시간에 배운 것보다 더 발전된 답을 해야 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더 발전된 답을 위해서는 생각을 확장하고, 스스로의 독창성을 키우기 위해 연구해야 합니다. 제가 겪은 프랑스 무용 접근 방식은 충분히 영감을 주고, 개인이 발전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기에 예술가에게 적합한 교육 같습니다. 

Q8. 졸업 후 계획이 어떻게 되는지요?

졸업 후 어느 나라에서 활동하게 될지는 아직 미정입니다. 다만 이곳에서 수학하면서 라반 시스템이 얼마나 국제적이고 유용한 것인가를 알게 됐기 때문에 이를 기반으로 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라반 기록법으로 한국의 무용을 세계에 알리고 싶습니다. 그 첫 시도로 2년 전에 씨네토그라피 라반으로 강강술래를 분석하고 무보에 기록했습니다. 그 논문이 저희 학교의 도서관 및 학과에 보관돼 있습니다. 지금은 한국의 현대무용 작품을 연구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다시 한번 라반 시스템의 가능성을 봤습니다.

교육과 관련해서는 라반 기록법을 알리고 싶습니다. 라반 기록법은 그동안 배워보기 힘들었던 세계의 작품들을 무용보를 통해 가르치는 게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한국에 안무학 전공이 생긴다면 아주 유용하게 쓰이리라 봅니다. 나아가서 움직임이 주가 되는 다른 예술에도 이 방식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안무가로서는, 라반 시스템을 활용해 작업하고 있는 많은 무용가들처럼, 이 시스템을 기반으로 풍부한 창작활동을 하고 싶습니다. 

◆이주영 무용가 ⓒ이주영

라반 노테이션, 베니쉬 노테이션 전공과정이 있는 세계 유일한 학교로 잘 알려져 있는 파리 국립고등음악무용원은 그 이름에 걸맞게, 장기간에 걸친 심화교육을 추구하고 있었다. 단순히 움직임을 가르치는 시각에서 벗어나 분석하고, 창작하고 나아가 보존도 할 수 있는 무용 기록법에 대한 중요성을 일찍이 안 것이다. 

직업 활동을 병행하면서 연구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타 학과와의 교류 경험을 바탕으로 자연스레 열린 사고를 유도하는 것 또한 고등예술원으로서 선택한 교육방식이 아닌가 싶다.

프랑스 일드프랑스 = 송찬미 글로벌 리포터 chan.song@univ-lr.fr

■ 필자 소개

라로셸대학교 전임강사

파리대학 한국어교육학 석사 재학

파리8대학 연극학 석사 졸업

파리19구구립연극원 연기자 과정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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