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 한복집의 한숨 "추석·결혼 대목 없다, 하루 한벌 팔면 다행"

한예나 기자 2021. 9. 14.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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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150개였던 동대문 한복집
올초 24개서 이젠 13개로
추석을 앞둔 대목이지만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대문종합시장 한복 매장들은 손님이 없어 한산한 모습이다. 이곳에선 20년 전까지만 해도 150여 한복 매장이 영업했지만, 코로나 사태로 결혼식, 환갑 잔치 등 행사가 대폭 줄어들면서 올 초 24개로 줄었고, 현재 13곳만 남아 있다./이덕훈 기자

14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동대문종합시장. 추석 대목을 불과 일주일 앞뒀지만 한복 매장이 모여있는 A동은 손님 하나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한산했다. 알록달록한 한복과 원단을 매장 앞에 내건 상인들은 우두커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거나, 이웃 사장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곳에서 41년째 한복 매장을 운영했다는 류명현(62)씨는 “한복이 호시절이었던 20년 전만 해도 시장 건물 5개동(棟) 곳곳에 한복 매장만 150곳이 넘게 있었다”며 “올초엔 이게 24곳으로 줄었고, 매출이 줄고 임차료 부담 때문에 지금은 11곳이 추가로 폐점해 남은 건 13곳뿐”이라고 했다. 그는 “원래 추석 앞두고는 한복 매장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해서 발 디딜 틈도 없었는데, 요즘은 추석 특수는커녕 하루에 한 벌 팔까 말까 한 수준”이라고 했다.

한복 업계가 위축되는 이유는 복합적이지만, 최근엔 코로나 여파가 컸다. 동대문시장에서 30년 넘게 한복 매장을 운영했다는 윤계상(64)씨는 “한복 찾는 사람이 줄어드는 와중에 그나마 명맥이라도 이어갔던 건 결혼식이나 환갑잔치 덕분이었다”며 “그런데 코로나로 이런 행사들이 다 사라지면서 이곳도 텅 비게 된 것”이라고 했다. 방역 당국의 사회적 거리 두기 지침에 따라 결혼식, 돌잔치, 환갑잔치와 같은 행사들이 일제히 축소되거나 취소되는 여파를 한복이 고스란히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복업에 내 청춘을 바쳤고 이곳이 초호황기를 맞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생계를 걱정해야 할 판”이라고 했다.

상인들은 코로나가 끝나고도 ‘한복 문화’가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고 걱정한다. 코로나로 소규모 가족 행사가 점차 보편화하면서 결혼식에서 폐백을 생략하고, 소규모 인원만 초대하는 ‘스몰웨딩’ 등 행사 문화 자체가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예비 부부들 사이에선 한복을 맞추는 대신 그 돈으로 전셋값, 가전, 주식 등 다른 데 투자하는 게 실속 있다고 보는 이들도 많다. 내년 8월 결혼 예정인 김모(여·27)씨는 “결혼식 준비를 할 때, 주변에서 많이 하는 조언은 ‘한복에 돈 쓰지 말라’는 것”이라며 “양가 부모님 모두 양복을 입고 하려다가 예비 시아버지가 ‘그래도 한복은 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셔서 양가 어머님들만 한복을 맞춘 상태”라고 했다. 그도 한복 없이 드레스만 입고 예식을 치를 예정이다.

코로나로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긴 것도 한복 상인들의 발목을 잡았다. 통계청의 ‘4대궁 및 종묘 한복 착용 관람객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5년 1만3300명이었던 관람객은 2019년 115만587명으로 폭증할 만큼 최근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 ‘한복 열풍’이 거세게 불었다. 하지만 코로나가 퍼진 지난해에는 15만4924명으로 급감했다. 서울 종로구 경복궁 인근에서 한복 대여점을 운영하는 성모(47)씨는 “외국인들과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잠깐 한복 열풍이 불다가 다시 분위기가 푹 꺼졌다”며 “코로나 이후 전체 손님의 80% 이상을 차지했던 외국인도 줄고, 옷을 빌려 입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다 보니 요즘은 아예 개시도 못 하는 날도 있다”고 했다.

가업(家業)으로 46년째 이어진 한복 매장을 어머니와 함께 운영하는 이모(44)씨는 “코로나도 코로나지만, 점점 사람들이 한복을 ‘귀찮아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며 “그래도 우리의 전통 옷인데, 전통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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