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배출 많은 철강·석화는 감산하란 말..인프라 등 지원부터"
기술 확보와 인프라 구축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
탄소배출권 가격 안정화 방안 필요성 커져
기술지원, 재생에너지 인프라 확대 등
[이데일리 함정선 박순엽 기자] 산업계는 글로벌 탄소중립 기조에 따라 여러 준비를 진행해왔음에도 우리 정부의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상향에 따라 당장 생산량을 줄이는 것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산업부문의 탄소 배출 약 40%를 차지하는 철강업계와 18%에 이르는 석유화학 등의 업계로서는 감산 외에는 답이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정부는 NDC를 35% 이상으로 상향하는 내용의 ‘탄소중립기본법’이 지난달 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10월 2030년 NDC를 확정하고, 11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산업계에서는 꾸준히 정부의 온실가스 배출 감소 방향성에 대해서는 동의해왔다. 국내 대부분 제조기업들의 경우 수출 의존도가 큰 만큼 국내를 떠나 글로벌 시장의 요구에 따라 탄소감축 전략을 세워 온실가스 배출 감소를 위한 정책과 전략을 시행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는 속도다. 이번 NDC 상향의 경우 2030년이라는 단기 목표인 만큼, ‘2050년 탄소중립’과 달리 기업의 경쟁력과 수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아직 기술 확보와 인프라 구축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목표가 높아짐에 따라 이를 따라잡기 위해 가장 쉬운 방법은 감산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탄소배출권 가격 안정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당장 기업들이 NDC 상향 기준을 따르기 위해 ‘탄소배출권’ 거래에 나서며 가격이 급등할 수 있기 때문이다.
1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탄소배출권 중 현재 가장 거래가 많이 되는 KAU21(2021년 할당배출권)은 이날 기준 t당 2만82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가격이 가장 낮았던 지난 6월 23일 종가 1만1550원보다 두 배 넘게 상승한 수준이다.
기업은 정부가 설정한 할당량보다 탄소를 더 많이 배출하면 온실가스 배출권 시장에서 배출권을 구매해야 하는데, 올해 하반기 경기 회복으로 기업들의 배출권 수요가 늘어나면서 가격도 오른 것으로 풀이된다.
또 올해 시작된 3차 계획부터 정부가 기업이 의무적으로 구입해야 하는 탄소배출권 유상할당 비중을 10%로 확대한 점도 영향을 끼쳤다. 정부는 앞서 1차(2015~2017년) 땐 기업에 할당량을 100% 무상으로 나눠줬고, 2차(2018~2020년) 땐 유상할당 비중을 3%로 책정했다. 기업들이 이처럼 돈을 주고 구매하는 배출권이 늘수록 탄소배출권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업계에선 올해 하반기 배출권 가격이 최소 3만원까지 상승할 것이란 전망도 나와 탄소 배출량이 정부의 할당량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철강·정유업계에선 ‘속앓이’를 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보통 하반기엔 배출권 거래가 집중돼 가격이 오르는 편인데, 올해는 경기 회복이 겹치면서 가격이 더 오른 편”이라며 “유럽연합(EU)에서도 온실가스 감축안을 발표한 이후 배출권 가격이 올랐듯 정부가 NDC 목표치를 어느 정도로 결정하느냐에 따라 가격 상승폭도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은 정부가 NDC 목표를 크게 상향하면 수출 경쟁력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전체 배출권 할당량이 줄어들면 배출권 가격이 급등하고, 이는 배출권을 구매하는 기업의 비용으로 책정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업계로선 국내 온실가스 배출권 가격이 수시로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는 점도 부담스러운 요소다. 배출권 가격은 2015년 1월 8640원으로 시작해 2020년 초 4만2500원까지 상승하는 등 급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예비분 추가 공급, 기업이 가진 잉여분의 이월 제한 등 시장 안정화 조치를 시행했지만 가격 안정 효과는 미흡했다는 평가다.
탄소 중립을 위한 기술 개발에 대한 지원과 함께 재생에너지 공급에 대한 인프라 등 선제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철강업계의 경우 ‘수소환원제철’ 기술이 탄소를 줄이는 획기적인 신기술로 손꼽힌다. 다만, 연구·개발(R&D)에만 5~7년, 1조원이 소요되는 등 비용이 막대하고 기술도 초기 단계인 것이 문제다. 포스코는 수소환원제철 기술 전환에만 54조원이 들어갈 것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정부가 이 같은 기술 개발에 보다 적극적인 투자와 지원을 진행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이와 함께 기업들의 생산능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안정적인 재생에너지 기반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석유화학 업계 한 관계자는 “사실 국내에 재생에너지 자체가 그리 많지 않아 기업의 수요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비중이 커지는 것이 우선”이라며 “또한 재생에너지의 경우 생산이 불규칙할 수 있기 때문에 에너지저장장치(ESS)와 같은 기반 마련도 선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 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도록 전기료 등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은 대부분 수출 기업으로 향후 재생에너지 사용 비용이 산업 전기료보다 높아진다고 하면 생산 원가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며 “해외에서 가격 경쟁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경제계는 대·중견·중소기업에 대해 각각 1·3·10%인 ‘환경보전 및 에너지 절약시설 공제율’을 5·7·10%로 상향할 것을 건의하기도 했다.
함정선 (mint@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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