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명이 '고무줄 거리두기' 만들어 시위 처벌 가능, 합헌일까?

신다은 2021. 9. 14.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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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세계 대유행]민주노총 변호인단, 15일 양경수 구속적부심 의견서 제출
헌법상 기본권 제한하면서, 요건 정하는 주체와 기준 모호
지난 8일 서울 광화문사거리 인근에 집회금지 안내문이 놓여있다. 연합뉴스

지난 7월22일 오전, 원창묵 원주시장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원주시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3단계로 격상했다. 더욱이 원 시장은 집회에 대해서만 4단계를 적용해 1인 시위만 허용했다. 하루 뒤로 예정된 민주노총의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상담사 직접고용 촉구 집회를 막기 위한 임의 조처였다.

현재 우리나라에 원 시장처럼 사회적 거리두기 및 집합 금지 지침과 이를 어길 경우 처벌의 요건을 임의로 정할 수 있는 주체가 몇명이나 될까?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변호인단이 14일 양 위원장의 구속적부심사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신청하면서 경찰에 제출한 의견서를 보면, 모두 243명에 이른다.

감염병예방법 49조는 질병관리청장과 지방자치단체장에 ‘여러 사람의 집합을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조처를 할 권한을 포괄적으로 위임한다. 이에 따라 행정명령격인 각 지방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이 사실상 법령의 지위를 부여 받게 됐다. 이로 인해 질병관리청장 1명과 시·도지사 16명, 시장·군수·구청장 226명 등 총 243명이 거리두기 단계와 집합 유형에 따라 사법 처벌의 요건을 저마다 다르게 정할 수 있다.

지방정부의 지침이 일관성 없이 수시로 바뀌는 것도 법적 안정성을 해친다. 양 위원장은 지난 6월 산재 사망 노동자 추모집회와 6월19일 택배노조 파업 결의대회에 참여하고, 7월3일 8천여명 규모 노동자대회를 개최해 감염병예방법을 위반한 혐의로 지난 2일 구속됐다. 6월19일~7월3일 서울시의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은 세 번 바뀌었고 내용과 기간, 형식 면에서 일관성도 결여돼 있었다. 변호인단은 이 기간 서울시가 △‘기간의 정함 없이’ 10인 이상의 집회 금지를 일률적으로 금지하거나 △50인 미만의 집회 허용을 선언한 지 불과 이틀 만에 다시 10인 이상의 집회를 모두 금지했으며 △10인 이상 집회 금지의 내용을 사전에 공표하지도 않고 공표 시점부터 곧바로 적용했다고 지적했다. 변호인단은 “범죄의 구성요건이 15일 동안 세 번 바뀐데다 이틀에 한 번 꼴로 변경된 것”이라며 “수범자 입장에서 범죄의 구성요건이 무엇인지 아는 게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더욱이 지방정부가 대중 행사의 규제와 허용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도 불분명하다. 서울시의 경우, 10인 이상 집회를 금지하면서도 뮤지컬 공연은 입장인원의 제한이 없고 대중음악 콘서트는 최대 4000명 규모까지 허용된다. 민주노총 변호인단은 “서울시가 규제 대상으로 삼는 집회와 뮤지컬, 백화점 영업 등 일반 행사는 모두 불특정 다수인의 회합이라는 측면에서 동일하고 달리 취급할 합리적 이유도 없다”고 주장한다.

결국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인 집회 시위의 자유를 중대하게 제한하고 처벌하면서, 그 요건을 정하는 주체와 기준은 그만큼 엄격하지 못했던 셈이다. 변호인단은 “집회는 우리 사회 약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유일한 통로”라며 “코로나 19 발생 이후 사실상 전면적으로 금지돼 온 집회에 대해 이제는 국민 건강권 보호와 집회 시위의 자유의 균형을 구체적으로 고민할 때”라고 밝혔다.

아울러 변호인단은 코로나19 방역과 집회의 균형을 찾아가는 국외 사례도 제시했다. 지난해 5월 이후 미국 전역에서 일어난 인종 차별 반대 시위(Black lives matter)의 경우 시위 참가자가 마스크를 착용하고 집회 후 코로나19 검사를 받았으며, 경찰도 시위 진압 과정에서 좁은 공간으로 참가자를 몰아넣지 않았다. 그 결과 집회 후 대규모 집단 감염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변호인단은 올해 프랑스 파리와 독일도 1만명 규모 노동절 집회를 합법적으로 개최했고, 지난 7월 민주노총이 주최한 7·3 노동자대회도 집회로 인한 감염자가 나오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날 인권운동바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등 시민종교단체도 양 위원장의 불구속 재판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양 위원장이 집회를 개최한 지난 7월은 야구장과 축구장에 수천 명의 관중이 입장하고 있었고, 실내에서도 수천 명이 모이는 공연까지 허용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유독 옥외집회만 사실상 금지한 것은 선택적, 차별적 방역대책”이라며 “재판이 필요하다면 불구속 재판하는 것이 정도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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