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 청계천의 왜가리는 별종일까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2021. 9. 14.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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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이 복원되면서 왜가리와 백로도 되돌아왔다. 인파로 북적거리는 환경에 익숙해서인지 이들은 사람들이 가까이 있어도 불안감을 느끼지 않는 듯하다. 지난 2017년 7월 장맛비가 오락가락한 서울 청계천에서 왜가리 한 마리가 먹이를 찾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요즘 비둘기들은 사람을 별로 겁내지 않는 것 같다. 특히 천변에 사는 비둘기들이 더 그런 것 같은데, 산책하는 사람이 가까워지면 동시에 날아가 자리를 피하는 대신 옆에 지나갈 때 몇 마리가 마지못해 몇 걸음 옮기는 정도다. 아마도 천변의 비둘기들은 산책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을 해코지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걸 알고 이처럼 태연하게 반응하는 게 아닐까.

하루는 한여름 낮에 지나가다 길옆 풀 위에 비둘기가 쓰러져있는 걸 보고 다치거나 병들어서 그런 줄 알고 걱정스러워 다가가 자세히 보니 멀쩡했다. 아마 일광욕을 하는 것 같았는데, 사람이 자신을 주목하며 코앞까지 다가왔음에도 누운 채 나를 빤히 쳐다보는 눈빛이 ‘그냥 가던 길 가시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아마 길고양이였다면 이렇게 반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얼마 전 서울 을지로에 일이 있어 갔다가 급할 게 없어 지하철을 갈아타는 대신 광화문까지 청계천변을 걷기로 했다. 이렇게 아래에서부터 걸은 건 처음인데 중간중간 왜가리와 백로가 보이고 어른 팔뚝보다 큰 잉어들도 유유히 돌아다니고 있어 신기했다. 시작점에 가까워지면서 천변이 계단식으로 바뀌어 사람들이 군데군데 앉아있었다. 여기도 몇 년 만에 걷는 것 같다.

그런데 눈앞에 이상한 광경이 펼쳐졌다. 왜가리와 백로가 사람들이 가까이 있어도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다. 특히 왜가리 한 마리는 연인으로 보이는 젊은 커플이 앉아있는 계단 바로 옆 물가에 서서 목을 삐딱하게 늘린 자세로 마치 요가를 하듯 가만히 서 있었다. 맘만 먹으면 순간 팔을 뻗어 목을 낚아챌 수도 있는 거리다. 너무 신기한 장면이라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찍으려다가 커플에게 자칫 오해를 살 것 같아 아쉽지만 그만뒀다. 

청계천의 왜가리, 백로와는 달리 우리 동네 개천의 왜가리와 백로는 사람들이 가까이 있는 걸 몹시 불편해한다. 1m 이내 거리는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중간에 풀이 가로막고 있어도 최소한 3~4m는 떨어져야 안심하는 눈치다. 사진을 찍으려고 조금만 다가가도 날아가 버린다. 사실 야생 조류의 행동으로는 이게 정상 아닐까. 

복원된 청계천을 찾은 왜가리와 백로도 처음에는 둑을 계단으로 만들어 사람들로 붐비는 상류는 꺼리지 않았을까. 그러다 대담한 녀석이 조금씩 활동 반경을 넓혔고 사람들과 가까이 있어도 문제가 없자 이를 지켜본 다른 녀석들도 따라 한 게 아닐까. 그 뒤 점점 과감해져 이제는 사람들 바로 옆에서 멍때리고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청계천의 왜가리와 백로는 우리 동네 개천의 동족들과 서로 문화가 다르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1950년대 코지마섬의 일본원숭이 무리에서 고구마를 바닷물에 씻어 먹는 요령이 퍼진 사건은 동물 세계에도 문화가 존재함을 보여준 가장 유명한 사례다. 앤드류 매킨토시와 시실 새러비언 제공

초파리의 문화생활

문화는 인류에게만 적용된다고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동물 세계의 문화도 널리 인정받고 있다. 한 구성원이 고안해낸 행동을 주변에서 보고 배워 무리 전체에 퍼져 세대를 거쳐 이어온 걸 문화라고 정의하면 동물에서도 이에 해당하는 사례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동물 문화의 대표적인 예가 1950년대 일본 코지마섬의 일본 원숭이들 사이에 퍼져나간 ‘고구마 씻기’다. 

당시 원숭이 행동을 연구하러 섬에 온 과학자들이 유인책으로 고구마를 줬는데 하루는 한 녀석이 흙이 묻은 고구마를 바닷물에 씻어 먹는 요령을 터득했고 이를 지켜본 다른 녀석들도 따라 하며 전체 무리로 퍼졌다. 고구마를 씻어 먹는 건 본능에 따른 행동이 아니라 코지마섬 일본원숭이들이 만든 문화적 행동이라는 말이다. 

천적을 인식하는 것도 문화적 측면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설치류가 고양잇과 포식자의 오줌 냄새에 공포감을 느끼는 건 타고난 반응이지만 천적 냄새에 대한 반응이 다 그런 건 아니다. 예를 들어 북미의 피라미와 가시고기는 생활권이 겹친다. 둘 다 강꼬치고기의 먹잇감이다. 그런데 강꼬치고기에 쫓긴 경험이 있는 녀석들은 물에서 강꼬치고기 냄새만 맡아도 얼른 숨을 곳을 찾는다. 반면 이런 경험이 없는 녀석들은 강꼬치고기 냄새를 맡아도 유유자적이다.

그런데 무경험 피라미와 유경험 피라미를 같이 둔 어항에 강꼬치고기 채취가 농축된 물을 섞으면 유경험자는 놀라 은신처로 숨는다. 며칠 뒤 이 장면을 목격한 미경험자를 어항에 혼자 둔 뒤 강꼬치고기 채취가 농축된 물을 섞자 강꼬치고기를 본 적도 없음에도 놀라 은신처로 숨었다. 한편 무경험 가시고기를 유경험 피라미와 같이 두고 위의 실험을 진행해도 같은 결과를 얻었다. 종이 다르더라도 입장이 같으면 문화가 전파될 수 있다는 말이다.     

동물의 문화 현상은 척추동물에서만 보이는 게 아니다. 심지어 곤충도 문화가 있다. 예를 들어 초파리 짝짓기의 선호도도 본능보다 문화의 영향을 더 받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수컷 한 마리는 등에 녹색 페인트를 칠하고 다른 한 마리는 분홍색 페인트를 칠한다. 이들을 한 공간에 두고 암컷 한 마리를 투입한다. 암컷은 마음에 드는 수컷을 골라 짝짓기를 한다. 여러 개체로 실험한 결과 수컷 등 색깔은 선택의 변수가 되지 못했다.

그런데 옆에서 짝짓기 과정을 지켜본 암컷에서는 얘기가 달라졌다. 암컷이 녹색 등 수컷과 짝짓기하는 걸 지켜본 암컷은 자신에게 선택권이 주어질 때 역시 녹색 등 수컷과 짝짓기하는 경향을 보였다. 반면 분홍색 등 수컷과 짝짓기를 하는 걸 지켜본 암컷은 분홍색 등 수컷을 선호했다. 이런 경향은 금방 무리 전체로 퍼졌다. 만일 수컷의 외모 차이가 유전자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처음의 우연한 선택이 특정 유전형을 선택하는 결정적 변수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경우 자연선택이라기보다 문화선택이라고 봐야 맞지 않을까.

고등 동물뿐 아니라 곤충도 문화생활을 한다는 게 밝혀졌다. 등이 빨간 수컷과 녹색인 수컷 가운데 후자와 짝짓기하는 장면을 지켜본 암컷은 나중에 선택권이 주어졌을 때 녹색 등 수컷을 선호한다. 반대로 빨간 등 수컷과 짝짓기하는 장면을 지켜본 암컷은 빨간 등 수컷을 선호한다. 사이언스 제공

앵무새, 쓰레기통 뚜껑 여는 요령 전파

청계천 왜가리를 보고 오다가 문득 지난 7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린 한 논문이 떠올랐다. 호주 시드니와 울런공 교외에 사는 큰유황앵무가 먹이를 찾는 과정에서 쓰레기통 뚜껑을 여는 요령을 습득했고 불과 2년 사이 주변 지역으로도 퍼져나갔다는 내용이다. 이 지역의 공공 쓰레기통은 한쪽이 고정된 여닫이식의 빨간색 뚜껑이 달려있다. 따라서 동물은 좀처럼 뚜껑을 열 수 없는 구조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뚜껑을 열어 통 안의 쓰레기를 뒤져 먹이를 찾는 큰유황앵무가 목격되기 시작했다. 독일 막스플랑크 동물행동연구소와 호주 타롱가과학학습연구소의 공동연구자들은 시민과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이런 행동이 전파돼 문화로서 자리 잡을 수 있는지 알아봤다.

2018년 이전에는 교외 세 구역서 큰유황앵무가 쓰레기통 뚜껑을 여는 행동이 보고됐다. 그리고 건수도 구역별로 두세 차례 목격된 게 전부다. 그런데 2018년 후반이 되자 이런 행동이 관찰된 게 10여 구역으로 늘어났고 수십 건을 목격한 구역도 있었다. 다시 1년이 지나 2019년 후반이 되자 쓰레기통 뚜껑을 여는 행동이 보고된 구역이 44곳에 이르렀다. 새로 습득한 행동이 불과 2년 사이에 사방 수십㎞로 확산한 것이다.

쓰레기통 뚜껑을 여는 게 뭐 그리 대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에 비해 덩치가 훨씬 작은 앵무새의 입장에서는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자세히 관찰한 결과 큰유황앵무는 5단계를 거쳐야 뚜껑을 열 수 있었다. 먼저 경첩으로 통에 고정된 쪽의 반대쪽을 부리로 집어야 한다. 다음으로 뚜껑을 어느 정도 열고 나서 몸으로 바친 뒤 통 위를 따라 경첩 쪽으로 걸어가야 뚜껑이 점점 열린다. 마침내 90°가 넘으면 뚜껑이 뒤로 젖혀지며 완전히 열린다. 

보통 앵무새라면 쓰레기통을 도저히 열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아주 똑똑한 녀석이 이런저런 시도를 하다가 우연히 뚜껑을 여는 데 성공했고 이를 재현할 수 있게 되면서 새로운 문화의 발판이 마련됐을 것이다. 그리고 주변의 다른 앵무새들도 이 과정을 지켜본 뒤 따라 시도했다. 

그러나 이 요령을 습득해 쓰레기통 뚜껑을 여는 데 성공하는 확률은 높지 않았다. 등에 식별 표시를 한 114개체 가운데 36개체만이 뚜껑을 여는 시도를 하는 게 관찰됐고 그 가운데 불과 9개체만이 성공했다. 그나마 시도한 개체의 84%와 성공한 개체의 89%가 수컷이었다. 암컷은 불과 6마리가 시도했고 이 가운데 한 마리만이 성공했다.

최근 호주 시드니 일대의 큰유황앵무가 쓰레기통 뚜껑을 여는 법을 터득했고 이 행동이 주변으로 빠르게 퍼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앵무새는 덩치가 작아 5단계를 거쳐야 뚜껑을 열 수 있다. 남이 여는 걸 보지 못했다면 시도해도 성공할 확률이 희박하다. 사이언스 제공

새로운 행동을 시도하고 성공하는데 이처럼 암수 차이가 큰 이유에 대해 저자들은 두 가지 설명을 내놓았다. 먼저 수컷이 덩치가 더 커 힘도 더 세므로 과감하게 시도한다는 것이다. 수컷이 대체로 서열이 높아 자원(쓰레기통 속 음식 찌꺼기)에 대한 우선권을 행사한 결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두 설명만으로는 이런 극단적인 차이를 설명하기에 부족해 보이다.

사실 동물 문화에 대한 최초의 증거도 새의 먹이 활동에서 포착됐다. 1930년대 영국에서 박새가 우유병의 종이 뚜껑을 찢어(한 세대 전 한국에도 이런 우유병이 있었다) 위에 뜬 크림을 먹는 모습이 관찰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불과 10년 사이 이 행동(문화)이 영국 전역의 박새로 퍼진 것이다.

청계천의 왜가리가 우리 동네 개천까지 날아오는 데는 30분이면 넉넉할 것이다. 이곳에 와서 사람들 바로 옆에 있어도 괜찮다는 걸 보여주면 여기 사는 왜가리와 백로도 생각이 바뀌지 않을까.

동물 문화에 대한 최초의 보고는 1949년 학술지 ‘영국 조류’에 발표됐다. 1930년대 박새가 우유병의 종이 뚜껑을 찢어 위에 뜬 크림을 먹는 모습이 포착됐고 10년 사이 이 행동이 영국 전역으로 퍼졌다. 영국 조류 제공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7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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