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분할에 푹 빠진 SK.. 시장 신뢰 관건은 '이사회 중심 경영'

이윤정 기자 2021. 9. 14. 16:0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SK그룹 계열사, 최근 5년간 분할·합병 총 18건
"사업 분할 성공하려면 CEO 권한 강화해야" 지적

SK(034730)그룹 계열사들이 사업 분할에 적극 나서고 있다. 각 사업에 맞는 지배구조를 확립하고 이를 통해 전문성을 강화한다는 전략이다. 급변하는 경영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SK그룹의 ‘따로 또 같이’ 경영 철학을 각 계열사의 중장기 비전인 ‘파이낸셜 스토리’에 접목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이같은 사업분할 전략이 빛을 발하기 위해선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오너 일가의 입김을 배제하고 각 사업 부문의 최고경영자(CEO) 권한이 대폭 강화돼야 한다는 과제가 있다. SK그룹이 이사회 중심으로 지배구조 전환에 나선 것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14일 재계에 따르면 SK그룹 상장사 20곳이 지난 2017년부터 현재까지 약 5년간 실시한 합병·분할은 총 18건으로 집계됐다. SK바이오사이언스(302440)·SK아이이테크놀로지(361610)(SKIET) 신설 등 굵직한 개편 작업이 이 기간에 이뤄졌다. 여기에 현재 추진 중인 건과 비상장사까지 합하면 합병·분할 사례는 더욱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SK에코플랜트(옛 SK건설)는 친환경 사업 투자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플랜트 건설 부문(에코엔지니어링 사업부)을 분할해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SK그룹 제공

SK그룹 계열사들은 미래 생존 전략으로 사업 분할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기업 규모가 클수록 의사결정 과정이 복잡하고, 그만큼 대응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다. ‘문어발식 경영’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만큼, 각 사업의 전문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것이다. 지난 13일 전기·스팀 등 유틸리티 공급 사업 부문을 물적분할한다고 밝힌 SK케미칼(285130)은 그 이유로 “각 사업부문별 특성에 맞는 지배구조 체제를 확립해 시장 환경 및 제도 변화에 신속히 대응하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오는 16일 배터리·석유개발(E&P) 사업 분할 승인을 앞두고 있는 SK이노베이션(096770)도 “각 사업의 특성에 맞는 경영 시스템을 구축하고 전문성을 높여 경쟁력을 선제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대기업 중에서 SK가 사업 분할에 적극적인 이유로는 SK그룹 특유의 경영 철학인 ‘따로 또 같이’에서 찾아볼 수 있다. SK그룹은 지난 2004년 소버린의 경영권 공격 사태를 계기로 총수 중심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며 ‘따로 또 같이’ 경영 철학을 정립했다. 이후 2008년 2.0, 2012년 3.0 등으로 진화를 거듭했다. 각 사의 전문성을 살린 ‘따로’와 시너지 창출을 위한 ‘또 같이’의 기반을 지속적으로 다져나가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올해 경영 키워드인 ‘파이낸셜 스토리’가 결합되면서 더욱 추진력을 얻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파이낸셜 스토리는 매출·영업이익 등 재무적 목표와 함께 중장기 비전 및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제시해 고객과 투자자 등으로부터 신뢰와 공감을 이끌어내겠다는 SK그룹 만의 경영 전략이다. 재계 관계자는 “특정 사업 부문에 투자하고 싶은 투자자 입장에선 기업이 보유한 사업이 많을 경우 투자를 꺼릴 수 있고, 결국 기업 규모가 클수록 자본 조달 비용이 높아질 수 있다”며 “자본 조달 측면에서 봤을 때 사업 분할은 확실히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SK그룹 계열사의 최근 5년간 분할·합병 사례

다만 최근 SK의 사업 분할이 기업공개(IPO)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투자자들의 우려 요인으로 꼽힌다. 대규모 자금 조달에 따른 모회사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선 IPO가 필수적이지만, 지분 역시 희석돼 모회사 주주들이 자회사 성장에 따른 이익을 100% 누릴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배터리 사업을 분리해 독립 회사로 출범시키는 SK이노베이션(096770)이 최근 주주들의 원성에 시달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은 앞으로 배터리 사업에만 5년간 17조원에 달하는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할 예정이고, IPO는 필수적이다. 시장에서는 배터리 사업이 흑자전환하는 내년 중 IPO가 진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 대기업 특성상 총수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점도 사업분할 전략의 성공을 저해할 수 있다. 국내 기업 지배구조 전문가는 “사업분할 본연의 목적을 고려했을 때 CEO에게 책임감을 부여하고 사업에 올인하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한국 기업 집단에서는 총수의 영향력을 배제할 수 없다”며 “이 때문에 분할·합병 과정이 총수 지배력을 확대하기 위한 편법이 아니냐는 오해가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같은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선 전략적 판단 하에서 이루어진 결정이라는 점을 총수가 직접 시장에 끊임없이 증명해야한다”라고 말했다.

현재 SK그룹은 각 계열사 이사회에 대표이사의 평가와 중장기 성장전략 검토 등 핵심 경영활동을 위임하는 지배구조 혁신을 추진 중이다. 지주사인 SK㈜ 사외이사진이 구체적인 혁신안을 만들고 있는 가운데, 각 계열사는 이사회 규정을 개정하며 지배구조 개선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