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일 시험=금요일 시험?..읽고 쓸 줄 알아도 이해 못 하는 한국인
"선생님, 불가사의가 아니라 불가사리 아닌가요?"
경기도 안양에서 영어교사로 근무하는 이모씨(31)는 최근 수업 시간에 영어 단어를 가르치다 한 학생의 질문을 받고 깜짝 놀랐다. 이씨가 영단어 'Mystery'의 뜻이 "신비로움·불가사의"라고 말하자 학생이 '불가사의가 뭐냐'고 되물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물어본 학생이 '불가사리를 잘못 말한 게 아니냐'고 하더라"며 "영어 교사인데 국어 교육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 것은 처음"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각종 통계에 따르면 한국 학생들의 문해력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지난 5월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 따르면 한국의 만 15세 학생(중 3~고 1)들은 주어진 문장에서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는 능력, 사기성 전자우편(피싱 메일)을 식별하는 역량 평가에서 OECD 국가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보이스피싱' 메일을 받더라도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3년마다 치르는 이 시험에서 우리 국민들의 문해력은 점차 하락세다. 한국 학생들의 문해력은 2006년 556점으로 최상위를 기록했으나 2018년에는 514점으로 낮아졌다. 성인들도 문해력이 낮다. 교육부와 국가평생진흥교육원이 지난 7일 발표한 성인문해능력조사에 따르면 일상생활에 필요한 문해력을 갖추지 못한 '비문해인구'는 약 200만명에 달한다.
가장 민감한 것은 교육계다. 학원·학교에서 기초적인 어휘능력을 갖추지 못해 다른 과목 지도에도 지장을 주는 사례가 늘기 때문이다. 서울 송파구에서 수학학원을 운영하는 박모씨(57)는 "국어뿐 아니라 수학 학습에도 언어 능력은 가장 기초적인 부분"이라며 "문제풀이를 할 때 조금이라도 어려운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학생들이 너무 많다"고 하소연했다.
대학생들도 이같은 문제로 갈등을 빚는 사례가 나온다. 한 국립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국어국문학을 좋아해서 입학한 학생들마저도 정말 간단한 어휘를 몰라 강의 시간에 충격을 받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라며 "쪽지시험일을 '금일'로 공지했는데 왜 '금요일'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더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전문가들은 낮은 독서량과 영상 위주의 자극적인 환경, 외국어 중심 교육 등이 문해력을 낮추는 원인이 된다고 지적한다. 기초가 되는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지다 보니 학습능력의 전반적인 하락을 불러온다는 분석이다. 한자어 중심의 한국어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영상 위주의 교육을 하다 보니 모든 단어를 암기해야 하는 부담도 늘었다.
공교육이 문해력 교육 비중을 줄이면서 중산층 이상과 그렇지 않은 가정의 학력 격차도 커졌다. 교육부가 지난 6월 공개한 '2020년 학업성취도평가'에 따르면 조사대상인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2학년 모두 전과목에서 기초학력 미달을 의미하는 '1수준' 비율이 전년대비 증가했다. 특히 수능을 앞둔 고 3도 국어 미달비율이 4.0%에서 6.8%로 늘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교육당국이 시험을 없애고 기초 진단도 하지 않게 되면서 역량 중심의 교육이 강화됐다"며 "역량 중심의 교육을 수용하려면 학생들이 기초 문해력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데 받아쓰기도 하지 않는 교육 방식으로는 무리"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핀란드처럼 전문 교사를 도입하고 유치원 단계에서의 교육을 확대하는 등 적극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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