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시간 마이크 앞에 선 바이든..9·11 테러 당시 행적 화제[정미경 기자의 청와대와 백악관 사이]

정미경 기자 입력 2021. 9. 1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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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세상에, 세상에.”(미국 퍼스트레이디 질 여사)

“질, 왜? 무슨 일인데?”(조 바이든 대통령)

“지금 비행기 또 한 대가…, 다른 쪽 건물을….”(질 여사)

미국의 9·11테러 추모 분위기 속에서 2001년 9월 11일 워싱턴 국회의사당을 배경으로 국민적 단결을 호소했던 조 바이든 대통령의 방송 인터뷰가 화제가 되고 있다. ABC방송 화면 캡처

30~40대 이상의 성인이라면 2001년 9·11 테러 순간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비교적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바다 건너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었지만 그만큼 충격파는 컸습니다.

요즘 미국에서 9·11 테러 당시 바이든 대통령의 행적이 관심입니다. 비상 상황에서 국가 리더급 인사들의 행동은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자서전 ‘지켜야 할 약속: 삶과 정치에 대해(Promise to Keep: On Life and Politics)’에 당시 상황이 나와 있습니다.

20년 전 바이든 대통령은 환갑을 바라보는 59세의 실세 상원의원으로 상원 외교위원회를 이끌고 있었습니다. 9월 11일 화요일 아침 델라웨어 자택에서 워싱턴으로 기차로 출근하던 중이었습니다. 부인과의 통화에서 뉴욕 트레이드센터 쌍둥이빌딩 폭파 소식을 듣게 됩니다. 워싱턴 중앙역인 유니언 역에 도착하자 흰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습니다. 워싱턴 도심에서 멀지 않은 펜타곤(국방부 청사)이 공격을 받은 겁니다.

9·11테러 당시 워싱턴 국회의사당 건물에서 급히 피신하는 사람들. 데일리메일

테러 목표 건물이 많은 워싱턴에서는 모두 탈출하려고 아우성이었습니다. 정치인들을 안전한 곳으로 실어 나르기 위해 하늘에서 헬기들이 쉴 새 없이 오갔습니다. 바이든 의원은 인파를 거슬러 올라가 국회의사당 쪽으로 갔습니다. 딸 애쉴리가 “제발 워싱턴을 떠나라”고 전화로 호소했지만 바이든 당시 의원은 “이런 때일수록 오히려 목표물에 있는 것이 더 안전하다”며 안심시켰습니다.

당시 의회는 회기 중이었습니다. 상원 건물로 들어가려고 하자 경찰로부터 제지를 당했습니다. 바이든 의원의 입에서 “빌어먹을!”이라는 욕이 터져 나왔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존 워너 공화당 상원의원(현재 작고)이 보였습니다. 당적도 다른 두 의원은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하면 의회를 속개할 수 있을지, 누가 속개 자격을 가지고 있는지를 의논했습니다.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의회 개원 여부를 따진다는 것은 무모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의사당이 다음 목표물이라는 얘기도 떠돌았습니다. 그래도 바이든 의원은 굳게 믿었다고 합니다. “이런 때일수록 나라가 평상시처럼 돌아가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9·11테러 당시 ABC방송의 린다 더글러스 기자(왼쪽)와 인터뷰하는 바이든 의원(오른쪽). ABC방송 화면 캡처

당시 의사당 앞에서 대피 상황을 취재 중이던 ABC방송 여기자의 눈에 바이든 의원이 들어왔습니다. 바이든 의원은 즉석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당시 현장 클립을 보면 의사당 건물을 배경으로 테러의 충격으로 떨리는 목소리의 바이든 의원이 “차분하고 침착하고 냉정해지자(Cool and Calm and Collected)”고 호소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바이든 의원은 “이 나라는 너무 거대하고 강하고 결속됐으며, 공통의 가치를 추구하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분열시킬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를 인터뷰했던 ABC 여기자는 나중에 CNN과의 인터뷰에서 “리더십 공백 상황에서 정치인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는 순간이었다”고 회상했습니다.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에어포스 원을 타고 미 중부에 있는 모종의 대피 장소로 이동 중이었습니다. 딕 체니 부통령은 백악관 지하 벙커로 피신해 있었습니다. 바이든 의원은 행방이 묘연한 국가 지도자를 비난하기보다 힘을 실어줬습니다. “우리는 대통령이 앞으로 사태 수습을 위해 어떤 행동을 하던 온전히 지지할 것이다. 민주당이고 공화당이고 있을 수 없다. 단결된 국민만이 있을 뿐이다”라고 말이죠.

2000년대 초 상원 외교위원장을 지내며 조지 W 부시 대통령(왼쪽)과 평소 접할 기회가 많았던 바이든 의원(오른쪽). 2001년 5월 백악관에서 부시 대통령과 회의하는 모습이다. NBC뉴스

바이든 의원이 인터뷰 후 델라웨어 집으로 향하고 있을 때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고맙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자서전에 따르면 바이든 의원은 그제야 부시 대통령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놨습니다. “대통령님, 빨리 백악관으로 돌아오십시오”라고 말이죠. “국민은 지하 벙커에 숨어있는 리더를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통화 후 부시 대통령은 에어포스 원의 방향을 돌려 워싱턴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부시 대통령의 마음을 바꾼 것이 전적으로 바이든 의원의 충고 덕분은 아니었겠지만, 중요한 역할을 한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20년 전 각본도 없이 방송마이크 앞에 섰던 바이든 의원의 떨리는 목소리 한마디 한마디는 최근 9·11 테러 추모식에서 세심하게 포장된 바이든 대통령의 연설보다 훨씬 더 큰 설득력을 가집니다. 연설력이 뛰어나지 못한 바이든 대통령의 최고 연설은 “9·11테러 당시 즉석 인터뷰였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자서전에서 밝힌 에피소드이니 어느 정도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는 있었겠지만 의미 있는 9·11 테러 당시 행적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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