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사에 "안드로이드만 사용해" 강제한 구글 과징금 2074억원
[경향신문]
삼성전자를 비롯한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안드로이드가 이외의 경쟁 운영체제(OS)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으면서 플랫폼 시장을 독점해온 글로벌 기업 구글에 2000억원대 과징금이 부과됐다. 빅테크 기업의 플랫폼 독점에 대해 한 획을 긋는 강력하고 폭넓은 이번 규제를 계기로 정보기술(IT) 생태계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공정위는 14일 구글LLC, 구글 아시아퍼시픽, 구글 코리아 등 3사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행위와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2074억원(잠정)을 부과한다고 14일 발표했다. 2016년 현장조사에 착수한 지 5년 만이다.
■개방 모델로 성장, 경쟁자에는 ‘철퇴’
구글은 안드로이드 OS로 시장점유율을 72%까지 확대한 이후, 오픈소스에 바탕한 ‘포크 OS’가 등장하며 경쟁구도를 이루자 제조사들이 이 라이벌 OS를 탑재하는 것을 막았다고 공정위는 설명했다. ‘파편화 금지 계약(AFA)’ 체결을 기기 제조사에 요구한 것이다. AFA는 제조사가 출시하는 모든 기기는 포크 OS를 탑재할 수 없고, 직접 포크 OS를 개발할 수도 없다는 내용이 담겼다. 기기 제조사 입장에서는 플레이스토어를 스마트폰에 탑재하기 위해 AFA를 체결할 수밖에 없었다고 공정위는 설명했다.
이 계약은 스마트폰 뿐만 아니라 스마트 시계·TV 등 모든 스마트 기기에 적용됐다.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출시하는 기기 제조사가 포크OS를 탑재한 기기를 단 1대라도 출시하면 AFA를 위반한 것으로 간주됐다. 이 경우 제조사는 앱을 다운로드받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플레이스토어에 접근이 차단됐다. 6개월 전에 미리 최신 오픈소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사전 접근권’도 박탈됐다. 구글은 제조사에 기기 출시 전 호환성 테스트를 하고, 결과를 보고해 승인받도록 하는 등 AFA 위반 여부를 철저히 통제했다. 송상민 공정위 시장감시국장은 “구글이 사설 규제 당국처럼 행동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 구글의 모바일 OS시장 점유율은 2019년 97.7%까지 치솟으며 독점사업자 지위를 굳혔다. 반면 거래선을 찾지 못한 아마존, 알리바바 등의 모바일 OS 사업은 모두 실패했다.
■갤럭시 기어 막은 구글…미래시장까지 원천봉쇄
제조사들은 포크OS를 개발하거나 이를 다양한 기기에 접목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한당했다. 삼성전자는 구글이 스마트 워치용 OS를 개발하기 이전인 2013년경 스마트 시계용 포크 OS를 개발해 ‘갤럭시 기어1’를 출시했지만 구글은 AFA 위반이라고 위협했다. 결국 삼성전자는 개발한 스마트 시계용 포크 OS를 포기하고, 앱 생태계가 전혀 조성되지 않았던 타이젠 OS로 변경해야 했다. 삼성전자는 안드로이드가 아직 진출하지 않은 사물인터넷(IoT), 로봇 등의 영역에서라도 포크 OS를 허용해달라고 요청했으나 구글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점유율을 무기 삼은 구글의 전 세계 주요 기기 제조사와의 AFA 체결 비율은 2019년 87.1%에 달했다.
조성욱 공정위원장은 “개발 단계부터 경쟁 상품의 개발 자체를 철저히 통제하고, 심지어 자신이 진출하지 않는 분야까지도 포크OS가 선점하지 못하도록 원천 차단했다”며 “이는 전례 없는 혁신저해 행위로 평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 위원장은 “앞으로도 시장을 선점한 플랫폼사업자가 독점적 지위를 유지·강화하기 위한 반경쟁적 행위에 대해서는 국내·외 기업 간 차별 없이 엄정하게 법집행을 하겠다”고 말했다.
■공정위 다음 규제 플랫폼은
5년만에 나온 이번 제재에 대해 공정위는 국내 시장 뿐만 아니라 세계 시장 전체에 미치는 경쟁 제한 효과를 분석해야 하는 데다가 법원 소송 결과까지 고려할 때 장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9년 11월 정보통신기술(ICT) 전담팀을 만든 공정위는 최근 거대 플랫폼의 불공정행위 제재 결정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최종 과징금은 2016년 퀄컴(1조311억원)에 이어 글로벌 사업자로는 두 번째로 큰 금액이 될 전망이다. 법 위반 행위가 있던 2011년 1월부터 자료가 확보된 올해 4월까지의 앱 마켓 매출액을 기준으로 잠정 산출된 만큼 최종 금액은 더 높아질 수 있어서다. 앞서 2018년 유럽연합(EU) 경쟁당국도 구글의 안드로이드 OS 독점적 지위 남용에 대해 43억유로(5조6000억원 상당)의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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