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6·25전쟁 환상 심는 中의 '映像工程(영상공정)'

기자 입력 2021. 9. 14. 11:40 수정 2021. 9. 14.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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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6·25전쟁 도발 주체 흐리기 작업

中공산당의 참전 결정도 정당화

국군 없고 미군만 있은 듯 오도

한국 통일 가로막은 파병 미화

당·국가 위한 전쟁에 환상 심어

동북공정 연상시키는 영상공정

1953년 금성전투를 다룬 중국공산당 후원 선전 영화 ‘금강천(金剛川)’의 국내 상영이 일단 취소됐다. 수입 상영이 허가되자 당시 참전 유공자들 중 한 명은 “한 뼘 땅도 적에게 내주지 않겠다며… 녹아 없어진 전우도 있는데 나라가 이래선 안 된다”고 항의했다. 일단 급한 불은 껐지만, 불씨는 재연(再燃)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공산당의 6·25전쟁 관련 영상물로는 1956년 작 ‘상감령(上甘嶺)’ 등이 꾸준히 제작돼 왔지만 주로 국내용이었다. 2017년 3월부터 시행된 ‘중화인민공화국 전영산업촉진법’ 이후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고 있고, 제작진과 유통망을 전 세계 영화산업과 연결시키고 있다.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국영 CCTV는 ‘압록강을 건너(跨過鴨綠江)’라는 40부작 드라마를 방영했다. 약 2300억 원을 썼다는 영화 ‘장진호(長津湖)’가 곧 개봉을 앞두고 있기도 하다. 이런 블록버스터급 영상물들은 이성보다는 감성을 통해 다음과 같은 환상들을 전파하고자 한다.

첫째, 개전 주체에 대한 환상. 1992년 대한민국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절부터의 우방 ‘중화민국’과 단교하고,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한 대가로 전쟁을 남쪽에서 일으켰다는 허위선전은 사라졌다. 그러나 여전히 1950년 6월 25일 “조선전쟁이 폭발”했다는 식의 애매한 표현으로 개전 주체에 대한 인식을 모호하게 만든다.

둘째, 파병 이유에 대한 환상. 미군이 38선 이북으로 북진했고, 압록강 월경 폭격을 했기 때문에 1950년 10월 중국공산당이 불가피하게 파병을 결정했다는 식으로 묘사한다. 사실은 마오쩌둥(毛澤東)이 6·25전쟁 발발 이전부터 적극적으로 김일성의 개전 의지를 후원했었다. 그리고 조선인민군이 대한민국 국군을 낙동강 이남으로 밀어붙일 때 이미 병력을 만주로 이동하며 파병을 준비하고 있었다.

셋째, 오직 미군과의 전쟁이었다는 환상. ‘금강천’ 수입 논란 중에 국군은 나오지 않고 미군만 나와서 문제없다는 주장이 있었다고 한다. 사실은 국군이 없는 것이 더 문제였다. 대한민국의 존재를 무시하고, 미국만을 상대로 한 전쟁처럼 오도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앞으로 개봉될 영화 ‘장진호’에서 더 노골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넷째, ‘정의의 전쟁’이었다는 환상. 공산 진영이 서울을 다시 점령한 직후인 1951년 2월 1일 유엔은 베이징 정부를 ‘침략자(the aggressor)’로 규정했었다. 이로 인해 중화인민공화국의 국제사회 진출은 오랫동안 지체됐다. 중화인민공화국 내 일각에서도 한반도 파병에 대한 반성이 나왔다. 한·중 수교 이후에는 당시 유엔군 주도의 통일을 가로막은 것에 대한 대한민국의 반감을 고려한 외교적 제스처나마 있어 왔다.

그런데 시진핑(習近平) 집권 이후 노골적으로 파병을 미화하고 있다. 그의 아버지 시중쉰(習仲勳)이 6·25전쟁 당시 파병 군대를 이끌었던 펑더화이(彭德懷)와 정치적 성쇠를 같이했던 일과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지난해 10월 파병기념일에는 “정의의 전쟁”이라고까지 칭송하자 캐나다에서 “나치의 폴란드 침공을 옹호하는 격”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정작 최대 피해국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의 대응은 미온적이었고, ‘금강천’ 수입 상영 논란에까지 이른 것이다.

다섯째, 당과 국가를 위한 전쟁이 아름답다는 환상. 한국 영화계에서는 과거 정치인들이 반공주의를 장기집권에 악용했던 것에 대한 반감으로 반(反)반공주의가 유행하고, 흥행 공식처럼 됐다. 예술 정신을 가로막는 도그마(독단적 신조)에 반대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 그렇다면 더욱 중국공산당의 도그마에 따른 전쟁 미화에 묵종하거나 동조해서는 안 될 것이다.

중국공산당의 6·25전쟁 영상공정(映像工程)은 2002년에 시작된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연상시킨다. 당시 한국 시민사회의 여론은 2003년 출범했던 노무현 정부의 외교정책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2004년에 고구려연구재단이 만들어졌고, 2006년 동북아역사재단으로 개편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총성 없이 문화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공산당의 6·25전쟁 영상공정에 대해서도 여·야와 관·민을 초월한 지속적인 경각심과 대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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