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을 희망으로 바꾼 '복음'.. 한국 교회 부흥의 큰 별

장재선 기자 2021. 9. 14.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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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타계한 조용기 목사는 한국 교회 부흥과 세계 교회 성장을 주도하며 개신교 선교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1958년 고 최자실(1915∼1989) 목사와 함께 서울 불광동에서 천막 교회를 시작한 조 목사는 당시 6·25전쟁 이후 절망에 시달리던 사람들에게 '희망의 신학'을 외치며 복음을 전파했다.

그는 세계 개신교계에서 주변에 머물던 한국 교회를 중앙에서 주목받게 한 목회자로 해외 언론에 자주 조명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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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는 모든 어려움을 신앙으로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의 신학’을 설파하며 한국교회 부흥과 세계교회 성장을 이끌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제공

■ 여의도순복음교회 설립 조용기 원로목사 소천

1958년 천막교회로 첫걸음

신도 70만 세계최대 교회로

아프리카·남미서 성령운동

71개국 돌며 370회 부흥회

인권·환경·아동복지도 앞장

14일 타계한 조용기 목사는 한국 교회 부흥과 세계 교회 성장을 주도하며 개신교 선교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지난해 7월 뇌출혈로 쓰러진 이후 지금까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오다가 이날 오전 7시 소천했다.

1958년 고 최자실(1915∼1989) 목사와 함께 서울 불광동에서 천막 교회를 시작한 조 목사는 당시 6·25전쟁 이후 절망에 시달리던 사람들에게 ‘희망의 신학’을 외치며 복음을 전파했다. 그는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으로 교회를 폭발적으로 성장시켰다. 1993년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신도 수 70만 명을 넘어서며 ‘세계 최대 교회’로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였다. 그는 세계 개신교계에서 주변에 머물던 한국 교회를 중앙에서 주목받게 한 목회자로 해외 언론에 자주 조명되곤 했다. 빌리 그레이엄(1918∼2018) 목사와 함께 세계적인 복음 전도자로 손꼽혔다.

조 목사는 1936년 경남 울산 울주군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모두 기독교인이었으나, 시대 배경 때문에 한학이 익숙한 가정이었다. 부친이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 입후보했다가 낙선한 뒤로 가난한 사춘기를 보냈고 곧 6·25전쟁이 터지면서 부산에서 피란살이를 했다.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부산공고에 입학했으며, 학교에 주둔해 있던 미군부대에서 학교장과 미군 부대장 사이의 통역을 하며 영어 실력을 키웠다.

그가 신학교 입학을 결심한 것은, 부산에서 미국의 오순절교단 ‘하나님의성회’ 소속인 켄 타이스 선교사를 만나 집회 통역을 하면서 회심을 하고 폐결핵이 치유되는 신유(神癒)의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1956년 20세 때 하나님의성회 순복음신학교에 입학해 나중에 목회 동역자이자 장모가 되는 최자실 목사와 만났다. 두 사람은 천막 교회를 함께 개척했고, 이것이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시작이었다. 두 사람이 이끈 교회는 성장을 거듭하며 그 이름이 국내를 넘어 세계에 알려졌고, 1973년 9월 제10차 세계 오순절 대회를 한국에서 주최했다.

여의도로 교회를 옮긴 뒤 성장세는 더욱 가팔라져서 신도 수는 1979년에 10만 명, 1981년에 20만 명을 넘어섰다. 조 목사는 1992년부터 2008년까지 세계하나님의성회 총재를 지내면서 제3세계 선교에 박차를 가했다. 조 목사는 1975년부터 2019년까지 71개국에서 370여 차례 부흥회를 이끌었다. 비행 여정을 보면 지구를 120바퀴 이동한 셈이다.

그는 국내외에서 인권 환경 보건, 아동복지 증진에도 앞장섰다. 1999년에는 비정부기구(NGO)인 사단법인 선한사람들(현재 굿피플)을 설립했다. 2008년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로 추대된 뒤 지금까지 영산조용기자선재단 이사장을 지냈다.

빈소는 여의도순복음교회 베다니홀에 마련됐다. 조문은 15일 오전 7시부터 가능하다. 장례예배는 18일 한국교회장으로 진행하며, 김장환(극동방송 이사장) 목사가 설교한다. 장례위원장은 한국교회총연합 공동 대표회장인 소강석, 이철, 장종현 목사가 맡았다. 하관예배는 이날 오전 10시 장지인 파주시 오산리최자실국제금식기도원 묘원에서 열린다. 유족으로는 장남 조희준 씨와 차남 조민제 국민일보 회장, 삼남 조승제 한세대 이사 등이 있다. 부인 김성혜 전 한세대 총장은 지난 2월 소천했다.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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