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해배출 0' 수소, 주요 에너지원으로.. 30년뒤 시장규모 '2938조원'
■ 10문10답 - ‘한국판 수소동맹’ 계기로 본 수소경제
폭탄처럼 위험? 누출땐 확산 빨라 발화안돼… 휘발유·LPG보다 안전
자동차·열차·비행기 등 일상 속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
생산뒤 액화상태 저장·운송 등 가성비 높이는 게 관건
韓, 활용분야 집중 넘어 ‘수소경제 가치사슬’ 창출해야
‘수소패권’ 확보위해 전세계 900여개 프로젝트 진행중
현대자동차·SK·포스코 등 15개 주요 그룹 및 기업 CEO가 힘을 합치는 ‘한국판 수소 동맹 협의체’인 ‘코리아 에이치투 비즈니스 서밋(Korea H2 Business Summit)’이 지난 8일 공식 출범하면서 국내 수소경제로의 전환에도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이번 협의체 출범을 주도한 현대차그룹은 2040년을 수소경제 대중화 시대의 원년으로 삼고 있다. 이미 해외에서는 국가별로 수소 전략을 속속 마련하고, 앞으로 도래할 수소경제 시대 주도권을 잡기 위한 ‘물밑 경쟁’이 한창이다.
1. 수소경제는 무엇
수소경제란 기후변화와 화석연료 고갈에 따라 사용 과정에서 공해를 배출하지 않는 수소가 미래 대체에너지원으로 자리 잡는 경제를 의미한다. 수소경제를 위해서는 수소를 생산하는 것을 포함해 생산된 수소를 파이프라인이나 탱크 등을 통해 저장 및 운송하는 산업, 수소연료전지, 수소차, 수소선박, 수소드론 등의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거나 발전 등에 사용하는 산업 등이 종합적으로 발전해야 한다.
수소경제는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제러미 리프킨 경제동향연구재단 이사장이 2002년 ‘수소경제’라는 책을 내면서 용어가 일반화됐다. 리프킨 이사장은 이 책에서 2020년이면 전 세계적으로 석유 생산이 하향곡선을 그리게 되고, 2028년이면 화석연료 시대가 끝나며 수소에너지 시대가 열린다고 전망했다. 현시점에서 보면 화석연료 시대 조기 종언 전망은 빗나갔지만 여전히 수소가 미래 에너지원이 될 것이란 전망은 유효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2015년 수소를 화석에너지를 대체할 미래 에너지원으로 지목한 바 있다.
2. 일상 어떻게 바뀌나
수소경제가 현실화되면 수소는 우리 일상 곳곳에서 긴밀히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현재도 찾아볼 수 있는 수소차를 포함해 수소를 연료로 하는 열차 및 선박, 비행기, 드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전망이다. 정부는 수소차 보급 확산의 핵심 인프라이자 현재 110여 개에 불과한 수소충전소를 2040년까지 1200개 이상 구축한다는 계획을 세워 수소가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또 수소는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고 미세먼지 정화 능력이 우수한 친환경 에너지원이기 때문에 화석연료에 의한 대기오염 정도도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일상에서 수소를 사용하면 수소폭탄을 옆에 두고 생활하는 것 아니냐는 일부 우려가 있으나 수소폭탄의 수소와 수소경제에 사용되는 수소는 에너지로 전환될 때 적용되는 화학작용 방식이 다르다. 또 수소는 공기 중에 누출됐을 때 확산 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에 가스구름이 형성되지 않아 발화하기 어렵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수소의 위험도는 휘발유나 LPG보다 낮아 안전하므로 일상에서도 에너지원으로써의 수소를 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3. 수소산업 전망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 맥킨지에 따르면 2050년 수소에너지가 전체 에너지 수요량의 약 18%를 담당하면서 글로벌 수소 시장이 2조5000억 달러(약 2938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또 글로벌 수소산업 투자 규모는 2050년까지 5000억 달러로 늘어나고, 수소와 관련한 산업 분야에서 3000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수소가 전력 생산과 저장, 운송 등 전후방 산업에서 다양하게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수소경제의 주요 축인 수소 모빌리티 분야에서는 2030년까지 한국과 독일·일본·미국 캘리포니아주 등에서 차량 12대 중 1대가 수소차량으로 운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맥킨지는 세계적으로 2030년엔 1000만∼1500만 대의 자동차와 50만 대의 트럭이 수소에너지를 이용하며, 2050년에는 수소연료전지에 기반한 승용차는 최대 4억 대, 트럭은 500만 대, 버스는 1500만 대가 운행할 것으로 봤다. 맥킨지는 또 2015년 8EJ(엑사줄·1EJ은 석유 1억7000만 배럴의 에너지량), 지난해 10EJ이었던 글로벌 수소 소비량은 2050년 78EJ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했다.
4. 수소 기술 경쟁력
수소 기술은 수소 생산과 저장, 운송 등 인프라 분야와 이를 활용한 분야로 나뉜다. 인프라와 관련해선 앞으로 수소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포집·활용(CCU)하고, 액화 상태로 저장하거나 운송하는 기술의 가성비를 극대화해야 하는 것이 과제다. 활용과 관련해서는 수소 자동차나 기차, 비행기 등의 심장 역할을 하는 연료전지 시스템의 3세대 기술 상용화 성공 여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은 오는 2028년 트럭·버스 등 상용차 차종 전체를 수소차로 바꾸기로 하고, 3세대 수소연료전지 시스템을 2023년 상용화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기존 연료전지 시스템은 수명과 경제성, 부피 등 3가지 측면에서 한계를 안고 있다. 총 주행거리 수명은 약 20만 ㎞를 한참 밑돈다. 제조원가는 전기차에 비해 50% 가까이 비싼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소탱크를 탑재해야 해 공간 활용 측면에서 전기차에 비해 불리하다. 하지만 3세대를 상용화하면 이 같은 문제를 한꺼번에 해소할 수 있다. 특히 주행거리는 ‘50만㎞ 이상’으로 늘고, 제조원가는 2030년엔 전기차 수준으로 떨어진다. 범용성도 확대돼 여러 개를 연결하면 승용차와 상용차뿐 아니라 트램, 기차, 트레일러, 배 등 다양한 교통수단에 적용할 수 있게 된다.
5. 국내 기업 투자 전략
현대자동차·SK·포스코·한화·효성 등 5개 그룹은 오는 2030년까지 수소 생산, 유통·저장, 활용 등 수소경제 전 분야에 43조40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집행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산업계의 투자 규모는 갈수록 늘어날 전망이다. 이번에 출범한 수소 협의체는 이 같은 투자를 가시화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현대차그룹은 2030년까지 수소전기차 생산 규모를 50만 대로 늘리고 트레일러와 철도·드론 등 모든 운송수단에 수소연료전지를 적용할 계획이다. SK그룹은 수소 생산과 유통 밸류체인을 통합해 2025년 세계 1위의 수소사업자로 도약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효성과 롯데, 한화그룹은 수소 생산에 집중하기로 했고 현대중공업그룹은 수소 운송과 수소선박 개발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포스코는 2050년까지 그린수소(재생에너지에서 얻은 전기로 물을 전기분해해 만드는 수소) 500만t 생산체제를 구축하는 등 국내 최대 수소 수요처이자 공급자로 도약할 방침이다.
6. ‘한국판 수소 동맹’ 왜?
최근 글로벌 주요국들은 자국의 탄소중립 달성과 미래 먹거리 발굴, 글로벌 수소 패권 확보를 위해 국가 수소 전략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900여 개의 대형 프로젝트도 추진되고 있다. 그린수소 생산 규모가 하루가 다르게 대형화되는 기가팩토리 건설 붐도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수소산업 대부분이 활용 분야에 집중돼 생산·저장·운송 등 영역은 뒤처져 산업 생태계의 균형 있는 발전이 무엇보다 요구되고 있다. 이번 협의체 탄생의 산파 역할을 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이에 대해 “우리나라는 유럽, 일본 등에 비해 수소산업 생태계의 균형적인 발전이 늦었지만,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만큼 못할 것도 없겠다는 자신감이 든다”고 평가하고 있다. 협의체는 출범을 주도한 현대차·SK·포스코 3개 그룹이 공동 의장사를 맡고 있다. 회원사로 총 15개 그룹과 기업이 현재 참여 중이며 앞으로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7. 정부 대책은
정부도 차세대 먹거리의 핵으로 떠오른 수소경제 활성화를 위해 방안 마련에 나섰다. 세계 최초로 제정된 ‘수소경제 육성 및 수소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수소법)’이 지난 2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수소전문 기업 육성·특화단지 지정 등 수소경제 추진을 뒷받침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는 의미다. 2019년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통해 2040년까지 국내에 수소차 290만 대, 수소충전소 1200개 보급 계획을 발표했으며, 올 3월 열린 ‘수소경제위원회’에서는 2030년까지 수소경제와 관련한 43조 원 규모의 기업투자 계획이 공개됐다. 앞서 수소전담 기관 지정이 완료됐고 수소 전력 사용을 의무화하는 수소발전 의무화 제도(HPS) 도입도 내년으로 다가왔다. 수소경제를 뒷받침할 제도·인프라 구축이 속도를 내고 있지만 수소를 주 에너지원으로 상용화하고 글로벌 수소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생산·기술·보급·유통 등 전 주기를 아우르는 대대적인 지원이 대폭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8. 해외 기업 대응 전략은
주요 에너지 기업들은 수소경제로의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특히 세계 최대 에너지기업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은 지난해 말 세계 최대 해상 풍력업체인 덴마크의 외르스테드와 함께 독일 서부 지역에 대규모 녹색수소 생산단지 건립을 시작했다. 양사는 이를 바탕으로 2024년부터 연간 9000t의 수소를 생산할 예정이다. 이는 자동차 4만5000대분의 배출가스를 줄이는 효과와 같다. BP 외에도 스페인 최대 석유기업 렙솔SA와 네덜란드의 로열더치셸 등도 친환경에너지 사업 다각화와 녹색수소 전환에 나서고 있다. 완성차 분야에서는 수소차 경쟁이 뜨겁다. 특히 최근에는 현대차와 토요타로 양분된 수소차 시장에 메르세데스-벤츠의 모기업인 다임러 그룹 등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이 참전하기 시작한 모양새다. BMW도 독일 뮌헨에서 열린 국제모터쇼 ‘IAA 모빌리티 2021’에서 첫 수소전기차 모델인 ‘iX5 하이드로젠’을 공개하며 경쟁에 가세했다.
9. 세계 주요국 대응은
주요국들은 수소경제 활성화를 위한 장기 계획을 마련하고 범정부적 지원에 나서고 있다. 최근 수소경제 전환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는 독일이다. 독일은 지난 5월 수소경제 전체 가치사슬을 대표하는 총 62개 프로젝트를 선정한 뒤 이를 위해 80억 유로(약 11조 원)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연방 경제부가 44억 유로를 부담하고 나머지를 연방 교통부(14억 유로), 개별 연방정부(22억 유로) 등이 지원하는 방식이다. 프랑스 역시 2018년 6월 약 1억 유로를 투자하는 ‘수소연료 발전 계획’을 발표한 뒤 2019년에는 의회 에너지법 발효, 2020년 9월에는 국가 청정수소 개발 전략 등을 연이어 내놨다. 최근에는 환경부·경제부·산업부가 참여하는 수소위원회를 만들었고 수소 철도 프로젝트에 3000억 유로 투자도 확정했다. 일본의 경우 2014년 ‘수소·연료전지 전략 로드맵’을 발표하고 수소경제 전환을 공식화했다. 일본 정부는 2030년까지 국제 수소 공급망을 구축하고 국내 재생에너지·수소 제조 기술을 확립한다는 계획을 마련했다.
10. 탄소중립 기여
수소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청정에너지로 일찌감치 탄소중립에 기여할 핵심 에너지원으로 주목받았다. 충분한 양의 수소를 값싸게 얻을 수만 있다면 발전 분야뿐 아니라 수소를 활용하는 모빌리티나 철강, 화학, 정유 등 전 산업에 걸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수소 자체가 산소나 탄소 등과 결합한 상태로 존재하는데 수소를 분리하는 방식에 따라 친환경성이 달라진다는 데 있다. 천연가스를 추출하거나 석유화학 공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정제해 얻는 그레이수소는 저렴하긴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그레이수소에서 나오는 탄소를 포집해 생산하는 블루수소는 친환경성은 높지만 비용 문제가 발생한다. 물을 전기분해해 얻는 그린수소가 가장 이상적인 종류로 꼽히지만 재생에너지로 전기분해 시 단가가 높다. 이 때문에 생산 비용이 저렴한 원전을 이용해 분해하는 그린수소 생산이 주목받고 있다.
이관범·박수진·임정환·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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