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수의 보험 인사이트]대면채널을 답습하는 금융플랫폼
지난 7일 금융감독원 보도자료는 당일 관련 기업의 주가까지 끌어내렸다.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 후속조치의 일환으로 온라인 금융플랫폼의 서비스를 광고가 아닌 중개행위로 해석하고 추후 제재를 예고하는 내용이었다. 온라인에서 진행되는 다이렉트 자동차보험 비교 견적이나 보장분석 및 상품추천 서비스 등이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플랫폼이 별도의 대리점을 자회사 등으로 두어 보험 산업에 진출하는 전략에도 상당한 차질이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과도한 규제로 금융플랫폼의 발전이 저해되고 소비자의 편익이 제한될 것을 우려한다. 하지만 금융 민원 중 보험이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는 현실에서 채널이 달라졌다고 소비자 피해가 예상되는 사각지대를 방치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결국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의 목적이 금융 소비자를 보호하는 것이라면 채널 간 특수성을 인정하면서도 법의 엄밀함을 보수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금융자본주의에서 발생한 금융 사고는 한 개인을 넘어 다수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특히 개인 침투도가 높은 금융 플랫폼의 경우 피해가 급속하게 확산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소비자 보호를 위한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며, 감독당국의 관리·감독이 지속되어야 한다. 또한 규제가 기술 중심의 금융플랫폼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의견도 과연 기술의 방향이 금융 소비자를 향했는지 자문해야 할 것이다.
보험에 국한해서 볼 때 기술을 앞세운 대다수의 플랫폼이 '소비자를 지향 한다'고는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대면채널 중심의 보험 산업이 품은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가령 의무보험인 자동차보험을 살펴보면 대면채널의 영향력이 많이 약화되었다. 대다수의 고객이 다이렉트 자동차보험으로 가입 채널을 변경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의 주된 원인은 설계사에게 있다. 배상책임이 중심인 자동차보험은 고보장 설계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하지만 보장의 가치를 전달하지 않고 약관이 다름에도 '모든 자동차보험은 동일하기에 저렴한 것이 가장 좋다'라는 상품설명 부실을 조장했다.
대면채널이 고보장 설계의 중요성과 가치를 전달하고 이해시키는데 실패했기에 자동차보험을 보험료로 이해한 고객은 구조적으로 보험료가 저렴할 수밖에 없는 다이렉트 자동차보험으로 넘어갔다. 이와 같은 대이동의 수혜를 받은 다이렉트 채널은 서로 보험료 경쟁을 했고 소비자를 위한 보장은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이런 분위기에서 금융플랫폼은 기술을 앞세워 다이렉트 자동차보험료 비교를 강조하며 판매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이들은 빠른 시간, 최저가 등의 자극적인 말만 앞세운다. 체결 후 광고수수료만을 위한 기술 적용에서 소비자가 설 자리는 없어 보인다.
이처럼 금융플랫폼은 기술을 통해 보험 소비자의 경험을 극대화할 것처럼 포장하지만 정작 보험 산업의 높은 민원율을 해결하는 것에는 무관심해 보인다. 대면채널 내에서도 모집 수수료를 위해 기존 계약을 부당하게 해지하거나 의도적인 상품설명 부실을 일으키는 일이 흔하다. 그들도 보장분석이나 모바일 청약 등 기술을 통해 활동 효율을 높이고 있지만 소비자를 수수료의 수단으로 보거나 방치하는 일이 많다. 이와 동일하게 기술로 보험 산업을 구제할 것처럼 등장한 플랫폼도 체결이나 고객 확보에만 집중한다. 기술은 더욱 정교할 수 있지만 본질은 대면채널의 나쁜 습관을 답습하는 것에 그치는 형국이다.
자동차보험이나 실손의료보험처럼 구성이 단순한 상품에서 보험료만 비교하는 예는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더 나가 장기보험에서도 이런 모습은 자주 목격된다. 보장분석이나 실손의료보험 청구 대행을 앞세워 고객 정보를 획득한 후 비대면 상담을 통해 신계약 체결에만 집중하는 모습이 자주 관찰된다. 직접 체결을 하지 않더라도 고객 정보를 확보하여 대리점 등에 납품하는 일도 흔하다. 이런 과정에서 소비자 피해는 증가한다. 또한 기술을 앞세워 고객을 끌어들인 후 자체 대리점 소속 설계사를 통해 계약 체결을 진행할 때도 '1회 대면 의무'를 지키지 않는 등 관련 법규를 무시하는 경우도 흔하다.
결국 기술을 앞세웠지만 소비자를 대하는 태도는 전통적인 대면채널의 그림자 위에 그대로 서 있다. 산적이 말을 타는 마적이 되었다고 해서 나쁜 놈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쁜 놈이 더 빨리 나쁜 짓을 해 피해자가 더 많이 늘어날 뿐이다. 지금부터라도 '기술을 통해 보험 산업을 개선하고 보험 소비자를 이롭게 하겠다"는 스스로 내세운 명분에 부합하는 행보가 필요하다. 오랜 시간 경쟁 채널이 없어 독점적 지위를 누렸던 대면채널의 잘못된 점을 기술을 통해 개선하여 그 편익을 소비자에게 돌려줄 때 금융 플랫폼의 이점이 증명될 것이다. 이를 통해 채널 특성에 맞는 제도 개선과 규제 완화를 주장해야 한다. 결국 중심은 보험 소비자에게 있음을 잊지 않는 채널이 그들의 선택을 받고 경쟁에서 이겨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김진수 인스토리얼 대표 겸 칼럼니스트>
김진수 (kjinsoo@fineve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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