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수의 농구人터뷰③] '총알탄 사나이' 신기성 "이거시 신기성의 인터뷰입니다"

점프볼 2021. 9. 1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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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총알탄 사나이’로 불렸던 신바람 포인트가드 신기성(46‧180cm)은 선수 시절, 상당 시간을 ‘과소평가’와 싸워왔다. 고려대학교 시절이 대표적이다. 당시 고대는 김병철, 양희승, 현주엽, 전희철 등 멤버 모두가 출중한 득점 능력을 자랑했던지라 딱히 그가 전면에 나설 필요가 없었다. 이에 신기성은 게임조율 등 동료들이 경기력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묵묵히 지원하는 역할에 주력했다.

 

신기성에 대한 저평가는 1998년 드래프트 7순위에서도 잘 드러난다. 아무리 돋보이지 않았다해도 대학 최강 중 한팀의 주전 포인트가드가 그 정도 순위까지 밀리는 경우는 역대 드래프트를 통틀어도 흔하지 않은 케이스다. 빅맨 포지션이 주목받았기에 그랬다는 말도 있으나 대학 시절 신기성이 개인 기록에 욕심을 내며 스스로 돋보이고자 했다면 결과는 달라질 공산도 컸다.

 

프로에 와서 신기성은 자신의 진가를 제대로 보여준다. 어지간히 빠른 가드들조차 혀를 내두를 만큼 놀라운 스피드로 코트 이곳저곳을 휘젓고 다니며 돌격대장 역할을 해냈고 장점인 슈팅력을 앞세워 팀내 주포로 존재감을 톡톡히 드러낸다. 특히 슈팅력은 어지간한 전문슈터 이상이었다. 통산 필드골 48.4%, 3점슛 성공률 42.84%의 기록이 이를 입증한다.

 

제대로 날개를 펼친 신기성은 첫 시즌인 1998~99시즌 전체 1순위 현주엽 등을 제치고 신인왕에 등극한 것을 비롯 2004-05시즌에는 정규시즌 MVP까지 차지한다. 신기성은 꾸준한 활약을 통해 자신을 지명한 원주 동부(현 원주 DB)를 허재, 김주성 등과 함께 전국구 인기팀이자 농구 명가로 만들어내고, 이후 부산 KTF(현 수원 KT)로 이적해 팀 역사상 최초의 챔피언결정전 진출을 이끌기도 했다.

 

당시 신기성은 공격형 포인트가드의 대명사로 꼽혔다. 하지만 지금 기준으로 본다면 토탈패키지에 가깝다. 언제부턴가 KBL은 정통 포인트가드 품귀현상이 일고 있다. 포지션만 1번일 뿐 사실상 2, 3번에 가까운 플레이를 펼치는 단신 공격수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다.

 

반면 거기에 비해 신기성은 워낙 득점 능력이 돋보여서 그렇지 어시스트, 게임리딩 등에 고루 능했다. 동시대에서 경쟁했던 이상민, 김승현 등 특급 정통 1번들의 존재도 신기성을 상대적으로 공격형으로 보이게 만든 이유로 꼽힌다.

 

신기성의 다재다능함은 기록으로도 잘 드러난다. 그는 정규시즌 통산 613경기에서 평균 10.2득점, 2.9리바운드, 5.3어시스트, 1.4스틸을 기록했다. 플레이오프, 챔피언결정전 등 큰 경기에서도 기록이 올라가면 올라갔지 떨어지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무대를 가리지 않고 두자릿수 득점에 5어시스트, 1스틸 이상은 보장되는 선수였다. 정리하자면 뛰어난 공격형 포인트가드였던 것은 맞지만 1번에게 요구되는 플레이를 고르게 잘했던 ‘밸런스형 야전사령관이다’고 말할 수 있다.

 

‘이거시~00입니다!’ 은퇴후 제2의 전성기?

 

안녕하세요. 은퇴 후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시는지라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래도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최근 어떻게 지내시는지 근황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아시는 데로 은퇴 후 지도자, 해설위원, 아주 가끔 예능 출연 등 배우는 자세로 이것저것 도전하고 있구요.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때문에 영향이 커서 적극적으로 어디를 돌아다니고 그러지는 않는데 가장 최근에는 부득이하게 미국에 다녀왔어요. 아는 에이전트를 통해 대학교 공부도 하고 D리그 경험도 쌓는 등 연수를 추진했었어요. 그런데 잘 안됐네요. 가기 전보다 현재 미국 상황이 더 좋지 않아서 아쉬움이 컸습니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죠. 현재 꾸준히 하고 있는 일은 해설위원입니다.

 

은퇴 후 별다른 공백없이 코치, 감독 등 지도자 생활을 이어가셨는데요. 준비 기간이 짧았다는 의견도 있는데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세상사가 다 그런 것 같아요. 기회가 왔을 때 도전하는게 맞는데 잘 풀릴 수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더라구요. 원래는 선수 생활을 조금 더 하고 싶었어요. 원주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으니 원주에서 마무리 짓고 싶었죠. 여러 가지 사정으로 잘 되지 못했구요. 그러던 중 연수를 생각했었는데 여자농구 쪽에서 제의가 왔었어요. 그때 당시 질문하신 내용처럼 준비 기간에 관한 조언도 들었고 ‘남자농구에서 일하는 쪽이 괜찮지 않겠느냐?’라는 말씀도 있었는데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 그런 의지가 강했던 것 같아요. 후회는 안해요.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경험과 배움을 얻었으니까요. 지나고 나니까, 당시로서는 많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해설위원에 대해서는 팬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갈리는 편인데요. 비판하는 쪽에서는 ‘신기성 해설은 이거시~ 유행어 하나밖에 없다’는 혹평도 적지 않은 편입니다. 여기에 대해 해설위원 신기성의 의견이 듣고 싶습니다.

-언제나 그랬지만 해설을 할 때의 마음가짐은 최대한 농구를 시청하시는 팬분들에게 쉽게 상황을 전달해야 되겠다는 생각, 그것 하나 뿐이에요. 농구 인기가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니까, 좀 더 재미있게 하고 싶은 마음도 크구요. 아무래도 호불호가 갈리는 것은 부족한 부분이 많아서겠죠. 머릿속에 생각은 많은데 정해진 시간과 타이밍에 적절하게 멘트를 꺼내는게 여전히 쉽지 않네요. 갑자기 유명하게 된 ‘이것이 00의 농구입니다’라는 말이 있죠. 이른바 ‘이거시~’로 통하는데요. 제가 마무리를 완벽하게 짓지 못한 탓이기도 한 것 같아요. 각 팀을 보면 추구하는 농구 색깔이 있잖아요. 높이가 강하다거나, 속공플레이를 주특기로 한다던가 등…, 경기 상황에서 해당팀의 그런 농구가 잘 풀리거나 색깔이 나올 때 ‘이것이~’라고 말을 이어갑니다. 아무 이유 없이 습관적으로 내뱉는 말은 아닙니다.(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거시~란 말을 스스로 쓰시기도 하실 만큼 넉넉하신 성격이신 것 같아요. 평소에도 긍정적인 편이신가요?

-별로 그렇지도 않아요. 제 스스로 완벽주의자적인 성향도 있구요. 뭐하나에 꽂히면 신경도 많이 쓰고 스트레스도 받는 편이에요. 특별히 잘하려고 그렇다기보다는 기본적인 것은 해내고 싶어서라는 이유가 맞을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제 자신이 피곤해져서 요즘에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편하게 마음먹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근 예능에서의 활약도 돋보이십니다. 특히 얼마 전 있었던 스포츠 예능프로그램에서는 여전히 녹슬지 않은 농구 실력을 보여주시면서 팬들을 깜짝 놀라게 하셨죠. 지금까지 꾸준히 운동을 하셨던 것 같습니다.

-하핫, 농구 관련 프로에 참여는 했지만 예능에 자주 출연한다. 활약한다는 오버죠. 그래도 기회를 주셔서 즐기면서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현역에서 은퇴한지도 오래되었고, 나이도 있고 특별히 시간을 내서 농구를 연습하고 그러기는 사실상 힘들죠. 더욱이 사실 지금도 운동을 하게 되면 선수 시절 때처럼 혹독하게 하려는 습관이 남아있어요. 나이도 있고 현재 몸 상태에 맞게 해야 되는데, 적당히…, 그게 잘 안돼요. 그러다 보니 운동을 좀 하게 되면 며칠씩 몸이 아플 때도 있어요. 누구나 공감하는 부분이겠지만 농구는 즐기면서 하는게 제일 좋아요. 하지만 선수 생활을 하다 보니 승부에 대한 집착이 커지고 거기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상당히 컸어요. 그래서 코치, 감독 생활할 때도 사실상 농구공을 거의 손에 잡지 않았죠. 그러던 중 유투브 채널같은 곳에서 농구방송에 참여도 하면서 재미도 다시 느끼고, 주말 같은 때 예전 선후배 혹은 일반인분들과 섞여서 농구를 하다보니 너무 즐거운거에요. 그러다가 예능 프로에도 나가게 됐는데, 아무래도 조금씩이라도 즐기면서 다시 농구공을 잡아본게 도움이 많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지도자, 해설위원, 예능 중 어떤 것이 그래도 본인과 가장 잘 맞는지 혹은 재미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다 어려워요. 한 두해 한다고 잘할 수 있는 분야들은 아니잖아요. 최근 출연한 예능은 아무래도 스포츠 쪽이고 좋아하는 종목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그래도 즐겁게 웃으면서 할 수 있는 것 같고, 지도자는 본인이 분석하고, 전력을 짜고, 선수들을 성장시키면서 결과가 나왔을 때 희열을 느끼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해설위원이 좀 더 어려워요. 앞서 말했듯이 시간과 타이밍이 정해져 있는지라 생각을 풀어서 다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선수들 마음도 헤아려야 되고…, 하지만 배우는 것도 많죠. 아무래도 밖에 나와서 경기를 보다 보니 더 잘 보이고, 공부도 많이 되는 것 같아요.

 

질풍 속공에 고감도 3점슛까지! 토탈패키지 1번

 

어떤 계기로 농구의 길에 들어서게 되셨나요?

-초등학교 3학년 때 저희 담임선생님이 농구부장도 겸하셨어요. 당시에는 농구부가 있었는지도 잘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은데, 달리기가 빠르다 보니 하루는 ‘너 강당에 남아’ 그러셔서 남아서 강당 청소하고, 작업하는 것 도와주고 그랬는데, 어느날 보니까 강당에 농구 골대가 생기더라구요.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농구를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키 때문에 농구의 길에 입문한 케이스가 많은데, 저는 달리기라는게 조금 다른 것 같기는 하네요. 어렸을 때부터 형들이랑 축구도 하고 돌아다니는 등 많이 뛰었던 영향이 있을까 싶기도 해요.

 

프로무대에 들어서자마자 정말 대단한 공격력을 보여줬습니다. 스피드를 살린 속공플레이는 그렇다 치더라도, 어지간한 슈터 뺨치는 슈팅 능력은 주변을 깜짝 놀라게 했죠. 그 좋은 공격력을 왜 고려대 시절에는 제대로 쓰지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송도중, 송도고를 다녔어요. 잘 알려졌다시피 송도는 전규삼 할아버님의 영향으로 당시에도 자유분방한 농구를 많이 했어요. 개인기 등도 마음껏 배우고 펼칠 수 있게 자리를 깔아주시구요. 하지만 고려대는 조직적인 농구를 선호하잖아요. 그래서 처음에는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체력 훈련도 강도 높게 많이하고요. 선후배간의 관계, 운동의 분위기도 좀 달랐어요.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차츰 잘 녹아 들어갔죠. 당시 저랑 (현)주엽이가 입학하면서 고대도 각 포지션별로 쟁쟁한 멤버가 갖춰졌어요. 그런데 멤버를 보세요. 희철이형, 병철이형, 희승이형, 주엽이 등 하나같이 공격력이 좋은 선수들이에요. 솔직히 말하면, 패스를 주면 다시 공이 잘 돌아오지를 않아요. 알아서 공격하고 득점을 성공시켜버리는 경우가 많았어요. 슛을 쏘거나 드라이브인 등으로 림을 공략하고, 리바운드해서 재차 득점해버리고, 이런 패턴이에요. 제가 또 저학년이었고, 마음대로 경기를 좌지우지할 입장은 아니었죠. 심지어 그런 상황에서 ‘제가 볼을 잘 안준다’고 오해한 선배도 있었을 정도에요. ‘왜 쟤한테만 패스하냐? 나한테는 패스 안하냐?’ 그래서 제가 그랬죠. ‘형 저는 찬스가 나는 선수에게 패스를 해요. 많이 움직이시면 알아서 패스가 들어갈거에요’라고. 어쨌든 그때 마인드는 팀이 우선이라는 생각으로 플레이를 했어요. 그런데 너무 그러다보면 제가 보여줄게 없잖아요. 그래서 제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살리기 위해서 속공전개 능력 등에 신경을 많이 썼던 것 같아요. 당시에는 돋보이지 않았지만 점차 실력이 늘어가고 있었고 그러다가 프로에 와서 어느 정도 갖춰진 상태로 플레이가 가능했던 것 같아요. 당시 나래팀과의 궁합도 잘 맞았던 것 같구요. 

 

선수 시절 말년의 허재와 궁합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당시 허재는 리딩에 주력하고 신인 신기성은 공격적으로 게임에 임했죠. 1번과 2번이 바뀐 듯한 느낌도 받았어요.

-당시 허재 형은 전성기가 지나셨던 상태이기도 해요. 그래서인지 경기 조율 등에 신경을 많이 쓰셨고 저하고도 좋은 시너지가 일어난 것 같아요. 공격, 리딩, 패싱플레이 등에서 허재 형이 함께해주시니까, 부담도 덜하고 그때그때 잘되는 것 위주로 경기를 펼칠 수 있어 자신감도 많이 올라갔습니다. 허재 형이 참 농구를 잘하신다고 느꼈던게 말을 안했는데도 상황에 맞게 호흡을 착 맞춰주시는 플레이 등이 참 대단하셨던 것 같아요. 그냥 허재 형 옆에 있으면 플레이가 알아서 업그레이드되는 그런 부분이 분명히 있어요.

 

공격수로도, 야전사령관으로도 빼어난 능력을 과시했습니다. 신기성 본인은 어떤 플레이가 더 좋았을까요?

-득점 등도 좋지만 아무래도 포지션이 포인트가드인지라 원하는 패스가 잘 들어가서 팀원이 공격을 성공시켰는데, 짜릿한 희열같은 것이 느껴져요. 이는 저뿐 아니라 모든 1번 선수들이 그러지 않을까 싶어요. 서로간 충분히 의사소통을 하지 않았음에도 선수들의 동선과 이후 움직임이 느껴지면서 플레이가 유기적으로 척척 맞아떨어질 때가 있죠. 그때 기분은 정말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좋습니다.

 

역대로 따져도 슈팅력은 정말 손꼽힐 정도인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쏘면 들어갈 것 같다’는 느낌까지 받았습니다.

-제가 슛에 대해서는 나름 노력을 많이 했어요. 아까도 말했지만 대학에 들어가서 체력적으로 부담을 많이 가졌어요. 고등학교까지만 해도 점프슛을 많이 구사했었거든요. 주특기처럼 자연스럽게 썼는데 대학가서 이것저것 많이 하면서 함께 하려니 힘에 부치더라구요. 그래서 저만의 방식으로 점프를 덜하고 슛을 쏘는 쪽으로 바꿔보기로 마음먹었어요. 하지만 아무래도 신장이 작으니까, 그러다보면 블록슛을 당할 가능성도 커지고…, 방법은 슛타임을 빠르게 가져가서 던지는 것이었죠. 무회전슛이라는 말도 있던데(웃음) 그 정도까지는 아니구요. 스핀을 적게 주면서 정확하게 던지는 쪽으로 발전이 된 것 같아요. 일반적으로 말하는 정석적인 슛과는 살짝 거리가 있는 것 같기는 해요. 대학 4학년에서 프로 초창기에는 특히 슛에 신경을 많이 썼던 것 같아요.

 

최근 1번, 2번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을 넘어 ‘가드가 맞나?’ 싶을 정도로 듀얼 가드 혹은 포워드형 가드가 대세인데, 지금에서 돌아보면 선수 신기성은 패싱플레이나 리딩 등에 있어서도 매우 잘했던 것 같아요. 공격력에 다른 능력치가 가려졌던 케이스 같습니다.

-제가 공격력이 눈에 띄어서 그렇지 선패스를 우선으로 플레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팀을 먼저 생각해야지 아무래도 저 혼자 하게 되면 팀원들과의 호흡이나 조직력 이런 것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을 먼저 살려줄 필요가 있어요. 특히 슈터들은 볼을 한번이라도 더 만지고 슛을 쏴야 슛감이 올라올 수 있는지라 저에게 선택권이 있는 상황에서는 첫 번째 패턴으로 그 부분에 특히 신경을 썼던 것 같아요. 그 다음에 나오는 볼을 제가 처리하던지 외국인선수에게 주던지 하는 패턴으로 이어갔구요. 플레이 자체가 최근 트랜드와는 살짝 다르기는 하죠. 저희 시대에는 이런 마인드를 우선으로 하는 포인트가드가 많았구요. 이후 변하는 대세의 흐름 속에서 양동근 선수가 나오게된거죠.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동근이와 저도 비슷한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동근이가 공격 외에 수비수로서도 굉장히 위력적이었다면 저는 속공전개 그런 쪽에서 강점을 보였다는 것 외에는 전체적으로 닮은 점이 더 많지 않나 생각됩니다.

 

명가드를 많이 배출하기로 유명한 송도중, 송도고 출신입니다. 본인이 생각하실 때 송도고 출신 가드중 몇위 정도 되실 것 같나요? 겸손을 뺀 냉정한 답변 기대해봅니다.

-아…(고민하는 소리), 저희 중학교에 가면 역대 잘했던 선수들을 프랭카드처럼 붙여놓았어요. 학교의 자랑이기도 하고, 후배들에게 동기부여를 주기 위한 의미도 있겠죠. 유희형, 김동광, 강동희 등 쟁쟁한 선배님들과 후배 (김)승현 등의 사진이 있고 저도 함께 있어서 너무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솔직히 이건 답을 정하기 너무 어려운 난제같구요. 다만 제가 직접 플레이를 함께 해본 선수, 동포지션 쪽으로 확 줄여보면 동희선배님, 승현이 다음 정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이전 선배님들의 플레이를 봤거나 하면 더 내려갈 수도 있구요. 나중에 후배들이 밀어낼 가능성도 충분할 듯 해요. 계속 떨어질 일만 남은건가요?(웃음)

 

부산 KTF로 이적한 후 팀의 중심으로 거듭나고 2006~07 시즌에는 팀 역사상 최초의 챔피언결정전 진출을 이끌었어요. 정말 최고의 시즌이었지만 7차전 접전 끝에 아쉽게 우승을 놓치셨어요. 농구선수의 커리어를 평가하는데 우승은 정말 큰 영향을 차지하잖아요. 특히 에이스 시절이었던지라 한경기로 인해 많은 부분에서 아쉬움이 클 것 같아요.

-그렇죠. 선수 시절을 생각해보면 가장 아쉬운 순간입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반드시 이겼어야 하는 경기인데, 상대인 모비스가 너무 강했죠. 그 당시에는 저희가 전력이 떨어지기도 했어요. KTF가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할 것으로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어떻게 마지막까지 올라가 최강전력 모비스와 진검승부를 겨뤘죠. 모비스같은 경우 4강 직행을 했고 저희는 3위를 했던지라 플레이오프를 치르고 올라간 상태였기 때문에 체력적인 부담도 좀 더 컸던 것 같아요. 개성 강한 외국인 선수 2명을 컨트롤하면서 플레이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웃음) 지나고 나니까 ‘7차전까지 온 것만 해도 최선을 다했다’라는 다소 안일한 생각을 하지 않았나싶기도 해요. 물론 당시에도 이를 악물었지만 승부의 세계는 종이 한장차이니까요, 절실함, 간절함 등에서 모자랐던게 아닌가하는 후회도 되고 그러죠. 당시 모비스가 너무 잘하기도 했구요. 크리스 윌리엄스는 정말 말도 안되게 대단했어요. (양)동근이도 전성기로 접어들던 단계였죠.

 

엉뚱한 질문하나 해도 될까요? 스포츠 스타들을 보면 그 선수와 정말 잘 어울리는 노래가 한 곡씩 떠오르더라구요. 개인적으로 신기성 선수 하면 ‘질풍가도’가 딱 맞을 것 같아요.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혹시 스스로와 잘 어울릴 것 같은 노래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하핫…, 제가 질풍처럼 달려가나요?(웃음) 그렇지않아도 질문지 받고 나서 그 노래를 찾아봤어요. 신나고 좋던데요. 가사도 괜찮고, 이 노래를 들어보니까 멜로디, 리듬 등 전체적으로 너무 마음에 들어요, 좋은 노래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재로서는 이 노래가 가장 딱인 듯 싶은데요.

 

팬들에게 친절한 ‘매너 신’

 

최근 들어 스포츠 스타들의 팬서비스가 도마 위에 오르며 말이 자주 나오는데요. 그런 것과 관계없이 현역 시절부터 팬들에게 친절하게 잘하기로 유명하셨어요. 덕분에 ‘매너 신’이라고 불리기도 하더군요. 7080세대로서 흔치 않은 케이스 같아요.

-아이쿠, 아닙니다. 저는 제가 팬서비스가 좋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하게 느끼고 있지만 젊은 시절에는 그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다만 성격이 시크한 편은 아닌지라, 팬들이 다가오셔서 이것저것 물어보시고 아는체 해주시는데 못 들은척 하거나 매몰차게 대하지는 못하죠. 적어도 최대한 반응은 보여드리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도 게임을 지거나 했을 때는 고개 푹 숙이고 지나가고 그런 적도 있어요. 팬서비스에 대해서는 반성할 부분이 많죠.

 

인터뷰 기사 제목을 “이거시 신기성의 인터뷰입니다”라고 할까 합니다. 저를 말리실 생각이 있으실까요? 

-하하핫… 저는 크게 상관없습니다. 이런저런 것들도 팬들의 관심이라고 생각하고, 또 그런 가운데 배워나가는 거죠. 사람으로서도 그렇지만, 농구인으로 여전히 남아있는지라 팬들과의 소통 등 평생 배워도 모자란 것 투성이 같아요. 팬분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좀 더 친근하게 소통하고 싶습니다.

 

두 따님의 아빠로 알고 있습니다. 가정에서의 신기성은 어떤 남편, 어떤 아빠일까요?

-아…(살짝 한숨) 제가 일찍 결혼한 것도 있고, 와이프가 운동에만 집중하게 해주려고 배려해준 부분도 커요. 그런 부분들을 감안해도 어쨌든 가정에 충실하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육아를 하면서도 아이들을 데리고 매번 경기장을 찾고 기도도 계속 해주는 등 너무너무 감사한 것 투성이죠. 아내 역할이나 몫이 너무 컸던 것 같아요. 물론 저도 비시즌에는 아이들 어린이집도 데려다주고, 여행도 가려 하고 그랬지만 많이 부족했죠. 선수 시절에는 늘 긴장 속에서 살고 집에 오면 다음 경기를 위해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생각도 강했던지라 그다지 다정다감했던 아빠는 못된 것 같아요. 직업 특성상 이사도 종종 다녀야 했는데 그것도 거의 도와주지 못했어요. 경기가 끝난 후 집에 가야 하는데 이사간 집을 못찾고 헤멘 적도 있을 정도에요.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해프닝이지만 아내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정말 미안한 부분이죠. 은퇴 후에는 시간은 선수 시절보다 많아졌지만 그때는 아이들이 커버려 반대로 진로문제 등으로 아이들이 바빠져 버렸어요. 큰 아이가 20살이거든요. 다 때가 있는 건데요. 이제는 반대로 제가 숨죽이고 있어야죠.(웃음)

 

허재, 이종범 등의 2세들이 맹활약하고 있습니다. 신기성 2세도 무척 궁금해지는데요. 서장훈 선수 등처럼 유전자가 아깝잖아요. 셋째로 아들을 낳으셔서 농구선수로 커나가는 것 아님 따님들이 농구를 하는 것, 어떤 쪽이 가능성이 더 높을까요?

-아이쿠… 전혀 아닙니다. 이미 아이들도 다 커버렸구요. 웅이, 훈이는 예전에 허재 선배님께서 데려오셔서 숙소에서도 많이 보고 그래서 이렇게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했다는게 대견하고 놀라워요. 제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니 나이를 들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구요. 국보급 센터였던 서장훈 선배야 한국농구발전을 위해서 당연히 유전자가 아까울 수 있겠지만 저는 그렇지않아요.

 

중간중간 엉뚱한 질문도 있었는데, 끝까지 잘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신기성을 응원하는 팬분들께 인사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선수 시절 그리고 지금 현재도 기억해 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분들께 지금 이 자리를 빌어서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는 말씀 전하구요.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일반적인 생활이 힘든 시기인지라 다들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그러실 것 같은데, 그래도 건강 잘 챙기시고 함께 힘냈으면 좋겠어요. 더불어 제가 해설을 하면서 ‘이거시~’등으로 이름을 알리기는 했는데, 더 나아지고자 많이 배우고 있으니 좀 더 지켜봐 주시면, 해설자든 지도자든 어떤 자리에서도 좋은 모습 보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모쪼록 다들 행복하시고 잘됐으면 좋겠어요.

 

#사진 | 본인 제공

 

◇ ◇ 필자는 농구대잔치 시절부터 농구를 사랑하던 오랜 팬으로 2002-2003년 본지에 농구 무협소설 '해동전설(海東傳說)''을 연재한 바 있으며 데일리안, 홀로스, 올레, 오마이뉴스 등 다양한 인터넷 매체에서 스포츠 객원기자로 활동한바 있다. <김종수의 농구人터뷰>를 통해 전현직 농구인들의 이야기를 다양한 시각으로 다룰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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