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몇 발자국에 칠곡군에서 구미시로' 특이한 행정구역 가진 아파트
지역 특성에 따라 유연한 행정처리
행정구역 조정 어려운 이유는 지자체 간의 이해관계 때문
전국적으로 증가하는 행정구역 분쟁에 제 3자의 개입 등 효과적인 해결 방안 필요해
몇 발자국에 경상북도 칠곡군과 구미시를 넘나드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 칠곡군과 구미시 경계에 위치한 아파트 단지 ‘오태지구 현진에버빌’이다. 행정구역이 혼재된 이곳은 과거 비거주지역이었다가 아파트 단지가 건축돼 현재까지 그 행정구역을 유지 중이다. 군과 시의 경계선이 아파트 동과 동 사이는 물론 한 가구의 내부로 지나가기도 해 신기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그곳에 서울경제 부동산 매체 ‘집슐랭 흥신소’가 직접 찾아가 속사정 알아보고 행정구역 경계 조정에 대한 이야기까지 자세하게 분석해봤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판상형 아파트 단지인 오태지구 현진에버빌. 이 아파트의 특이한 점은 지도를 봐야 알 수 있다. 아파트 한가운데 그어져 있는 금이 그것이다. 금의 정체는 칠곡과 구미를 나누는 경계선으로 그 선이 아파트 단지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단지의 왼쪽은 칠곡, 오른쪽은 구미에 속해있다. ‘구미시 오태동’을 뜻하는 듯한 아파트 이름과는 다르게 지도에는 ‘칠곡군 북삼읍’에 위치해 있다고 표기돼 있는데 그 이름과 위치만으로 ‘역설적인 면'을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이곳의 주민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시와 군을 넘나든다.
실제로 이 아파트는 특이한 행정구역 덕분에 ‘가장 신기한 아파트’라는 별명이 있는 건물이다. 101동과 104동 1호 라인은 구미시, 102동과 103동, 104동 2,3,4,호 라인은 칠곡군에 포함돼 이웃주민이 서로 다른 행정구역에 살고 있다. 또 이중 몇 가구는 경계지점에 건축돼 아파트 안방으로 시·군경계가 지나가고 있어 ‘큰방은 칠곡군, 작은방은 구미시, 엘리베이터는 칠곡군, 주차장은 구미시’ 등으로 행정구역이 나뉘는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물론 한 가구내에서는 경계와 상관없이 주소가 통일돼 있지만 이런 특이한 경계 때문에 ‘큰방을 쓰는 부모님은 칠곡군민, 작은 방을 쓰는 자녀는 구미시민’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전해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단지 내에서 행정구역이 나눠져 있을 경우 불편한 점이 생기지는 않을까? 실제로 오태지구 현진에버빌 주민의 경우 재산세와 주민세 등 각종 세금을 구미시와 칠곡군에 두 번 납부해야 하거나 여러 생활 문제에 있어 불편을 겪었다는 과거 보도를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이런 행정적인 불편함은 다소 해결된 모습이다. 관리사무소의 말에 따르면 구미시와 칠곡군의 경계에 위치해 있지만 실제로 아파트 단지의 행정은 현재 칠곡군 측에서 대부분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아파트가 건설된 이후 행정구역으로 인해 생겨난 여러 불편함에 대한 민원이 지속적으로 들어왔고 이를 최대한 해결하기 위해 칠곡군 측에서 주민들의 편의를 봐주는 형식으로 일이 진행돼 왔다고 한다.
행정구역으로 인해 생겨날 수 있는 대표적인 불편함은 쓰레기 처리의 문제가 있다. 칠곡과 구미의 경우 또한 사용하는 쓰레기봉투가 다르기 때문에 과거 주민들에게 많은 혼란을 빚었다. 이에 현재는 두 시와 군의 쓰레기봉투를 구분 없이 사용해도 해당 아파트 내에서만은 문제가 없도록 처리하고 있다고 칠곡군청은 전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의 경우에도 원래는 주소지를 나눠 해당 병원과 보건소에서 접종하도록 안내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 아파트의 경우 가까운 병원과 주소지에 따른 접종 병원이 다를 수 있기에 근거리에 있는 보건소와 병원으로 갈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정미영 칠곡군 북삼읍사무소 주무관은 “지역 특성에 따라 (행정을) 조금 유연하게 처리하고 있는 중” 이라고 전했다. 사업장 주소지 기준으로만 구분해 정산할 수 있어 조정이 어려운 지역화폐 통일 등 일부 문제를 제외하고는 칠곡군청이 한 발짝 물러나 융통성을 발휘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렇다면 이렇게 애매한 행정구역으로 인해 초래되는 문제가 적지 않은데도 왜 행정구역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걸까? 행정구역 조정은 지자체의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칠곡군과 구미시의 경우 주거지역으로 사용되기 전부터 그어져 있던 경계에 아파트 여러 개와 공단 등이 들어서며 인구수와 세수 확보 등의 문제로 시와 군이 합의에 이르기 어려웠다고 한다. 구미시청 관계자는 “(조정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있었지만 인구가 줄고 있는 상황이기에 주민수가 적지 않은 현진아파트 또한 (합의 시도 시에) 구미시는 구미시로, 칠곡군은 칠곡군으로 가져오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 때문에 행정구역 조정과 관련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제대로 해결이 힘든 상황이다.
최근에는 가용용지 부족 등의 이유로 두 시가 공동으로 도시개발사업을 진행하거나 위례신도시와 같이 애매한 행정구역을 가진 복합경계신도시가 건설되는 등의 경우 또한 증가하는 추세다. 서울, 성남, 하남 세개의 행정구역 일부분이 합쳐진 지역인 위례신도시는 신도시 계획 수립 당시 행정구역 통합을 추진했지만 마찬가지로 지자체 간의 이해관계가 서로 맞지 않아 경계선을 조정하는 것에 그쳤다.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행정구역이 분리돼 있어 주민들이 여러 불편을 겪고 있다.
의정부시와 서울시의 경계에 위치한 ‘수락리버시티’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 3, 4단지는 서울시 속해있는 것과 달리 1, 2단지는 아파트 착공 시 서울시에 편입되지 못해 ‘서울 속 의정부’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에 1, 2단지 입주민들이 교육, 보건, 행정 시설의 이용 등 생활권 문제에서도 큰 불편을 겪고 있을 뿐 아니라 부동산 실거래가 등에서도 서울시 주소지를 쓰는 3, 4단지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렇듯 같은 단지 내에서 행정구역이 갈릴 경우 단순히 불편함을 넘어서 부동산 가격의 차이 등 경제적 가치 문제가 수반되며 주민 갈등으로 번질 위험도 존재한다.
이런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관계 지자체들의 합의를 최대한 유도하되 그것이 어려울 경우 중앙정부나 상위 지방정부 등 제3자의 개입으로 해결하는 대안이 급부상하고 있다. 이 같은 방법으로 갈등을 성공적으로 해결한 사례를 찾아봤다.
화성시 반정동 일원의 경우 경기도의 적극적인 중재로 지난해 조정이 성공적으로 이뤄진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사례는 주민 거주가 시작된 상태에서 행정구역 조정 합의가 이루어진 역대 두번째 사례일 정도로 드문 일이다. 화성시 반정동 일부는 ‘n’자 형태로 수원시로 깊숙히 들어가 있어 수원시로 둘러싸인 형태였는데 주민생활권은 수원시, 행정기관 이용과 쓰레기 배출일 등은 화성시 관할에 있어 해당 단지 입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어왔다. 이 상황에서 갈등 해결을 이끌어 낸 곳은 상위 지자체인 경기도다. 경기도가 중재에 나섰고 문제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 냈다.
제3의 기관이 중재에 나서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도 올 1월 지방자치법 전면 개정을 통해 갖춰졌다. 이번에 개정된 지방자치법에서는 둘 이상의 지방자치단체에 걸친 개발사업 등의 시행자가 관계 지자체에 경계변경에 대한 조정을 신청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또한 두 지자체 사이의 조정이 원만하게 해결되지 않을 경우 제3의 기관인 행정안전부 장관이 조정 과정에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이에 대해 남재걸 단국대 행정학과 교수는 "이번 법안 개정을 통해 반복되는 행정구역 분쟁 해결의 실마리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남정현 인턴기자 ondui321@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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