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진의 늪' 빠진 주력 계열사..애경그룹 화학 3형제 '구세주' 될까
통합 법인 애경케미칼 11월 출범 앞둬
"10년 내 매출 4조원 이룬다"
[비즈니스 포커스]
애경그룹이 화학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삼고 제2 도약에 시동을 걸고 있다. 1954년 설립된 애경그룹은 작은 비누 회사(애경유지공업)에서 시작해 화학·유통·항공을 아우르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홍대 신사옥 준공과 계열사 상장 등 외형 확장을 통해 2019년 공정거래위원회 대기업집단에 신규 포함돼 재계 순위 58위로 올라섰다. 승승장구하던 애경그룹은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실적 부진의 늪에 빠지게 됐다.
지난해 주력 계열사인 제주항공은 코로나19의 여파로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애경산업의 매출액은 전년보다 16.1% 줄어든 5881억원, 영업이익은 63% 감소한 224억원을 냈다. 모든 사업부문이 부진에 빠졌지만 애경유화만 전년보다 영업이익이 증가했다.
주력 사업의 위기로 애경그룹의 지주회사인 AK홀딩스의 실적도 저조했다. AK홀딩스는 지난해 매출 2조6200억원, 영업손실 2216억원을 냈는데 매출은 30.3% 줄었고 영업이익은 적자로 전환됐다.
미래 먹거리 ‘화학 3사 합병’으로 승부수
애경그룹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지난해 추진해 온 신사업들을 모두 포기하면서 신성장 동력 확보에 차질을 빚었다. 항공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육성하기 위해 제주항공을 통해 이스타항공 인수에 뛰어들었지만 코로나19 장기화로 항공 산업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결국 인수 의사를 철회했다.
야심차게 추진하던 인천 송도 애경그룹 종합기술원 프로젝트도 결국 무산됐다. 애경그룹은 송도에 2022년까지 애경그룹 종합기술원을 설립해 연구 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첨단 소재 개발, 독자 기술 확보, 친환경·바이오 연구 등을 추진해 신제품 개발을 가속화할 계획을 세웠다. 코로나19 사태로 경영이 악화하면서 이 같은 투자 계획을 접은 것으로 알려졌다.
애경그룹은 돌파구를 찾기 위해 ‘화학’ 카드를 꺼내 들었다. 애경유화·에이케이켐텍·애경화학 등 화학 3사를 합병해 ‘애경케미칼(가칭)’을 출범하기로 했다. 애경그룹의 화학 사업은 긴 역사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유통이나 항공 사업에 가려져 존재감이 미미했다.
코로나19 사태 발발 이후 화학 산업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이끌 성장 산업으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유통과 항공 사업 등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면서 그룹 내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1970년대 화학 사업, 1990년대 유통 사업, 2000년대 항공 사업으로 시대 흐름에 맞춰 사업 포트폴리오를 꾸준히 확장해 온 애경그룹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다시 화학 사업으로 승부수를 띄우고 있다.
애경그룹의 화학 3사를 합친 통합 법인이 11월 출범을 앞두고 있다. 합병 후 존속법인은 애경유화다. 주식 교환 비율은 애경유화·에이케이켐텍·애경화학이 각각 1 대 0.68 대 18.26이다. 에이케이켐텍 1.47주, 애경화학 0.05주당 애경유화 신주 1주가 배정된다. 기업 결합 심사와 9월 말 주주 총회 승인 등을 거쳐 11월까지 합병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애경유화·에이케이켐텍·애경화학의 최대 주주는 애경그룹의 지주회사인 AK홀딩스로 각각 49%, 81%, 10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합병 회사의 최대 주주인 AK홀딩스의 지분은 49.44%에서 62.23%로 변동되고 최대 주주 변경은 없다.
애경그룹은 화학 사업을 그룹의 신성장 동력이자 메가 트렌드에 부합하는 핵심 사업으로 키운다는 전략이다. 이에 따라 애경케미칼은 애경그룹 내 1조7000억원 규모의 화학 기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기존 사업의 시너지를 극대화하고 인수·합병(M&A), 연구·개발(R&D) 등 투자를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하고 2030년까지 매출액 4조원, 영업이익 3000억원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특히 △애경유화의 기초 화학 소재 개발 및 생산 역량과 중국 현지 인프라 △에이케이켐텍의 고부가 가치 소재 사업 역량과 베트남 등 글로벌 영업망 △애경화학의 고부가 가치 제품군 및 다품종 소량 생산 역량 등 3사의 역량과 자원을 통합해 합병 후 시너지를 극대화한다는 계획이다.
애경그룹의 화학 3사가 주로 건설·조선·자동차용 소재를 생산하고 있는 만큼 해당 분야를 중심으로 한 제품 개발·판매 등에서 시너지가 예상된다. 애경그룹의 화학 3사는 합병을 계기로 그동안 소극적이었던 증설과 투자 확대에도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오디젤·섬유 등 ‘신영역 시너지’ 노린다
존속법인인 애경유화는 1970년 창립된 애경그룹의 대표 화학 회사이자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다. 2020년 기준 자산 5321억원, 매출 9089억원, 영업이익 574억원 규모의 기업이다. 애경유화는 무수프탈산(PA), 가소제(DOP, DINP 등), 폴리올, 바이오 연료, 음극 소재 등을 생산하고 있다. 무수프탈산과 가소제는 공급 능력 기준 한국 1위, 세계 4위를 차지하고 있다.
에이케이켐텍은 1982년 설립된 애경쉘을 전신으로 2009년 애경정밀화학·애경피앤씨·애경소재가 합병된 회사다. 에이케이켐텍은 계면활성제(주방·세탁 세제), 콘크리트용 첨가제(PCE), 무기 소재 등을 생산한다. 코로나19로 위생 관념이 향상되며 계면활성제 실적이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 2020년 기준 자산 3114억원, 매출 2349억원, 영업이익 228억원을 기록했다.
애경화학은 욕조·단추·인조대리석 소재로 쓰이는 불포화 폴리에스터 수지(UPR), 코팅 레진, 경화제(도로·건설용) 등을 생산한다. 1979년 일본 DIC와 합작법인(JV)으로 설립됐다가 2019년 합작 관계를 종료하고 AK홀딩스의 100% 자회사가 됐다. 2020년 기준 자산 1640억원, 매출 1956억원, 영업이익은 161억원이다.
애경그룹의 화학 3사 중 유일한 상장회사이자 가장 규모가 큰 애경유화는 친환경 바이오 에너지 사업과 폴리우레탄·음극재·태양광 사업 등의 신사업을 하고 있다. 배터리 수요가 늘면서 배터리 소재 사업도 성장하고 있어 애경유화가 생산하는 배터리 음극재의 첨가제인 하드카본 사업도 향후 애경그룹의 캐시카우가 될지 주목된다.
2012년부터 음극재 첨가제용 하드카본을 생산 중인 애경유화는 현재 SK이노베이션 등에 하드카본을 공급하고 있어 배터리 관련주로도 주목받고 있다.
합병 법인인 애경케미칼은 최근 중·장기 전략도 내놓았다. 중국·베트남에 화학 생산 설비를 증설하고 신사업으로 바이오 디젤과 섬유 원료 시장에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중국에서는 2022년 연산 7만 톤 규모의 무수프탈산 생산 설비를 증설해 2023년 가동에 들어간다. 베트남에서는 올해 안에 계면활성제 생산 설비 증설을 완료해 합병 법인의 새로운 화학 공장 건립을 검토할 예정이다.
신사업으로는 친환경 연료인 바이오 해상유, 바이오 항공유 사업과 함께 소방복 소재 등에 쓰이는 아라미드 섬유의 원료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애경유화의 한국 바이오 디젤 시장점유율은 17%로 업계 2위다.
이석주 AK홀딩스 대표는 “애경그룹은 이번 합병 결정을 통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화학 사업을 그룹의 핵심 사업 포트폴리오로 규정했다”며 “급변하고 있는 글로벌 시장 환경과 경쟁 속에서 힘을 합쳐 신(新)영역을 개척하고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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