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원장님이나 제가 원했던 날짜 아니다" 김대업 사건 또 만드나
야권 대선 주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을 제기한 조성은씨가 방송에 출연해 의혹 보도가 나간 시점에 대해 “우리 원장님이나 제가 원했던, 제가 배려받아서 상의했던 날짜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의혹은 9월 2일 처음 보도됐는데, 조씨는 그로부터 3주 전인 8월 11일 한 호텔 식당에서 박지원 국정원장과 단둘이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데 조씨가 박 원장을 ‘우리 원장님’이라고 지칭하며 자신과 박 원장이 원하던 시점은 따로 있었는데, 보도가 이보다 앞서 나갔다고 말한 것이다.
그래놓고 방송 앵커가 조씨에게 재차 묻자 조씨는 박 원장과 얘기를 나눈 게 없다고 그 직전 자신이 한 말을 정반대로 뒤집기도 했다. 조씨는 자신의 발언이 논란을 일으키자 “얼떨결에 나온 말” “말꼬리 잡지 말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원장님과 제가 (보도되기를) 원했던 날짜”라는 말이 실수로 나올 수 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조씨가 고발 사주 의혹의 근거라고 주장하는 텔레그램 전송 고발장 등의 화면 캡처가 박 원장을 만나기 전날과 다음 날 집중적으로 이뤄졌다는 점도 새로 밝혀졌다. 조씨가 박 원장과 향후 대응을 상의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화면 캡처가 이뤄진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현직 국정원장이 야권 대선 주자를 공격하기 위한 의혹 제기에 가담했다면 이 사건은 ‘고발 사주’ 의혹을 제기하라고 사주한 의혹이 된다. 지난해 이 정권 사람들과 친정권 방송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공격하려 ‘검언 유착’ 의혹이란 것을 제기한 일이 떠오른다. 당시 이들은 서로 “작전 들어간다”는 말까지 주고받았다. 결국 ‘검언 유착’이라는 것은 실체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고 오히려 정권과 친정권 방송의 ‘권언 유착’으로 의혹이 바뀌었다.
현 정권은 국정원 정치 개입을 철저히 막겠다며 부처, 기관, 단체 등을 출입하는 국내 정보 담당관(IO) 제도를 폐지했다. 또 박근혜 전 대통령 재임 시 청와대에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전달한 혐의로 전 정권 국정원장 3명을 수감했다. 그런데 지금 ‘순수 정보기관으로 거듭났다’는 국정원의 수장이 대선을 코앞에 두고 정치 공작의 중심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게 됐다.
‘고발 사주’ 의혹이 불거지자 법무부, 공수처는 초고속으로 수사에 착수하며 윤 전 총장을 4개 혐의 피의자로 입건하고 야당 의원실을 압수수색했다. 이들은 국정원장 의혹에 대해선 수사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시중에선 조씨와 김대업을 합친 ‘조대업’이란 말이 회자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정치도 이제는 이런 공작 수준은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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