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정치적 거리두기’ 해보면 어떨까

황대진 정치부 차장 2021. 9. 14.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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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시대 정치권도 변화… 협치·소통 약화, 감시는 안받아
쟁점 법안 ‘입법 동결’하고 여야 합의 법안만 처리하길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391회 정기국회 개회식에서 여야 의원들이 마스크를 착용한 채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사회적 거리 두기가 공식화된 것은 작년 6월 28일이다. 이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각종 방역 수칙과 권고를 ‘사회적 거리 두기’로 명칭을 통일하고 단계를 나눠서 적용하기 시작했다.

비대면(非對面) 세상이 되면서 정치권도 변했다. 정치인과 유권자가 만나는 기회가 줄었다. 국회에선 여전히 각종 토론회와 공청회가 열리지만 대부분 ‘줌’이나 유튜브 방송을 이용한 온라인 행사다. 대선 후보들도 출마 선언, 공약 발표를 온라인으로 한다. 민주당은 11일부터 ‘무관중 경선’을 치르고 있다. 과거 ‘체육관 경선’은 각 후보 진영이 동원한 유권자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현장에서 후보 연설을 듣고 “A 후보 차를 타고 왔지만 표는 B 후보에게 줬다”는 사람도 있었다. 이젠 이런 모습을 기대하기 어렵다.

정치인끼리 만남도 줄었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취임 후 석 달 동안 민주당 송영길 대표와 식사한 건 한 차례다. 문재인 대통령은 아직 못 만났다. 사회적 거리 두기 이후 문 대통령이 야당 지도부를 청와대에서 만난 것은 지난 5월 김기현 당시 대표 권한대행을 초청했을 때뿐이다.

반면 정치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 기능은 약화됐다. 방역 수칙 때문에 국회 소통관 기자실은 언론사마다 대략 4분의 1만 채울 수 있다. 정당의 각종 회의와 행사도 취재 인원을 제한한다. 청와대는 거리 두기 4단계 이후 춘추관 기자실에 5명까지만 출입을 허용한다.수백 명의 기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다니던 청와대와 국회가 조용해졌다.

비대면 시대는 거여(巨與)의 등장과 맞물렸다. 이 기간 집권당이 한 일은 ‘입법 폭주’였다. 국토부마저 “법안에 찬성하면 직무유기로 처벌될 수 있다”며 반대한 가덕도신공항특별법을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통과시켰다. 국제사회가 인권침해라고 반대한 대북전단금지법도 강행 처리했다. 공수처장에 대한 야당 거부권을 없앤 공수처법 개정안은 야당의 반대 토론 요청을 무시한 채 기립 표결로 6분 만에 법사위를 통과했다. 그렇게 임명된 공수처장은 대선을 6개월 앞두고 야권 1위 후보를 수사 중이다. 국민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도 야당에 내용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이틀 만에 처리했다. 결과는 전세 대란이었다.

한마디로 비대면 시대 우리 정치는 여야 협치력, 대국민 소통력, 합리적 의사 결정 능력이 크게 약화한 반면, 권력자들은 감시에서 벗어났다. 국민이 소비하는 공공재로서 정치의 품질이 크게 떨어진 것이다.

국민은 비대면 시대에 많은 것을 유보했다. 친구들과 식사, 명절 가족과 친지 만남, 헬스장 샤워까지 포기했다. 그저 참고 견디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야도 ‘정치적 거리 두기’를 실시하면 어떨까. 협치와 소통 능력이 떨어진 지금의 정치권은 코로나로 치면 면역력이 약해진 상태다. 그러므로 국민의 자유·권리에 큰 영향을 미치거나 갈등을 유발하는 법안, 이해관계가 엇갈려 여야가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쟁점 법안에 대해서는 ‘입법 동결’을 선언하는 것이다. 최소한 올 정기 국회만이라도 여야가 합의한 법안만 처리하기로 하면 어떨까.

문 대통령은 “코로나로 위중한 시기이기 때문에 과거 어느 때보다 협치가 중요하다”고 해왔다. 최근 언론중재법 강행 처리에 제동을 건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을 것이다. 국가 사법 체계를 흔드는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도 급할 게 없다. 여당은 시급한 민생 법안을 야당이 발목 잡아 강행 처리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시급한 민생’이라면 그걸 외면한 야당이 대선에서 심판받을 것이다. 국민은 어리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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