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남북 유엔가입 30년이 남긴것

정시행 뉴욕 특파원 입력 2021. 9. 14. 03:04 수정 2024. 4. 5.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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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9월17일 유엔본부에서 안보리가 끝나 남북한 유엔가입이 확정된 뒤 노창희 대사(오른쪽)가 북한 대표부 박길연 대사에게 축하한다며 손을 내밀어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뉴욕 맨해튼의 유엔(UN) 본부 앞엔 한국 유엔 대표부 전용 건물이 있다. 태극기가 휘날리고 무궁화가 심어진 상앗빛 건물 안엔 백남준 등 한국 예술가의 작품이 가득하다. 여기서 길 건너 1분쯤 가면 북한 유엔 대표부가 나온다. 정확히 말하면 북한 대표부가 들어있는 낡은 상가다. 1층의 식료품점과 식당, 철물점 사이에서 북한 외교 공관이 있다는 표지조차 찾을 수 없다.

이 북한 대표부는 미국 땅에서 북한이 유일하게 공식 활동하는 장소다. 미 정보기관은 이 건물과 북한 외교관 거주지인 인근 루스벨트섬 아파트 등에 걸쳐 이들의 동선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한다. 북한이 유엔 업무를 명분으로 뉴욕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감시하기 위해서다. 이 때문에 뉴욕의 북 외교관들은 다른 나라에서처럼 불법 외화벌이도 못하고 일부 한인 교포들의 도움을 받아 숨죽이며 살아간다. 지금 뉴욕시는 월가 취업을 앞두고 평양에 놀러갔다 모진 고문을 받고 사망한 대학생 오토 웜비어를 기려 북한 대표부 앞 도로를 ‘오토 웜비어길’로 개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것이 한때 미·북 간 소통 창구로 알려진 ‘뉴욕 채널’의 현주소다.

북한이 30년 전 이런 장면을 상상하고 뉴욕에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남북은 1991년 9월 17일 유엔에 나란히 가입했다. 한국에게 유엔 가입은 서울올림픽의 성공과 소련·중국과의 수교 등 북방 외교에 힘입은 외교적 쾌거였다. 반면 북한의 유엔 가입은 한국의 단독 가입을 막으려다 막판에 울며 겨자 먹기로 택한 것이었다. 그래도 당시 북한은 유엔에 인공기를 꽂으며 자신들도 북·미 수교와 종전 선언을 얻어내 체제를 보장받으리라 여겼고, 국제사회도 남북 유엔 가입이 한반도 평화의 초석을 놓을 것으로 기대했다.

1991년 9월 17일 제46차 유엔총회에서 남북한이 회원국으로 동시 가입함에 따라 양국 국기가 유엔본부 앞에 나란히 게양되어 있다./조선일보 DB

3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우리가 북한의 정서적·물리적 폭력에 끌려다니며 대화를 구걸하는 희한한 상황이라 잘 인지하지 못하지만, 국제 무대에서 남북을 비교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한국의 유엔 정규 예산 분담률은 2022년 세계 9위가 되지만, 북한은 아프가니스탄보다도 못한 130위권으로 밀려난다. 올해 유엔 총회에서 안보리는 북핵과 인권 문제를 또 주요 안건으로 올린다. 이는 수십 년간 개혁·개방을 설득한 국제사회의 노력을 배신한 북한이 자초한 결과다. “미국의 적대시 정책 때문”이라는 북한에 동조하는 건 쿠바·베네수엘라 같은 극소수 실패한 반미 정권뿐이다.

정부가 남북 유엔 동시 가입 30주년 공동 이벤트를 추진하다 무산됐다. 북한에 무의미하고 수치스러운 기념일까지 동원해 굳이 남북이 동등한 모습을 연출하려 하는 이유가 뭔지 안타깝다. 한국의 위상과 품격에 걸맞은 글로벌 외교에 집중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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