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395] 다빈치가 그린 엄지손가락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2021. 9. 1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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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 구세주, 1499~1510년경, 목판에 유채, 45.4X65.6㎝, 개인 소장.

집안 한구석에 유래를 알 수 없는 골동품이 굴러다니면, 혹시 저 물건이 먼지를 뒤집어쓴 억만금짜리 전설의 보배는 아닐까 하는 가슴 설레는 상상을 하게 된다. 2017년, 5000억원에 낙찰되어 경매 사상 최고가를 기록하며 세계적인 화제가 됐던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1452~1519)의 ‘구세주’도 2005년에는 1000만원에 팔렸으니 영 실없는 상상도 아니다.

‘구세주’는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차례 덧칠이 된 탓에 지금과는 사뭇 다른 어두침침한 그림이었다. 이렇게 한 손에 천구(天球)를 들고, 다른 손으로는 십자가를 그리는 예수의 엄숙한 정면상을 다빈치풍(風)으로 그린 그림은 이 작품 말고도 30여 점이 존재한다. 다빈치 노트에 부분 스케치가 있는 것으로 보아 그가 이와 같은 예수상을 그린 것은 확실했다. 그러나 남아있는 그림이 모두 졸작(拙作)이어서, 이들은 제자나 후대 화가가 베껴 그린 것이고 원작은 사라졌다고 알려져 있었다.

2005년에 ‘구세주’를 구입한 화상(畫商)들은 전문가에게 수리 및 복원을 맡겼다. 적외선 촬영으로 물감 아래를 들여다보자 살짝 구부린 오른손 엄지 바탕에 손가락이 하나 더 드러났다. 화가는 처음에 똑바로 편 엄지를 그렸다가 채색을 할 때 둥글게 굽힌 모습으로 수정을 했던 것. 보존 과학자는 여기서 이 그림이 진품이라는 걸 깨달았다. 원본을 보고 그대로 따라 그리는 화가라면 손가락 모양을 이리저리 고민하다 바꿀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확신을 갖고 두꺼운 세월의 더께를 걷어내자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다빈치의 기품이 느껴졌다. 그가 손가락을 바꾸지 않았더라면 ‘구세주’는 아직도 1000만원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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