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질 높여야 할 '포스트휴먼' 건축 [임형남·노은주의 혁신을 짓다]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대표 입력 2021. 9. 14. 03:02 수정 2021. 9. 14. 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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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오리건주 더댈즈에 있는 구글 데이터센터. 전력과 통신이 끊기지 않도록 지원하는 예비 장치가 있고, 장비에서 배출되는 열을 식히는 냉각시설과 외부의 접근을 막는 보안시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진 출처 구글데이터센터 갤러리


약 300만 년 전, 인류가 지구상에 나타난 후 무척 오랜 시간을 거쳐 불을 발견하고 문자를 발명하며 문명을 만들어냈다. 가장 큰 변혁은 18세기 중반에 시작된 산업혁명이었다. 기계와 동력의 교체로 인간의 생산성은 전 시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신장되었고, 그 기반 위에서 현대의 문이 열렸다.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대표
그리고 200년이 지나며 산업혁명 주기는 점점 짧아지고 있다. 이제는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 한다. 로봇이나 인공지능(AI)을 통해 실제와 가상을 넘나들고, 자율주행차나 드론 등 사물을 자동적 지능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이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갈 것이라고 한다. 내가 태어나서 자라는 동안에도 엄청난 변화가 일생을 관통하며 지나간 것이다. 그중 체험하기에 가장 놀라웠던 일은 역시 개인 컴퓨터, 인터넷, 휴대전화로 이어지는 정보혁명이라고 생각한다. 휴대전화가 이렇게 모든 사람들의 생활에 깊숙이 파고들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점점 섬세해지고 지능을 얻어가는 기계의 발전이 인간의 삶에 어떻게 관여하는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 고속도로 톨게이트에 앉아서 요금을 받던 사람들이 점점 사라졌다. 어디를 가든 내 차의 정보를 읽고 알아서 돈을 가져가고, 지하철에서도 나의 정보를 기계가 스캔해서 돈을 가져간다. 버스 터미널이나 공항에서도 탑승권을 받기 위해 줄을 설 필요가 없고 햄버거나 커피 주문도 기계들이 받는다. 정말 빠른 속도로 사람의 자리를 기계가 대신하고 있다. 과연 어디까지 갈 건지 정말 궁금하다.

기계는 사람의 일만 대신 맡는 것이 아니라 기억과 삶의 기록도 대신 보관해준다. 매일 보내고 확인하는 공적이거나 사적인 메일과 사진, 영상, 관심사들이 구글 계정에 업데이트될 때마다 대체 구글은 전 세계 인류의 이 어마어마한 정보들을 어떻게 담아내고 있는 걸까 궁금하곤 했다.

벨기에 생길랭 데이터센터 서버의 불빛은 꺼지지 않는다. 진열된 서버의 모습은 마치 마트에 진열된 생필품을 연상시킨다. 사진 출처 구글데이터센터 갤러리


그 정보들을 담아내는 곳이 데이터센터(data center)이다.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네이버 등 대부분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컴퓨터 시스템과 통신장비, 저장장치인 스토리지(storage) 등을 갖춘 데이터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잠깐이라도 끊기면 안 되기 때문에 전력과 통신에 대한 예비 장치가 있고, 장비에서 배출되는 열을 식히는 냉각시설과 외부로부터의 접근을 막는 보안시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 세계 전력량의 1∼2%를 사용하는 데이터센터의 유지 관리를 위해 기업들은 100% 신재생에너지를 쓰고, 환경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애쓴다.

마치 냉장고 음식들처럼 저장장치들이 가지런히 보관된 내부의 적정 온도는 섭씨 16∼24도, 습도는 40∼55%로 사람에게 쾌적한 조건과 다르지 않다. 이쯤 되면 기계와 사람 구분이 굳이 필요하지 않을 시간이 곧 다가올 것만 같다. 축구장 몇 개 크기의 규모지만 근무 인원은 적게는 십여 명에서 많아야 백 명 내외다.

정보혁명의 편리성과 정보혁명의 비인간성에 대해 각성하고 모두 예측을 내놓는다. 미래의 인간은 점점 기계나 컴퓨터에 밀려서 할 일이 없어지고 극소수만 살아남는다는 디스토피아적인 상상이 가득한 몇 편의 영화들이 생각난다. 블레이드 러너, 터미네이터, 매트릭스 같은 영화들은 무척 어두운 미래를 그렸다. 기계와 인간의 구분이 모호하고, 기계와 전쟁을 벌이거나, 기계가 사람을 대신하면서 밀려난 사람들은 원시적인 옷을 입고 환상을 주입하며 대리만족하며 살게 된다. 오래전 그 영화들을 보면서 정말 우리가 그렇게 될까 궁금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는데 어느새 목전까지 왔다.

기계와 사람, 사람 이후의 사람을 ‘포스트휴먼’이라 부른다. 포스트(post)라는 단어는 접두사로 쓰이면 이후, 사후, 후대 등 단순히 시간적인 흐름을 의미하기도 하고, 포스트모더니즘이라든가 포스트휴머니즘이라든가 하는 용어들이 말해주듯 어떤 시기를 뛰어넘거나 극복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포스트휴먼은 한편에서는 기계와 결합된 사이보그 같은 강화된 정신과 체력을 지닌 사람으로 보기도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사람 이외의 자연, 동물과 식물, 그 외의 영적인 존재들까지 포함해서 생명 그 자체로 확장하는 관점도 있다.

그래서 휴머니즘 이후를 뜻하는 포스트휴머니즘(posthumanism)은 인간을 중심으로 여기는 전통적인 휴머니즘의 개념을 뛰어넘어 부정하거나 초월하고자 하는 사상을 가리킨다. 1990년대부터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된 포스트휴머니즘은 사회, 문화, 철학 등이 연결된 개념이다. 크게 보면 인간과 기술의 관계에 있어 기술적 극대화의 방향으로 향하는 ‘트랜스휴머니즘’ 계열과 기술과의 관계보다 기존 휴머니즘적 관점에서 소외되었던 약자, 소수자, 비서구권 거주자 등의 인간과 비인간적 구성원까지도 배려하자는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즘’ 계열로 구분된다.

기술의 발전과 인류의 진보에 신경을 쓰는 동안 지구에 사는 사람의 수는 더욱 늘었고 평균수명도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 그렇다고 삶의 환경이 그에 비례해서 나아졌다고 볼 수는 없다. 기술의 발전이 삶의 질을 평균적으로 올렸다고 하기에는 빈부 격차나 고용 불안 등이 더 심화된 것이 현실이다.

2년 가까이 코로나19로 인해 온 세계가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도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를 기다리며, 포스트휴먼의 건축을 생각한다.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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