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기레기'와 언론법

이호준 정책사회부 차장 입력 2021. 9. 14.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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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결혼 전 처갓집에 처음 인사를 하러 가기 전에 아내는 미리 귀띔을 했다. 장인이 사윗감으로 탐탁지 않아하는 직업이 몇 있는데 그중 하나가 기자라는 것이었다. 나머지는 공권력, 그리고 금권을 다루는 직업이었다. 사람들을 괴롭히고 다니는 직업이라는 게 이유였는데 무조건 애들 뜻에 따라야 한다는 장모님의 소신이 뒷심을 발휘한 것인지, 다행히 별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개인적 경험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기자라는 직업은 한국에서 그다지 존경받는 직업이 아니었다.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기자 출신 국회의원이 “경찰 사칭 정도는 흔했다”고 고백할 정도니 기자가 ‘기레기’로 전락한 배경을 굳이 되짚어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호준 정책사회부 차장

직업 자체가 누군가의 부패나 치부를 끄집어내 고발하는 역할로 설계된 만큼, 기자들에게 혐오나 조롱 따위의 반응은 당연히 감당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한번은 비자금 문제가 불거진 기업 총수의 변호인에게 질문을 하려고 사무실 앞에서 하루 종일 기다린 적이 있었다. 며칠째 비가 내려 축축한 복도에서 신문지를 깔고 앉아 있던 내게 변호인은 ‘고작 신문지나 깔고 살려고 공부하셨냐’며 혀를 찼다. 승냥이떼처럼 들러붙은 기자들이 얼마나 징글징글했으면 저랬을까 싶지만, 여하튼 악마 같은 기자들을 뒤로하고 이 변호인의 의뢰인은 감옥으로 직행했다.

물론 이런 기자의 숙명보다는 기자라는 직업적 특성을 이용해 누군가를 편들거나 협작질로 이권을 뜯어내고, 소위 ‘삥’이나 뜯고 다닌 ‘사이비’들의 역사가 기자들의 신뢰를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데 더 큰 역할을 했음에는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기자들이 ‘밥도 같이 먹고, 사우나도 같이 가면서’ 권력이나 재력에 기생해 살았던 것만은 아니다. 최루탄에 맞아 숨진 김주열의 시신 사진이 신문에 실린 날이나 박종철 사망 기사가 단신으로 실린 날, 최서원(개명전 최순실)의 태블릿PC가 방송을 탄 날처럼 절대 묻혀서는 안 됐을 사건의 현장에서 ‘열일’한 언론도 분명히 있었다.

여당에서 언론법이라는 것을 만들고 있다. 가짜뉴스 양산을 막고 가짜뉴스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조치라고 한다. 그럴싸하다. 언론 내 자성의 목소리도 있었으니 애초부터 틀린 취지도 아니다. 늘 그렇듯 문제는 디테일이다. 기사를 대중의 시야에서 지워버리는 ‘열람차단청구권’이나 기준조차 애매한 ‘고의 중대과실 추정’에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아예 언론의 입을 틀어막을 수 있는 도구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다. 여기에 반대하는 야당에 “계속 야당만 할 거냐”는 집권당의 음습한 속내까지 더해지면서 ‘언론재갈법’이라는 멸칭의 구성 요건도 완비됐다.

여당에서는 법안을 지지하는 여론조사를 들이민다. 기자보다 ‘기레기’가 더 친숙한 사회에서 당연한 결과다. 국민들에게는 국회의원보다 ‘국개의원’이 더 친숙하다. 맨날 싸움이나 하는 국회를 해산시키고 의원의 면책특권을 없애자는 말은 얼마나 달콤한가. 열에 아홉은 찬성할 터이다. 하지만 정상적인 국가라면 저런 일은 벌어져선 안 된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역설적이게도 가짜뉴스가 가장 만연했던 시기는 시민들의 민주화운동을 폭도들의 폭동으로 보도할 수밖에 없었던, 권력의 입맛대로 언론의 입에 재갈이 채워진 때였다.

이호준 정책사회부 차장 hj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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