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의 인물과 식물]정조와 석류나무
[경향신문]
어느새 추석이 다가왔다. 설 차례가 조상께 드리는 새해 문안 인사라면, 추석 차례는 그간의 경과 보고인 셈이다. 그래서 더욱 풍성하다. 원래는 정월대보름, 한식, 단오, 중구, 동지 등 주요 명절에 차례를 지냈으나 일제강점기 ‘의례준칙’에 따라 설과 추석에만 차례를 지내는 관행이 시작되었다. 차례에는 전통적인 과일을 올리지만, 요즘은 고인이 평소 좋아하시던 과일을 올리기도 한다. 바나나는 기본이고 열대과일인 파인애플, 심지어 망고도 등장하였다. 차례상도 세계화 추세에 발맞춘 듯하다.
조선시대 임금은 조상께 무엇을 올렸을까. 종묘 천신(薦新) 품목을 잠시 살펴본다. 1월에 청어, 2월에 송어, 3월에 고사리, 4월에 죽순, 5월에 보리, 밀, 앵두, 오이, 살구, 6월에 벼, 기장, 피, 조, 가지, 동아, 능금, 7월에 연어, 배, 8월에 감, 대추, 밤, 곡주, 9월에 기러기, 10월에 귤, 밀감, 꿩, 11월에 고니, 12월에 물고기, 토끼 등을 올렸다. 천신 품목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조금씩 변화하였다. 이외에도 각 지방에서 특산물을 수시로 진상하면 임금은 우선 종묘에 천신하였다. 정조는 지방 특산물이 혹여 늦게 도착할 때를 대비하여 종묘의 문을 잠그지 말 것은 명하였다. 천신 품목의 의미는 ‘제철’에 있다. 그리하여 제철음식을 시물(時物)이라 했다. 때로는 종묘에 올릴 물품이 제때 나질 않아 절기에 맞추어 천신하기 어려웠다. 정조 때에는 ‘2월에 나던 것이 6월에나 되어서야’ 산출되어 급기야 ‘손가락만 한’ 참외를 올리며 몸 둘 곳을 몰라 하였다. 정조는 매년 정월에 권농윤음을 반포하여 백성들에게 농사를 권장하고 수시로 그 진척에 관심을 두었다. 가뭄이 들면 애를 태우며, 밤을 꼬박 새웠다.
화훼를 좋아하지 않았던 정조도 석류나무만큼은 가까이 두고 싶어 했는데, 석류나무의 자람이 곡식의 자람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농사철이 이른지 늦은지는 번번이 석류꽃으로 징험(徵驗)’하게 된 정조는 석류나무를 특별히 아끼고 사랑했다. 농정을 수시로 시찰할 수 없었던 정조에게는 석류나무가 농사의 일정을 알려주는 일종의 ‘지표식물’이었던 셈이다. 백성들은 씨가 많은 석류를 자손 번창의 의미로 심었지만, 정조는 백성들을 위한 마음으로 석류를 바라보았다.
우연의 일치일까. 사도세자를 모신 경모궁에 9월 천신 품목이 바로 석류였다. 아버지 사도세자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각별히 추모했던 정조를 떠올리니, 올 추석에는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더욱 간절하다.
이선 한국전통문화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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