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건순의 제자백가] 중산층 독재정권인가

입력 2021. 9. 14.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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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과 신하는 교만하고 국민에게 소홀"
겉은 멀쩡해도 곪아터져 '소리없는 분열'
성 밖 국민도 사람인데..중산층만 대변
임건순 < 동양철학자·'제자백가 인간을 말하다' 저자 >

오자병법 요적(料敵)편을 보면 전략가 오기가 위나라 군주 앞에서 위나라를 제외한 6국의 형세와 군사력에 대해 브리핑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요적편에서 군사적 요소만 아니라 정치, 사회문화적 각도에서 상대 국가들을 분석했는데 제나라를 다음과 같이 평했다.

“제나라는 백성이 강직하고 나라는 부유하지만 임금과 신하가 교만하고 사치해서 보통 국민들(細民)에게 소홀합니다. 정치는 관대하지만 대우는 공평하지 않습니다. 군대의 상하가 서로 다른 마음을 지니고 있으니 앞에서 보면 중후해 보이지만 뒤에서 보면 가볍습니다. 그래서 군대가 두터워 보이지만 견고하지 못하다고 한 것입니다. 제나라 군대를 격파하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우리 군대를 반드시 셋으로 나눠 좌우를 에워싸고 주공은 후방을 위협하여 치고 들어가면 제나라 진영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분열에는 두 가지 부류가 있다고 한다. 요란한 분열과 소리 없는 분열이 있다. 오기가 본 제나라는 소리 없는 분열의 상태가 심각한 국가였다. 그래서 그는 치킨게임을 전술로 제시했다. 소리 없이 분열 중이기에 압박과 충격에 쉽게 무너진다고 봤던 것이다.

당시 제는 매우 부유했다. 너무 부유하다보니 생기는 문제들이 있었다. 엘리트들이 편안함만을 추구하고 생존에 대한 절박함이 없었다. 늘 현실에 안주했다. 가장 큰 문제는 빈부 격차였다. 오기는 ‘세민’이라는 존재를 지적했는데 단순히 백성들이라기보다는 정치에서 소외된 가난에 찌든 국민들이었다. 상대적 소외감과 박탈감 속에서 살고 있었지만 정치는 한사코 이들을 살피지 않았고 백성들은 국가를 원망하고 있었다. 그들이 바로 세민이다.

상황이 이러니 전쟁과 같은 상황에서 엘리트 계급은 엘리트 계급대로 투지를 발휘할 리 없다. 기층민에 기반한 보통의 병사들은 그들대로 몸을 사리고 과감하게 싸울 수가 없다. 그렇기에 제의 군대는 겉으로만 강해 보일 뿐이니 과감한 수를 던져 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기가 진단한 제의 실정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은가? 경제적으로 부유하다. 하지만 국가의 원대한 이상과 비전은 없다. 정치는 겉으로는 관대해 부정과 무능, 비리, 비효율에 눈감아준다. 잘산다지만 빈부 격차는 크고 거기서 소외감을 느끼고 정치를 원망하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 마치 현재의 대한민국을 말하는 것 같다.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의 적지 않은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나라이고. 하지만 상위 10%가 너무 많은 부를 독점한 사회로서 성 안과 성 밖으로 나눠진 이중화된 나라다.

원청과 하청,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시장의 이중성은 가히 노동분단의 수준이고 방만한 공공부문이 누리는 특혜와 안정성으로 인해 국민 미래 세대의 등에 가해지는 하중은 갈수록 무거워지고 있다. 안 그래도 이중화된 사회, 코로나 시국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성 안에 사는 사람들은 정기적 수입이 보장됐고 재택근무로 혜택을 보기도 했으며 부동산과 주식, 코인 등 자산가치 상승까지 누렸다.

하지만 많은 성 밖의 국민은 고통을 강요당한 채 살고 있다. 특히 자영업자들은 지옥과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극단적 선택을 하는 자영업자들의 사연이 뉴스로 나오는데 자영업자들도 대한민국 국민이다. 하지만 정치는 그들을 버린 지 오래다. 우리도 전국시대 제와 같이 소리 없는 분열 속에서 소금물에 젖은 벽과 같은 나라가 된 게 아닌지 모르겠다. 겉으로만 멀쩡해 보이고 속으로는 곪아 들어간 사회 말이다. 포털에서 자영업의 연관검색어는 계속 폐업과 자살로 뜨고 있다. 자영업의 연관검색어가 자살이라는 현실은 가혹함 그 자체라고 생각하는데 이들을 한사코 무시하고 외면하고 가는 정부, 중산층과 화이트칼라 계층의 지지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가끔 이 정부를 화이트칼라, 중산층 독재정권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들만 살피고 그들의 의사와 이해관계만 대변하면서 다른 국민은 철저히 무시하니 말이다. 성 밖에도 국민들이 산다. 여기에도 사람이 있다 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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