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富를 흐르게 하라".. 구겐하임家, 미술관 짓고 자선사업
한국이 철강 산업과 조선 산업 강자로 부상하자 몰락하는 도시들이 있었다. 철강업의 쇠퇴와 함께 배 만드는 일감마저 빼앗겨 쇠락의 길을 걷던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의 빌바오가 그런 도시였다. 이러한 빌바오를 유명 관광지로 탈바꿈시킨 건 구겐하임 미술관이다. 빌바오시가 1억유로(약 1380억원)를 들여 ‘도시 재생’ 사업의 하나로 유치한 미술관이다.
1997년 미술관이 공개되자 3년간 관광객이 약 4백만명 방문하면서 5억유로 경제적 효과를 도시에 안겨줬다. 빌바오시는 세금으로 1억유로 이상을 거두어 투자금을 조기에 회수했다. 이후 이러한 경제적 효과를 ‘빌바오 효과’ ‘구겐하임 효과’라고 불렀다. 환경오염이 극심했던 공업 도시 빌바오는 구겐하임 미술관을 시작으로 문화 예술 도시로 탈바꿈했다. 미술관 하나가 도시를 살려낸 것이다.
네르비온 강가의 빌바오 미술관은 미국 건축가 프랑크 게리가 설계했다. 미술관은 커다란 조각 작품을 빚어낸 듯한 모습이다. 항공기에 쓰는 티타늄판이 곡선으로 이뤄진 표면을 감싸고 있다. 두께 0.38㎜의 얇은 티타늄판 3만3000개가 바람 부는 대로 자연스럽게 흔들리며 다채롭게 빛을 반사해 마치 물이 흐르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기둥이 없는 철골 구조는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형태를 나타내, 해체주의 건축 양식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수많은 미술품을 사 모아 구겐하임 미술관의 토대를 구축한 사람은 페기 구겐하임이다. 그녀의 할아버지 마이어 구겐하임은 독일계 유대인 출신 스위스 시민권자로 1847년 미국 필라델피아로 이주했다. 처음엔 행상으로 시작해 난로 닦는 흑연 광택제와 커피 에센스로 돈을 벌었다. 유럽에서 섬유 제품을 수입해 큰돈을 모았고, 그 돈으로 콜로라도 은광에 투자한 게 대박을 쳤다.
그 뒤 알래스카, 멕시코, 칠레, 앙골라 등으로 광산업과 제련 사업을 확대해 ‘광산왕’이라 할 만큼 성공했다. 마이어는 아내 바르바라와 사이에 쌍둥이를 포함해 아들 8명과 딸 3명을 얻었다. 쌍둥이 중 하나는 병으로 일찍 죽었다, 나머지 아들들은 부친을 도와 막대한 재산을 일구었다.
부자는 인체의 심장 역할을 해야
유대인들은 부(富)를 하느님의 축복이라 여긴다. 하지만 그 부는 하느님이 올바른 곳에 쓰라고 자기에게 잠시 맡긴 것이라는 사실 역시 잘 알고 있다. 이른바 청지기론이다. 따라서 그 돈을 움켜쥐고 있으면 안 된다. 부자는 인체의 심장 역할을 해야 한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심장이 피를 인체 곳곳에 흘려 보내야 인체가 건강을 유지하게 된다. 곧 부자는 갖고 있는 돈을 사회를 위해 흘려 보내야 건강한 사회가 된다고 그들은 믿고 있다. 구겐하임 사람들 역시 모은 돈을 의미 있는 자선사업에 썼으며, 특히 예술 부문과 항공 분야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구겐하임 가문의 자선사업들
맏아들 이삭을 대신해 둘째 대니얼이 1905년 아버지 사업을 이어 받아 가문을 이끌며 항공기와 로켓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많은 대학에 항공 연구소 설립 기금을 지원했다. 셋째 머리(Murry)는 처음에는 섬유류를 수입하다 1881년에 광산 경영과 제련 사업을 승계받았다. 그는 뉴욕 빈민들을 위해 치과 치료를 위한 재단을 설립했다. 넷째 솔로몬은 여러 미술관에 자금을 지원했을 뿐 아니라 나중에는 직접 재단을 설립해 미술관 건립 활동에 헌신했다. 다섯째 존 사이먼은 콜로라도 주지사를 지냈고, 요절한 아들을 추모하는 재단을 설립해 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과학과 예술 부문에서 탁월한 업적을 낳은 사람들을 포상하고 있다. 여섯째 벤저민은 철강업을 하다 타이태닉 사고 때 구명조끼를 양보하고 의연한 죽음을 택한 신사로 유명하다. 그의 딸이 구겐하임 미술관들에 전시품을 기증한 페기 구겐하임이다. 그녀는 많은 예술가를 후원해 ‘예술가들의 천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가문의 미술가 지원 사업은 넷째 솔로몬 구겐하임이 시작했다. 그는 자선사업을 하기 위해 1919년에 경영 일선에서 은퇴하고 1920년부터 다양한 근대 미술 작품을 수집했다. 자신의 미술품 컬렉션을 여러 도시에 임대 전시하기도 했다. 소장품이 늘어나며 자체 미술관 건립 필요성을 느꼈다. 1937년엔 솔로몬 구겐하임 재단을 설립해 뉴욕시와 미술관 건립 계획을 세우게 된다. 당시 최고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에게 설계를 의뢰해 추진했다. 부지 선정 등 여러 문제로, 1943년 설계한 건물은 솔로몬 사후 10년이 지난 1959년에야 완성됐다.
솔로몬 구겐하임 재단은 맨해튼의 솔로몬 구겐하임 미술관, 스페인 빌바오와 독일 베를린의 구겐하임 미술관과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을 운영하고 있다. 필자는 뉴욕 근무 시절 맨해튼 구겐하임 미술관을, 마드리드 근무 시절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밀라노 근무 시절 베네치아 구겐하임 미술관을 관람할 기회가 있었다.
뉴욕 센트럴파크 오른편 89번가에 있는 맨해튼 구겐하임 미술관의 외양은 거대한 달팽이를 닮았다. 직사각형 주변 건물들과 대비되어 그 독창성이 두드러진다. 위로 올라갈수록 지름이 넓어지며, 계단이 없는 나선형 복도를 걸어가면서 작품을 관람할 수 있게 설계됐다. 2019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베네치아 구겐하임 미술관은 맨해튼과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과 달리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아담한 단층 건물이다. 페기 구겐하임이 30년간 살았던 저택 ‘Palazzo Leoni’(사자들의 궁전)를 개조해 만들었다. 그의 취향과 그가 사랑했던 정취가 오롯이 묻어나는 곳이다. 그가 직접 수집한 피카소, 샤갈, 몬드리안, 칸딘스키 등의 현대 미술품 300여 점을 전시한다.
페기가 이렇게 미술품을 사 모으고 이를 대중에게 보여주기 위해 미술관을 건립하는 것은 그녀 나름의 철학 덕분이었다. 그녀는 투기장이 된 뉴욕 미술 시장을 보며 “투자 목적으로 그림을 사니 감상은커녕 창고에 넣어두기만 한다”고 한탄하며 “우리가 가진 위대한 보물을 보존해 대중에게 보여줄 의무가 우리에게 있지 않은가”라는 말을 남겼다.
전쟁의 광란 속 현대 미술을 지킨 페기 구겐하임
페기의 아버지 벤저민은 어린 딸의 고사리 손을 잡고 미술관을 데리고 다니곤 했다. 그러던 아버지가 타이태닉 사고로 황망히 떠나자 페기는 눈썹을 다 미는가 하면, 가족의 반대에도 서점에서 일을 했다. 서점 일을 하며 유럽 현대 예술과 사상에 눈떴다. 페기는 22세에 250만달러(현 시세 3410만달러)를 상속받았으며 신탁을 통해 매년 2만2500달러를 벌었다. 그녀는 당대 예술가들의 활동지인 파리로 갔다. 파리에서 결혼 실패 후 런던으로 건너가 화랑을 열었다. 2차 대전이 발발하자 많은 미술 수집가가 미국으로 탈출했지만 그녀는 오히려 파리로 들어가 매일 한 점 이상 작품을 사들였다. 그녀는 사재를 털어 유럽 예술가들의 망명도 도왔다. 페기가 도운 사람 중엔 마르크 샤갈, 이브 탕기, 막스 에른스트 등이 있었다. 나치의 공세가 거세지자 페기도 1941년 그림들을 이불보 사이에 넣어 미국으로 돌아왔다.
[프리다 칼로, 잭슨 폴록... 현대미술의 스타들 발굴]
페기는 뉴욕에 ‘금세기 미술 화랑(The Art of This Century Gallery)’을 열고 작품을 판매해 예술가들을 지원했으며, 자신도 거부가 되어 고가 미술품을 계속 수집할 수 있었다. 그녀는 새로운 미술가를 발굴하고 알리는 데도 열성적이었다. 페기가 연 ‘여성 작가 31인 기획전’을 통해 멕시코의 프리다 칼로가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그 뒤 개최한 한 신인 공모전에는 미술관 목수가 그림을 출품했는데, 그녀는 이 무명 화가의 재능을 알아보고 작업 스튜디오를 마련해주고 매달 생활비를 후원하며 개인전도 열어줬다. 그렇게 탄생한 현대 미술의 스타가 잭슨 폴록이다. 페기는 폴록을 발굴해 후원한 것이 자기 인생의 가장 큰 성취라고 회고했다. 그녀는 2차 대전이 끝나자 유럽으로 돌아가 베네치아에 정착해 30여 년을 보냈다. 1976년 소장품 전부를 구겐하임 재단에 기증하고 눈을 감은 뒤, 자신의 집(현 베네치아 구겐하임 미술관) 정원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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