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실서 만든 연어, 맛도 영양도 똑같네.. 비건 테크의 진화

박건형 기자 2021. 9. 13.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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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가죽 대신 대나무·옥수수·선인장으로 가방·신발 만들어
미국 스타트업 와일드타입이 실험실에서 배양한 연어로 만든 요리.

미국 스타트업 와일드타입은 지난 7월 포틀랜드의 한 레스토랑에서 시식회를 열었다. 하와이 포케에서 세비체, 스시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어 요리가 등장했다. 이 행사가 일반 시식회와 다른 점은 요리에 사용한 모든 연어가 실험실에서 자랐다는 것이다. 와일드타입은 연어에게서 근육세포를 추출한 다음 배양기에서 3주간 키워 연어를 만들어낸다. 업체는 “식감과 영양 성분까지 동일하게 재현해냈다”며 “미세 플라스틱 같은 해양 오염에서도 자유로운 식재료”라고 밝혔다.

동물 복지와 환경 보호를 실천하는 비거니즘(veganism·채식주의) 열풍이 전방위로 확산되면서 동물 대체재를 만드는 ‘비건 테크’가 급부상하고 있다. 육류뿐 아니라 생선까지 대체하는 기술이 등장했고, 패션 업체들도 파인애플·옥수수·선인장 같은 식물성 재료로 가방과 신발을 만들어내고 있다. 식료품 시장조사 업체 굿푸드인스티튜트에 따르면 대체 생선을 만들어내는 기업은 올 6월 기준 전 세계적으로 83곳에 이른다. 2017년 이후 3배나 늘었다. 샌디에이고의 블루날루는 부시리의 근육 조직에서 줄기세포를 채취해 배양액에 넣고 키운 뒤 3차원(3D) 프린터를 이용해 생선살을 찍어낸다. 싱가포르의 시옥미트는 배양 새우살을 개발했고, 미국 핀리스푸드는 참치를 세포에서 배양한다. 뉴욕타임스는 “대체 생선이 생선의 맛과 질감을 정교하게 구현하면서 비건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선택지가 되고 있다”고 했다.

버섯균주를 이용해 가죽을 재현한 에르메스의 핸드백.

식물성 재료로 생선 맛을 구현하는 기술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스타트업 굿캐치는 고급 식료품 체인 홀푸드에서 ‘생선이 없는 참치’를 선보였다. 병아리콩 가루와 렌틸콩 단백질 등 6가지 식물성 재료를 조합해 참치 맛을 구현했다. 프랑스 오돈텔라는 바다에서 채취한 미세 조류를 이용해 훈제 연어 맛을 재현한다. 세계 최대 참치 통조림 가공 업체인 타이유니언도 대체 생선 브랜드인 ‘OMG미트’를 론칭했고 네슬레는 지난해 식물성 참치 ‘부나’를 출시했다.

대체 생선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이다. 하지만 식품·테크 업계에서는 과거 대체 육류 시장이 그랬던 것처럼 대체 생선 시장도 빠른 속도로 성장할 것으로 본다. 축산물의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이 해산물의 환경 문제에도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가능성 있는 스타트업에 불과했던 임파서블 푸드, 비욘드미트 같은 대체 육류 업체들은 햄버거 패티, 스테이크 등을 잇따라 출시하며 미국과 유럽 식당을 빠르게 장악하고 있다. 시장조사 업체 마케츠 앤드 마케츠에 따르면 글로벌 대체 육류 시장은 2025년 279억달러(약 32조7800억원)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신발과 가방에서도 동물이 사라지고 있다. 모피와 가죽, 울을 대체할 수 있는 소재가 속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섬유질이 풍부하면서도 질긴 특성을 가진 선인장, 파인애플 잎, 포도 찌꺼기, 대나무 등이 주로 사용된다. 운동화 브랜드 베자는 옥수수 전분과 유기농 면화 캔버스로 가죽을 대신했고, 스페인 패션 브랜드 플라밍고스 라이프는 옥수수 폐기물과 대나무로 가죽 대체재를 만든다. 명품 업체들도 비거니즘 시장에 뛰어들었다. 프랑스 에르메스는 미국 친환경 스타트업 마이코웍스와 함께 버섯 뿌리에서 얻은 가죽 ‘실바니아’를 소재로 가방을 제작하고 있다. 재활용 플라스틱도 가죽이나 울 대체재로 쓰인다.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는 페트병을 재활용한 폴리에스터로 울 소재를 대체하고 있다.

스텔라 맥카트니가 버섯으로 만든 가죽으로 제작한 옷

영국 과학 전문 매체 와이어드는 11일 “비거니즘이 패션 산업에 혁신을 촉발하고 있다”면서 “지속가능한 기술이 속속 등장하면서 가죽에 사용되는 발암성 물질, 동물을 키우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나 과도한 방목으로 인한 산림 훼손 등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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