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전기차만 보조금".. 문 걸어잠그는 美·中

오로라 기자 2021. 9. 13. 20:3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자국 전기차 보호 나선 미중/AFP연합·EPA연합

미국이 사실상 자국 기업의 전기차만 지원하는 세법 개정안을 추진하면서 글로벌 자동차 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미국 하원 세입위원회는 “미국 자동차 노조가 있는 공장에서 생산한 친환경차에 추가로 4500달러(약 530만원)의 세금 혜택을 제공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14일(현지시각) 표결에 부칠 예정이다. 현재 미국에선 모든 제조사가 만든 전기차에 일률적으로 7500달러(약 880만원) 세액 공제가 적용된다.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노조가 있는 ‘디트로이트 빅3(GM·포드·스텔란티스)’가 생산한 전기차는 최대 1만2500달러(약 1468만원·미국 생산 배터리 보조금 500달러 포함)의 세제 혜택을 받는 반면, 노조가 없는 외국 자동차 회사들은 보조금 혜택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국내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친(親)노조 성향의 영향도 있지만, 이를 앞세워 미국 전기차 판매량을 올리겠다는 자국 우선주의가 핵심”이라고 평가했다.

전기차 시대 개막을 앞두고, 주요 국가들의 자국 기업 보호 바람이 거세지고 있다. 미국뿐 아니라 중국·유럽연합이 자국 기업에 유리한 규제와 보조금 카드를 꺼내들고 있는 것이다. 각국의 전기차 시장 패권 다툼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외국계 기업, 美 신규 혜택서 완전 배제

미국의 새로운 전기차 지원책에 글로벌 자동차 업계에선 “미국에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다”는 반응이 나온다. 2008년 금융 위기 후 현대차를 포함한 외국계 완성차 업계는 강성 노조인 미국 ‘전미자동차연합(UAW)’의 세력권 밖인 남부 ‘선밸트(Sun Belt·일조량이 많은 미국 남부의 별칭)’에 생산라인을 지어왔다. 이곳은 근로자의 노조 가입을 강제할 수 없게 하는 ‘일할 권리(right to work)’라는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실제로 현대기아차를 포함한 도요타·혼다·벤츠·BMW 등 외국계 기업은 무노조 경영을 하고 있다.

하지만 노조가 있는 기업에만 보조금을 더 주는 법안이 통과될 경우 분위기가 확 달라질 수밖에 없다.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은 이미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일본 도요타와 혼다는 12일 성명을 내고 해당 법안이 불공정하다고 공개 비판했다. 해외 기업들에 일종의 ‘비관세 장벽’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중국·유럽도 ‘자국 우선주의’

자국 전기차 경쟁력 보호 나선 미·중

전기차 산업을 적극 육성하고 있는 중국도 각종 규제로 해외 기업을 배척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수년째 자국산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에만 추가적인 보조금과 세금 혜택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외국 기업들에 장벽을 치고 있다. 오는 10월 1일부터는 새로운 ‘데이터 안보법’까지 시행된다. 이에 따르면 중국에서 운행되는 차량은 주행 기록과 카메라 영상 등 데이터를 모두 현지에 보관해야 한다. 데이터 안보를 무기로 외국계 기업들에 대한 조사와 규제의 길을 열어 놓겠다는 것이다.

유럽도 상황은 비슷하다.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연합(EU) 국가들은 구매 보조금을 적용하는 전기차를 4만~6만유로 사이(보조금 7500유로)와 4만 유로 이하(보조금 9000유로)의 모델로 제한했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유럽산 전기차들에 보조금이 적용되는 반면, 고가의 테슬라 차량은 보조금 대상에서 대부분 제외되는 것이다. 다급한 테슬라는 최근 차량 가격을 보조금 기준에 맞춰 하향 조정하기도 했다.

◇차세대 먹거리 두고 주도권 싸움

세계 주요 국가들이 자국 전기차 산업을 감싸는 이유는 글로벌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연간 8000만대 규모의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기차는 배터리·자율주행 등 혁신 기술과도 연결돼 있어 각국이 치열한 선점 경쟁을 벌이고 나서고 있다. 전기차 시장에서 자국 기업이 밀리면 관련 산업이 줄줄이 타격을 받게 되는 것이다.

제현정 한국무역협회 통상지원센터 실장은 “WTO(세계무역기구)는 명백하게 특정 국가나 외국산에 대한 차별이 있을 때 제재를 하는데, 각국의 전기차 지원은 노조와 친환경 등 기준을 앞세워 이 같은 문제를 피해간다”고 말했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자유주의 무역 규범에 금이 가기 시작한 가운데, 친환경차 보조금 정책이 외국 기업을 배제하는 무기로 둔갑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도 전기·수소차에 지급하는 보조금 체계가 있지만, 지난 1분기 기준 가장 많은 보조금을 받은 차량은 테슬라의 모델3로 집계됐다. 전체 보조금 지급 완료 차량 중 42%를 차지한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세계 각국이 노골적인 자국 기업 보호에 나선 만큼 국내에서도 상응하는 정책이 나오지 않으면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